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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통제와 지향성 당신의 실제 주인은 누구일까? 우리 모두는 선택을 한다. 선택할 기회를 피하거나 선택하지 않는 이유를 제시하는 것조차 사실은 선택이다. 우리 인간은 언덕을 굴러 내려가는 돌처럼 그저 환경에 휘둘리고 만은 있지 않다. 우리의 산택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그 선택의 바탕에는 우리 각자가 과거에 겪은 모든 경험이 깔려 있다. 결정의 바탕이 된 경험들도 단순히 기억들을 수평으로 긁어모아 놓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의 의미를 이루는 수많은 영향과 욕망, 증오와 재능 등을 재료로 촘촘히 역어낸 바로 그 경험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 선택들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정신적 작용을 명쾌히 밝히고, 뒤죽박죽 일 것 같은 선택들이 겉으로 어떤 질서감과 명료한 느낌을 풍기게 하는 그 속성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려고 끊임..
이라크 전쟁으로 본 미국3 미국의 오만한 단독행동에 아랍진영은 물론 국제사회 전체가 미국에 등을 돌렸으며, 무질서와 혼란, 실업, 민간인 사망으로 이라크인들은 미국을 확실한 적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베트남전 당시도 그러했지만 미국은 남의 나라에 개입하는 것보다 명예롭게 빠져나오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또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아랍권 젊은이들이 분노의 칼을 갈도록 만드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요르단, 이집트 등 전근대적 왕조국가, 독재국가는 하나같이 미국이 일방적으로 후세인을 공격하는데도 무기력하게 제대로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중동의 젊은이들은 무능하고 부패한 왕족, 귀족들을 권좌에 앉힌 다음, 그들을 마음대로 요리해온 미국의 중동개입 역사를 다시한번 몸으로 실감하게 되었..
이라크 전쟁으로 본 미국2 이라크 사람들이 테러세력을 비호하여 이들을 고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미군은 비협조적인 지역주민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다. 즉 테러세력을 숨겨준 것으로 의심되거나 노골적으로 미군을 거부하는 동네를 골라 그들을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작전을 감행한 것이다. 어떤 마을에서는 미군 불도저가 재즈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주민들의 생계수단인 과수를 밀기도 했다. 미국에 협조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이렇게 보복한다는 일종의 위협, 즉 주민교육이었다. 수십년전 그들의 선배들이 베트남에서 밀림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정착촌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거부하는 주민을 본보기로 처벌하던 그런 식이다. 미군의 거칠고 무자비한 진압작전은 이라크인의 반미감정을 촉발했고, 급기야 팔루자에서 이라크인들이 미군의 시체를 끌고 다니..
이라크 전쟁으로 본 미국1 2003년 3월 18일 부시는 후세인을 향해 ‘48시간 안에 무장해제 하지 않으면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것은 전쟁선포였다. 그의 전쟁선포는 자신이 미국의 최고 권력자이자 사실상 작은 카이사르, 즉 제국의 황제라는 것을 온 세계에 천명한 것이었다. 부시행정부는 자신의 공격 혹은 침략행동을 용서 못할 악에 대한 정의의 심판으로 지구상 가장 악독한 독재정권으로부터의 해방을 호도하면서, 사람을 죽이고 문명을 파괴하는 전쟁이 평화를 향한 불가피한 대안이며, 이라크의 무수한 민간인과 참전군인들이 향후 수년, 수십년 동안 감당해야 할지도 모르는 엄청난 고통과 상처는 자유를 얻기 위한 불가피한 대가라고 그럴듯하게 설명했다.  9.11테러 이후 위기를 기회로 포착한 부시행정부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차..
사라져 버린 호기심, 잃어버린 질문 우리는 탐구하기를 통하여 참으로 소중한 것들을 깨달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탐구하는 것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가? 앞서 탐구하기는 질문하기라고 했다. 질문이 있어야 탐구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차츰 호기심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늘 분주하다. 어떤 법칙과 섭리를 따라 늘 변화하고 늘 서로서로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우리는 놀랍게도 이러한 세상에 참 무관심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학교나 학원에서 참 많은 지식을 익히고 받아들인다. 지식은 탐구의 지도와 같다고 이야기 했다. 지식이 없다면 아무리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 해도,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 해도, 탐구하기라는 여행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지식은 탐구를 위한 지도와 같아서 어떤 지식을 ..
자연속의 나, 내 안의 자연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인간의 부족한 지식으로 모두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불안해한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는 병에 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 사람들은 언제 걸릴지 모르는 암 때문에 보험을 들기도 하고 병에 안 결리려고 아주 어릴 적부터 많은 종류의 백신을 맞는다. 인간이 지구라는 곳에서 홀로 살 수 없음은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인간은 자기를 둘러싼 생명체들, 그리고 무생물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제대로 살기위해서는 주변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올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탐구해야 한다. 영국에서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당신은 바로 당신이 먹은 음식이다. You are what you eat'라는 제목이었다. 인간이 먹는 ..
우리 아이 인생은? 2014년 4월 해남 두륜산에서 찍은 사진이다. 지금 이 사진을 보면 엊그제 같기만 한데, 벌써 10년 전이다. 그리고 앞으로 10년후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나는 거의 상노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내 인생의 시간은 더 빨라질 것이다. 살만큼 살다가 삶의 종점에 다다랐을 때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들, 내 주위에 모든 것들, 물질이든 명예든 그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잠시 머무는 동안 그림자처럼 따르는 부수적인 것들일 뿐이다. 만일 해야할 일이 있다면 이제 더 이상 미룰 시간이 없다. 이 다음은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다. 누구도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인간 개인이 가진 시간, 열정, 에너지는 한계가 있다. 그 시간, 열정, 에너지를 어디에 쏟을 것인가는 ..
탐구는 신나고 신비로운 일 사람은 자연학적으로는 한번 태어나고 죽지만 인문학적으로는 여러번 태어나고 죽는다. 우리의 앎과 믿음, 감각이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할 수 있다. 나를 사로잡던 일도 어느 날 갑자기 시시해질 수 있고, 어제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산 세상이 오늘은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꿀벌은 밀랍으로 자기 세계를 짓지만 인간은 말로써 개념들로써 자기 삶을 만들고 세계를 짓는다. 우리가 가진 말, 우리가 가진 개념들이 우리 삶이고 우리 세계이다. 따라서 삶을 바꾸고 세계를 바꾸는 일은 항상 우리 말과 개념을 바꾸는 일에서 시작하고 또 그것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깨우침과 우리의 배움이 거기서 시작하고 나타난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며 삶을 배우고 세상을 배운다. 그들은 그렇게 말을 배워가며 삶을 만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