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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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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속의 낙관 세가지 비극적인 요소는 '인간의 삶을 제한하는 고통과 죄 그리고 죽음'이다. 행복은 얻으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행복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그 이유를 찾으면 인간은 행복해진다. 알다시피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 할수 있다. 이유가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인간적인 현상인 웃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을 웃게 하고 싶다면, 그 사람이 웃을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하면 된다. 즉 우스운 이야기를 해서 그를 웃겨야 한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웃음을 강요해서 진정한 웃음을 끌어낼 수 없다. 우리가 몇..
로고테라피2 로고테라피는 가르침도 아니고, 설교도 아니다. 도덕적 훈계와 거리가 먼 것 처럼 논리적 추론과도 거리가 멀다. 비유를 하자면 로고테라피 치료사가 하는 일은, 화가보다는 안과의사가 하는 일에 가깝다. 화가는 자기 눈에 비친 세상 모습을 전하려고 애쓴다. 반면에 안과의사는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수 있도록 해주려고 노력한다. 로고테라피 치료사의 역할은 환자의 시야를 넓히고 확장하는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잠재되어 있는 의미의 전체적인 스펙트럼을 환자가 인식하고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심함으로써 삶..
로고테라피1 로고테라피는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가는 인간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으로 보고 있다. 인간이 의미를 찾고자 하는 마음은 그 사람의 삶에서 근본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이며, 이 의미는 유일하고 개별적인 것으로 반드시 그 사람이 실현시켜야 하고, 또 그 사람만이 실현시킬 수 있다. 설문조사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16% 학생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표라고 대답한 반면, 78% 학생들은 자기 삶의 목표와 의미를 찾는 것이라 했다.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의지도 좌절을 당할 수 있다. 이것을 '로고테라피'에서는 실존적 좌절이라고 한다. 실존적이라는 단어는 세가지 의미로 쓰일 수 있다. 1)..
억압에서 갑자기 풀렸을 때 물속의 잠수함에서 일하던 잠수부가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올 때 가장 위험한 것처럼, 엄청난 정신적 억압을 받다가 갑자기 풀려난 사람은 도덕적, 정신적 건강에 손상을 입을 위험이 크다. 수용소에서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이제는 억압을 받는 쪽이 아니라, 억압을 하는 쪽이 되었다는 것 뿐이다. 그들은 이제 폭력과 불의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자행하는 가해자가 된다. 그들은 자기가 겪었던 끔찍한 경험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킨다. 이런 일을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에서 자주 발생한다. 억압에서 갑자기 풀려났을 때 도덕적 결함을 보이는 현상 외에도 정신 손상을 입힐 수 있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비통함과 환멸이다. 비통함은 그가 살던 마을로 돌..
나를 강하게 만드는 것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다.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주어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포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삶이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 우리에게 던져준 과제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바로 이것이 개개인마다 다른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 어떤 사람도 어떤 운명도 그와는 다른 사람, 그와는 다른 운명..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 'FINIS'라는 라틴어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끝이나 완성을 의미하고, 하나는 이루어야 할 목표를 의미한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 없다. 그는 정상적인 삶을 누리는 사람과는 정반대로 미래를 대비한 삶을 포기한다. 따라서 내적 삶구조 전체가 변하게 된다. 예를 들면 실직자가 이와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삶 자체가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미래를 대비할 수 없고, 목표를 세울 수도 없다. 벗어나기 힘들 것 같은 시련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은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마치 죽기라도 한 것 처럼,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삶이 날아간 것 같은 이런 느낌은 다른 요인에 의해 더욱 심화된다...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인간은 여러 조건과 환경적인 요인-생물적, 심리적, 사회적 성격으로 이루어진-이 만들어 낸 하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일까? 인간은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에 의해 우연히 만들어진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수 있어도 단 한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수용소에서는 항상 선택을 해야 한다. 매 시간마다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온다. 그것은 자유와 존엄성을 포기하고 환경의 노리개가 되느냐 마느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
운명 수용소에서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군중 속에 자기 자신을 파묻으려고 애썼다. 이런 일은 대오를 형성할 때 거의 무의식적으로 일어났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일이 수용소에서 가장 절박한 자기 보존의 법칙에 따라, 의식적으로 행해지는 경우도 있었다.그 법칙은 '될수 있는 대로 눈에 띄지 말라'는 것이었다. 잘 알다시피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항상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끄는 강요된 공동생활을 하다보면 때로는 잠시 동안이라도 사람들로 부터 벗어나 혼자 있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기만의 개인적인 공간,혼자있는 고독을 열망한다. 바로 그 몇 분 동안 여러 가지 형태의 운명이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 일과 어떤 일이든지 앞장서서 하는 것을 두려워 했다. 이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