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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의 사회학( 노명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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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로부터 고립 한때 '진보'라는 변화가 무명씨들의 존재를 보호해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팽배했던 때가 있었다. 사회가 언젠가는 더 나아질 것이며, 종국에 선은 승리하고 악은 패배한다는 진보에 대한 믿음 자체가 사라진 시대와 대면했을 때, 무명씨들은 위안에서 마지막 비상구를 찾는다. 더 나은 미래가 도래하리라는 믿음의 상실로 발생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에겐 따뜻한 위로가 그 어떤 명약보다 효과가 있는 법이다. 진보라는 믿음을 상실한 사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야만적임을 그대로 드러내는 비탄의 소리로 가득 찬 다큐멘터리보다는,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를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위안을 느끼게 해주는 판타지 영화를 더 선호하는 법이다. 학자는 깊게 책을 읽을줄 알지만, 깊게 읽을 수 있는 범위가 너무나 협소한 이른바 ..
죽음에 대한 성찰 뉴스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죽음을 보도 한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부터 폭탄테러 희생자,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뉴스를 통해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죽음을 접한다. 하지만 죽음 소식을 듣고도 우리 마음속에선 동요가 일지 않는다. 알지 못하는 사람의 죽음에서 슬픔을 느낄 사람은 없다. 뉴스가 보도하는 죽음은 되풀이 되는 일기예보만큼 일상이 되어버렸다. 어떤 일이 구경꾼이 되는 것과 당사자가 되는 것은 다르다. 당사자와 구경꾼사이에는 천국과 지옥처럼 넘을 수 없는 분리의 선이다. 타인의 죽음을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으로 구경하는 일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평범한 죽음은 시청자의 눈을 끌지 못한다. 죽음의 거대한 축적인 전쟁이 미디오로 통해 보도 되면, 그 보도속에는 애국심 선동은 있어도 슬픈..
배운 괴물들의 사회 풀들조차 자라면 변한다. 사회도, 인간도 성장의 끝무렵에선 성숙의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 아저씨와 아줌마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명사는 뻔뻔함, 능청스러움, 악착스러움 등이다. 나이는 먹었지만,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중년시절에는 그나마 아저씨, 아줌마라는 소리만 듣지만, 나잇값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변하지 않는다면, 더 경멸적인 표현을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성장하면 결실을 맺는 건 자연의 이치지만 비료라는 촉매제를 만나면, 식물은 좀 더 빨리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인간에게 비료같은 촉매제가 있다면, 그것은 성장을 축진하여 성숙의 순간을 당겨주는 배움이다. 한국 사람중 읽고 쓰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고작 1.7%이다. 대학 진학률은 2009년 기준 무려 81.9% 이다. 이 정도로 엄청난 양의 배..
성인, 집 대부분의 사람이 성장하면 짝을 찾고,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구성한다. 모든 가족은 고유한 탄생의 스토리를 갖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 모두의 탄생과 성장에 관여되어 있다. 삶에서 처음 배우는 공포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재에서 온다. 가부장제 질서하에서 아버지는 개인적 성격의 자애로움과 상관없이 기성의 권력을 상징하는 인물에 가깝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보다 세대를 앞서 살았던 사람들이 운명처럼 짊어져야 했던 시대의 이야기로 다양하게 연주된다. 사람들은 이렇게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사회적 운명을 뒤집어쓴채 괴로워하고, 신음하다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전 시대와 대결하는 방법을 깨닫고 그렇게 성인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그 사람..
게으름, 인정, 국가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의 정사正史의 주인공은 개미이지만, 외전의 주인공은 베짱이다. 경제는 꾸준히 성장했지만 노동시간은 도통 줄지않는다. 라파르그의 '게으를 수 있는 권리'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 상품의 과잉생산과 제조과정에서의 질의 저하에도 불구하고,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노동자들이 일을 달라, 일을 달라고 애원하며 시장을 가득 메웠다.... 일단 일할 기회가 생기면 모두 '와'하고 그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일에 대한 게걸스러운 욕구를 충족 시키기 위해 12,14시간의 노동을 요구한다. 하지만 다음 날에는 노동에 대한 이러한 집착을 부추길 수 있는 음식물 하나를 얻어먹지 못하고 길거리로 내쫓긴다. 한 생물체를 파괴하는 과잉노동, 다음에는 두달 혹은 넉달 동안의 ..
자살, 노동자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은 한 세기 이전에 출간된 책이다. 뒤르켐은 자살에서 관계를 파악하고 다시 관계에서 특정한 경향을 해석해 내고, 그 특정한 경향을 개인 외부에 있는 사회적 힘과 연결시켰다. ‘현상의 생성 원인은 개별적인 사례만 관찰하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원인은 개인의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심약한 기질이나 염세적인 삶의 태도와 같은 개인의 특이 성향만이 자살의 원인이라면 자살율은 기복없이 평균율의 법칙을 따를 것이다. 자살은 개인적 현상이지만, 자살들의 관계인 자살율 앞에는 '사회적'이라는 형용사가 생략되어 있다. 1997년과 1998년 우리는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라는 경제위기와 만난다. IMF라는 기호는 저승사자와 같았다. 가족은 해체되었고, 노숙자는 늘어났고, ..
섹스, 남자다움 섹스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은 퇴폐적인 행동이기에 품행이 방정한 사람이라면, 자위조차 멀리해야 한다고 배웠다. 선생님의 훈계는 몸에서 느껴지는 욕망에 대한 무조건적인 금지 명령이었다. 우리는 결혼이 허락되는 나이가 되었을 때, 결혼이라는 절차를 통해 남자와 여자 사이의 섹스가 더 이상 금기시 되지 않는 부부의 연을 맺는다. 그 남자와 여자는 생식을 위한 부부관계라는 거룩한 행위를 통해 자식을 얻었고,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지위를 획득했다. 부부는 섹스가 유일하게 허용되는 친밀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녀의 삼각형이 구성되면서 가족은 무성無性적 문화로 편입해 갔다. 권위주의 국가는 섹스를 쾌락이라는 욕망과 분리시켜 국가의 민족을 위한 재생산이라는 틀속에 가둔다. 권위적인 사회에서는..
수치심, 취미인간 처지가 바뀌면 생각이 바뀌기도 한다. 평소 야만적인 행동을 경멸했던 사람이 불가피하게 그런 행동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수치심은 문명이 바람직하다고 간주하는 행동양식에서 벗어났을 때 울리는 경고음이다. 우리는 매너와 예의범절이 권장하는 행동을 수행했을 때는 자부심을, 하지 않았거나 못했을 때는 창피함을 느끼도록 프로그램화 된다. 수치심은 자기통제를 강화시킨다. 자기통제의 영구기관인 수치심을 배우는 학습과정을 엘리아스는'문명화'라 불렀다. 문명화 이전 서양인들은 포크없이 음식을 먹고, 코도 함부로 풀고, 테이블에서 방귀도 부끄럼 없이 뀌었다. 엘리아스는 문명이 야만적인 사람에게 수치심을 가르치러 나서기 시작하는 순간을 책속에 담았다. 식탁위에서 어느 빵이 자신의 것인지, 어느 물을 마셔야 하는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