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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 그 창조적인 역사 (피터 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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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로 돌아가는 긴 여정(2) 권태는 남는 시간 관리와도 관계된다. 권태를 해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남는 시간을 알차고 즐겁게 보내는 것이다. 이 즐거운 자유시간을 여가 시간이라고 하자. 여가의 정의와 활용법에 대해 아직까지도 아리스토텔레스만큼 현명한 답을 내놓은 사람이 없다. 여가 시간을 즐거운 활동이고,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 한다. 또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가 있어야 하고 신체 그리고 특히 정신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즐기는 여가활동중 이 조건을 두루 만족시키는 건 무엇일까? 여행일까? 아니다. 여행은 보통 일에서 해방 되고자하는 목적이 있다. 그렇다면 텔레비전 시청은? 이게 과연 여가 생활일까? 절대 아니다. 머리와 몸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가끔은 여가생활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경쟁에 몰두하다보면 ..
권태로 돌아가는 긴 여정(1) 마음속의 공허는 내 마음속에 생명력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메울 수 있을 뿐이다. (파스칼) 권태는 인간이 겪는 정상적이고, 유익하고, 아주 흔한 경험이다. 머빈 킹처럼, 나도 가끔은 사람들이 권태를 더 넓은 아량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권태에 대해 더 참을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태의 위치는 어디일까? 즉 권태는 뇌의 어느 부위에서 느낄까? 뇌섬엽피질에서 권태를 느낀다고 할 만한 근거들이 꽤 있다. 뇌섬엽은 크기가 큰 올리버만한데 두개골 아랫부분 뇌간 근처에 위치한다. 신경과학자들은 인간이 인간임을 어떻게 자각하는지 설명하는데 핵심적인 열쇠가 이 부위에 있다고 말한다. 샌드라 블레이크슬리는 기능적 뇌영상실험에서 다음과 같은 행위를 할 때 뇌간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약물은 몹..
권태에도 역사가 있나? 권태에 역사가 있는지 물으려면 일단 두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 첫째, 인간이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권태를 느껴왔는가? 둘째 권태가 늘 인간 삶의 일부였는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 이다. 인간은 불행하게도 언제나 권태로울 수 있다. 많은 동물과 인간은 언제든 권태를 느낄 수 있지만, 모든 사회에서 사람들이 권태를 느낀 건 아니다. 그리스인과 로마인이 우리와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이들은 인간이 그 시대의 경험적 또는 지식적 체계에 속한다고 믿는다. 또 인간의 태도와 특성이 동시대의 사회적 힘에 의해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된다고 믿는다. 이런 견해를 취하는 사람들을 보통 ‘구성주의자’라고 부른다. 반면 이들과반대 입장을 취하는 자들이 본질주의자다. 이들은 인간이 특정한 경험..
한낮에 덮치는 병 아케디아acedia는 한낮의 악마라고도 한다. 수도자들의 병을 뜻하는 아케디아는 흥미로운 그리스어이다. 이는 나태, 게으름 내지는 무관심을 뜻하는데 영어로는 accidie다. 아케디아에 빠진 사람은 한 개인으로서 의미를 상실한다. 또 모든 욕구가 사라지고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진다. 끝내 자신이 하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여기고, 나아가 인생 자체에도 별다른 의미를 찾지 못한다. 카뮈가 이방인에서 만들어낸 기묘하고 좀비 같은 인물 뫼르소는 이 전통의 대표적인 후손이다. 뫼르소는 세상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무관심하고, 오직 자신이 사회적 기대에 응하지 않을 때에만 본능적으로 반응한다고 생각한다. 초기 기독교 시대의 영성가 에바그리우스가 말하는 아케디아의 중심에는 만성적 권태가 있다. 그는 아케디아에 대해 설명..
인간과 동물 권태 경제적 두려움이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밤에는 꿈까지 지배한다. 따라서 일할 때 초조하고 여가를 즐길 때 개운치 않다. (버틀런드 러셀) 인생에서 자주 맞닥뜨리게 될 이 권태라는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권태를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도 이 세상에 어울려가는 과정의 일부다. 어린 아이들도 비록 자기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는 못해도 권태를 느낄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이 ‘건전한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인간만이 권태를 느끼는 유일한 동물이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베멜스펠드와 베코프는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동일한 상황이 반복되고 자극이 없으면 권태를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동물들은 따분함을 느끼면 더 많이 잔다. 또 ..
만성적 권태 평범한 사람들은 시간을 어떻게 소비할까 생각하지만, 지성인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까 궁리한다. (쇼펜하우어) 2003년 미국 콜롬비아대학교의 국립약물중독 및 오남용센터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십대 절반 이상이 스트레스, 잦은 권태감, 지나친 금전 소비중 하나에 빠질 경우 약물을 남용할 수 있다고 한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있는 아이처럼 만성적 권태를 겪는 사람도 자극적인 행동으로 스스로를 치료하는 경향이 있는 걸로 보인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도파민 조절 수용체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뇌는 도파민 수치를 평균 만큼 효율적으로 조절하지 못한다. 도파민의 양을 적절히 조절하는 수용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위험하거나 짜릿한 행동을 할 때 매우 큰 자극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안..
권태란?(2) 스펙스에 따르면 실존적 권태는 한 개인이 스스로를 타인으로부터 고립시키면서 생겨나는 일종의 공허함이다. 전통과 공동체가 사라져버린 세상이다. 현대의 개인은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나태나 여유를 즐기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권태 내지는 실존적 권태라고 부른다. 또 멜랑콜리 내지는 우울증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존 안소니 쿠던의 ‘문학용어 및 이론사전’을 보면 잉여인간이라는 장르가 나온다. 잉여인간이란 이상적이지만 소극적인 인간, 즉 도덕적, 사회적 문제에 민감하나 어떤 행위도 취하지 않는 인간을 말한다. 이런 상황은 개인의 나약함과 나태함 때문이기도 하고 행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적, 정치적 제약 때문이기도 하다. 잉여인간, 멜랑콜리, 실존적 권태, 경미한 우울증, 이 모두는 저마다 다른 ..
권태란? (1) 우리는 언제 권태를 느낄까? 바로 앞을 짐작할 수 있고 단조로우며, 벗어나기 힘든 상황에서 권태를느낀다. 또 상황이 너무 오랫동안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권태를 느끼기 쉽다. 권태는 특히 숨 막힐 듯 갑갑한 분위기의 집안에서 그 싹을 틔운다. 고인 물처럼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상태와 지긋지긋한 무료함이 이런 종류의 권태를 만들어 낸다. 성인들은 권태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로 양쪽으로 펼쳐지는 사막은 가도 가도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이런 길을 운전하면 사고를 내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런 성격의 권태를 상황적 권태라고 한다. 또 다른 성격의 권태는 과도함과 반복의 원인 이다. 포만감이 극에 달하고, 싫증나고 물려버릴때까지 계속되는 이 경험은 라르스 스벤젠이 말하는 과잉에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