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김동춘)

이라크 전쟁으로 본 미국1

 

 

2003318일 부시는 후세인을 향해 ‘48시간 안에 무장해제 하지 않으면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것은 전쟁선포였다. 그의 전쟁선포는 자신이 미국의 최고 권력자이자 사실상 작은 카이사르, 즉 제국의 황제라는 것을 온 세계에 천명한 것이었다. 부시행정부는 자신의 공격 혹은 침략행동을 용서 못할 악에 대한 정의의 심판으로 지구상 가장 악독한 독재정권으로부터의 해방을 호도하면서, 사람을 죽이고 문명을 파괴하는 전쟁이 평화를 향한 불가피한 대안이며, 이라크의 무수한 민간인과 참전군인들이 향후 수년, 수십년 동안 감당해야 할지도 모르는 엄청난 고통과 상처는 자유를 얻기 위한 불가피한 대가라고 그럴듯하게 설명했다.

 

9.11테러 이후 위기를 기회로 포착한 부시행정부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차가운 반응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미국의 영원한 형제국가인 영국 블레어 수상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또다시 이슬람국가 정벌로 나선 셈이다. 이미 2002년 말부터 입만 열면 우리는 이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악과 싸우는 것이다.’라고 말해온 부시는 아버지 부시의 대를 이어 이제 후세인이라는 도저히 하늘 아래 함께 존재할 수 없는 악마중의 악마와 두 번째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상대가 나를 공격할 것이라는 예상을 전제로 자신의 안보를 지킨다는 명분하에 먼저 상대방을 공격하는 이른바 예방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누구도 부시가 움직이는 미국을 견제할 수 없었고 아무도 황제 부시의 전쟁도발을 말릴 수 없었다.

 

이라크가 대량살상 무기를 갖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한 유엔무기사찰단의 조사결과를 지켜보자는 미국의 애초 입장은 요식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았다. 유엔은 물론 국내외의 모든 반대 목소리에 귀를 막고 부시행정부가 이렇게 단독행동을 감행한 명분은 9.11테러에 대한 정당한 보복을 하겠다는 것이지만, 깊게 보면 이미 이전에 교토기후협약을 탈퇴했던 그 기조, 즉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미국의 외교정책 기조가 관찰된 것이다. 그 바탕에는 미국은 자기 혼자의 힘으로 전쟁을 치를 수 있고 혼자의 힘으로 세계평화를 이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후세인의 이라크는 지구역사상 가장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적 부를 자랑하는 미국의 맞수가 되지 않는 빈사상태의 피폐한 국가라는 것이 곧 확인되었다.

 

왜 세계헤비급 챔피언이 아마추어 선수와 싸우기 위해 주먹을 휘둘러야 했을까? 고전을 들추어보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듯이 전쟁은 모든 것의 아버지요 왕이다.’ 전쟁은 최고의 정치이며 교육이며 선전이며 문화이고,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 활동이다. 결국 전쟁의 목적은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 이상이다. 그래서 전투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쟁으로 보여주려는 그 무엇일까? 세계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의 이라크공격은 이라크뿐만 아니라 나머지 불량국가에게도 본때를 보여주면서 전 세계에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해 뭔가를 얻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아라비아 해에 정박해 있던 미 함정에서 토마호크 미사일이 불을 뿜었다. 미군 병사들은 컴퓨터 스크린 앞에 앉아서 수천마일 떨어진 목표물을 향해 전자폭격을 감행했다. 곧이어 수백대의 전투기가 제공권을 장악하고 이라크 상공을 자유롭게 날아 바그다드의 전략거점을 폭격하였다. 월스트리트의 다우지수는 연일 기록을 갱신하였고 주요 군수산업체의 주식은 개전 후 연일 상종가를 쳤다. 경제 분석가들은 이제 시장이 투명해졌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하였다. 사막에 내동댕이쳐진 미국 병사들과 후세인의 공화수비대, 그리고 이라크 국민에게는 이 전쟁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지만, 컴퓨터 모니터로 전황을 보고받는 펜타곤 지휘관이나 워싱턴의 정치인, 월스트리트 기업인들에게는 판돈을 건 도박 같은 하나의 게임이었다. 그중에서 월스트리트에서 오랫동안 기다렸던 투자자들이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한쪽에서는 사람이 죽어가는 데 다른 쪽에서는 돈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은 끔찍하고 잔인한 일이지만, 어떤 전쟁이든 죽는 사람과 돈 계산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법이다. 전쟁이 벌어진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벌써 미국 미디어에서는 후세인 제거 후 이라크 국가건설계획 문제가 서서히 거론되었다. 특히 타임지는 후세인 정부요원 중에서 누구를 처형하고 누구를 살려주고 포섭할 것인가, 전쟁비용은 어떻게 충당하고 전후복구에는 누가 참여할 것인가따위의 문제들을 기사로 다루었다.

 

후세인 동상이 무너지면서 바그다드에서는 미군을 환영하는 인파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후세인이 통치하던 지난 24년 동안 감히 숨도 쉬지 못하던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활개 치면서 후세인 사진을 찢고 동상을 발로 찼다. 미군은 바그다드를 포함하여 이라크를 사실상 점령한 뒤 해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은 어떤 점에서 해방이었다. 엄혹한 독재에 시달리고 이란과의 전쟁, 경제제재로 지친 이라크 사람들, 특히 집권 수니파에게 온갖 고난을 당해온 다수파인 시아파와 후세인 치하에서 희생당한 쿠르드족에게는 분명히 가슴 벅찬 해방이었다. 그리고 후세인 독재정권에 반대하다가 고문과 테러, 학살의 고통을 당해온 일부 저항세력에게도 미군은 해방의 메시지를 들고 온 구세주였다. 그러나 미군의 바그다드 진입은 분명히 군사점령이었다. 이라크 사람들은 스스로 독재자 후세인을 추방하지 못한 결과로 맞이한 미국의 군사점령은, 지난 1945년 일제를 자신의 힘으로 추방하지 못한 우리 민족이 매카서(맥아더) 포고령 제1호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변덕스럽고 사나운 시어머니를 안방 깊숙이 끌어들인 꼴이 되었다. 그래서 바그다드에서는 대동세상을 맞이하는 해방의 축제 대신 약탈, 방화, 강도 등 거대한 혼돈과 무질서가 나타났다. 그것은 후세인의 억압과 지긋지긋한 전쟁의 종료가 아니라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을 음울하게 예고하고 있었다.

 

바그다드를 점령한 미군은 자신들을 해방군으로 여길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라크 사람들이 자신들을 별로 환영하지 않으며, 심지어 적대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검문소에서 미군과 이라크 민간인들 사이에 벌어진 충돌이 그것을 증명했다. 검문소에서 미군의 명령은 곧 법이었다. 점령 후 미군에 의한 피해가 늘어날수록 이라크인들의 분노는 더해갔다. 특히 이라크인들의 불만과 분노는 주로 미 점령군이 보여준 일상적인 태도에서 촉발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슬람 문화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는 미군들은 전세계 각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 그렇듯이, 이들 국가에서 거의 금기된 포르노 잡지를 보란 듯이 펴들고 다녔다. 무리한 수색과정에서 여성들이 몸에 손대는 경우도 있었다. 아랍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미군은 마치 모든 이라크 사람들이 당연히 영어를 알아들어야 한다는 듯이 빠른 영어로 소리 질렀다. 미군은 이라크사람들이 19세기 아메리카 인디언 대하듯 하였다. ‘역지사지易地思之미국인들은 이러한 격언을 모른다. 만약 외국군대가 도와준다는 명분하에 미국 땅에 멋대로 들어가서 반항하는 백인들 한두 명을 두들겨 패고 땅에 엎드려 손을 뒤로 하게 하고, 그의 머리를 군화발로 짓이기는 일이 TV에 방영된다면, 온 미국 사회는 분노와 복수심으로 들끓을 것이고 당장 그 야만적인 인간을 죽여라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할 것이다.

 

전투 종료후 한 달, 두 달이 지나가도 전기와 물이 공급되지 않자 이라크 사람들은 갈증과 더위에 고통 받았으며 전기와 물을 외쳤다. 이라크는 이제 테러세력의 메카가 되기 시작했다. 후세인 패잔병, 주변에서 몰려든 테러집단, 이라크 내의 반미세력이 연대하여 미군과 미군에 협조하는 이라크 경찰, 유엔, 심지어는 적십자에까지 총격을 가했다. 전쟁 직전 수많은 아랍전문가들이 기독교문명의 선봉장인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하고 민간인을 살상할 경우, 전체 중동지역을 뒤흔들어 놓고 결국 테러 세력의 공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줄곧 지적한 바로 그 상황이었다. 민간인들과의 충돌이 수없이 일어나 미군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자, 미군 당국은 병사들이 위기상황에서 자기방어를 위해 불가피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고 발표했다. 사실 전투 중 발생한 민간인 희생에 대해 병사들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 미군지휘부와 누군가가 이들에게 명령을 내렸으며, 병사들은 그 명령에 따라 총을 쏘았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