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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보리스 시륄니크지음, 정재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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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의 부재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낯선 것과 대면하면 흥미를 느끼지만 가족 없이 자란 아기들은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은 뭔가 마음을 안정시켜줄 수 있는 애착의 대체물을 찾아나선다. 이때 가장 안정적이면서 영속적인 감각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자기 신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아이들은 모든 자기중심적인 행위를 자기 몸에 집중시킨다. 아동을 혹독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키울 것을 권고하기도 한다. 사실상 오늘날의 부모들은 자신들이 누리지 못한 것을 자녀에게 주기 위해 온갖 노고를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노고는 아이들의 발달을 돕는 좋은 조건을 제공하기보다 과잉으로 인한 병리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가축화된 동물들은 자연적인 환경에서 사는 동물에 비해 오래 살지만, 훨씬젊어서부터 노쇠현상을 나타낸다. 가축들..
섹스의 죽음 "드디어 불구가 되었다. 이제 섹스로부터 해방이다. 자유, 자유,... 여태까지 섹스 때문에 여자들에게 매여 있었지만 앞으로 기꺼이 섹스를 버린다. 감시당할 필요도 없고 책임질 것도 없고 얼마나 홀가분 한가. 사랑의 댓가는 감옥이 아니던가? 우리는 다만 자유를 누리고 싶을 뿐입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들 만큼 대하기 편한 사람은 없거든요. " 1986년 지는 독자들에게 삶에서 가장 가치를 두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여론조사를 했다. 음악, 스포츠, 가족, 사회적 성공이 상위를 차지했다. 섹스는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물론 여론조사는 부분적인 진실만을 알 수 있다. 국가마다 개인마다 다르다. 사랑이란 감정은 언제나 새롭게 태어난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이든, 신을 향한 사랑이든 사랑은 격앙..
한쌍의 커플이 만들어 지기 위해 한 쌍의 커플이 만들어지기 위해 우선 환경의 제약을 통과해야 한다. 만남이 이루어지는 지리적 공간이다. 발달한 교통수단 등은 이같은 지리적 공간에 문화의 색채를 더해 놓았다. 경제적 수준이 높을수록 커플을 형성하는 시기가 늦어진다. 사회적 독립을 위해 오랜 시간이 필요한 그룹에서는 만남이 더디게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의미있는 공간에서 만남을 갖는다. 문화적, 정치적 공간 등에서 동류의 사람들과 만난다. 이런 장소에 드나듦으로써 자신과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신체적, 지적, 사회적 제약을 피할 수 없으며 따라서 선택할 수 있는 상대 역시 극도로 한정되어 있다.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제시하는 미끼를 관찰해 보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여성..
사랑의 흔적에서 평온한 애착으로 잠자리를 거듭하는 동안 연인들은 연정을 잃어버린다. 사랑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어째서 이렇듯 사랑은 한번 사그라지면 다시 살아날 줄 모르는 걸까? 사랑이라는 말의 역사는 동물적 욕망과 에로티시즘의 문제를 동시에 제기한다. 넓은 의미에서 사랑은 우리를 특정 대상으로 향하게 만드는 애정담긴 힘을 가르킨다. 자애로운 어미의 사랑뿐만 아니라, 성적 흥분을 촉발하는 격한 감정, 사물이나 사상, 혹은 자기 스스로에게 열렬히 끌리는 사랑도 포함된다. 생물학적 요인에 뿌리를 두고 있는 아뫼르(Ameur; 짐승의 발정 난 상태)는 호르몬 분비와 함께 성적대상을 맹렬하게 찾아나서게 만든다. 그러다 마침내 적당한 개체를 발견하면 이번에는 이쪽에서 성적 행태를 촉발함으로써 서로 간에 감각적 접촉이 이루어진다. 이로서 ..
부부의 성 애착은 교묘하게도 일상적으로 엮어진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애착은 매일매일 그 흔적을 각인해 놓는다. 애착을 쌓아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그것에 무감각해지고, 애착대상을 상실했을 때라야 비로소 그 위력을 실감한다. “나는 내가 남자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 남자가 얼마나 절실 했는지를, 그 남자가 곁에 있을 때는 의식조차 하지못했지만 지금은 그 빈자리가 너무나 휑하다.” 원숭이의 경우 문제가 있는 어미는 새끼의 양식을 빼어먹고, 새끼의 머리를 밟고 지나가는가 하며 새끼가 다가오면 밀어낸다. 새끼는 고약한 자기 어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불안스럽게 과도한 애착을 보였다. 이 때문에 새끼는 제대로 놀지 못하고 사회화 과정을 겪거나 그룹의 의식을 배우지도 못했다. 청소년기가 지난 다음에..
아버지의 의미 자녀의 탄생은 아빠에게 매우 중요한 사건인데 왜냐하면 이로인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가 아기를 대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엄마에 비해 보잘것 없고 미적지근하다. 반면에 엄마가 느끼는 감정은 강렬하면서도 애정이 넘치고, 애틋하면서도 생생하다. 아내의 출산이후 남편들은 마음이 공허하고 허탈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산모는 힘들고 모진 방식으로 자신이 엄마임을 체험했다. 하지만 남편이 아버지로서 인정 받으려면, 자기 아내를 통한 사회적 인정에 의해서만 '아버지'라는 이름을 얻게된다. 일반적으로 아빠들은 엄마들에 비해 아기를 단장하는 일에는 소홀하지만 훨씬 잘 놀아준다. 엄마를 대신해서 아기를 돌보는 이같은 아빠의 행태는 아기의 발달에 변화를 가져온다. 아기는 엄마에 비해 ..
아버지의 존재 암놈 펭귄은 알을 낳고나서 수놈을 둥지에 밀어넣고 떠나 버린다. 그러면 수놈이 둥지에 웅크리고 앉아서 널찍한 아랫배로 알을 품는다. 수놈은 암놈이 돌아올 때까지 두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채로 체온을 유지하고, 폭풍설에 살아남기 위해 떼지어 지낸다. 초식동물의 새끼들은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신경생물학적 매카니즘에 따라 어미 뒤를 따라다닌다. 먹을 것이 곳곳에 늘려있어니 어미를 쫓아다니면서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때로 포식동물이 나타나면 커다란 수놈 들소들은 새끼를 거느린 암놈 무리를 앞에서 지켜주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 수놈들은 암놈과 새끼들 무리에서 떨어져서 자기들끼리 무리지어 생활한다. 이처럼 초식동물은 사방에 먹이가 늘려 있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조건 지어진 대로 살아가도 충분히 살 수 있다. 이..
개인사의 생물학 무의식은 기억할 수 없다. 의식의 영역안에 들어있지 않은 이같은 기억을 회상할 수 없지만 격한 감정이나 행동을 유발한다. 세상에 태어난지 6개월된 아기가 엄마와 떨어짐으로써 느껴야 했던, 그 절망감을 어떻게 기억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 같은 비극은 당사자의 인성발달에 영향을 미쳐 결국 그를 정에 굶주린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사실은 현실에서 관찰할 수 있지만 마치 생물학적 분자와도 같이 의식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사실은 결코 기억할 수 없다. 암양은 출산 직후 몇시간 동안에만 새끼에게 모성 본능을 나타낸다. 따라서 갓태어난 새끼는 바로 이때를 놓치지 않고 어미를 감각적으로 자극해야 관심을 받을 수 있다. 암양은 출산 직후 몇시간 동안은 자기가 낳은 새끼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새끼에게도 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