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죽음이란 무엇인가? (셸리 키건, 박

(19)
다시 삶을 향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관한 생각을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죽음은 별로 유쾌한 주제가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마음속에서 몰아내려고 한다. 죽음에 직면할 때조차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지구라는 별에 잠시 머물렀다 떠난다는 사실을 얼마나 자주 떠올리는가? 우리는 이런 질문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죽음을 떠올릴때 우리 머릿속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이는 삶과 죽음에 관한 사실에 직면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이는 보편적인 반응이다. 인간은 기계에 불과하다. 우리는 사랑하고, 꿈꾸고,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기계다. 계획을 세우고, 이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그런 기계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기계다. 그리고 기계가 작동을 멈추는 순간 모든게 끝난다. 죽음은 우리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자살에 관하여(2) 자살의 합리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장담할수 없기 때문에 자살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살의 결심 같은 것은 일종의 도박과 같다. 인간의 도박의 세계에서 벗어날수 없다. 우리는 불확실 한 상황에서도 어떻게 하든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는 현실 속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반적인 원칙과 위배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가치있는 삶을 회복할 가능성을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고통스런 삶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 역시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다. 자살은 가치있는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을 날려버리는 것이다. 가치 없는 삶을 살아아야 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이라면, 자살은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당연히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하..
자살에 관하여(1) 수명은 우리 통제력 범위 안에 잇다. 마음만 먹는다면 자살을 통해 우리 삶을 일찍 끝낼 수 있다. 어떤 경우에 자살은 허용가능한가?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우리는 자살을 적절한 선택이라 인정 할 수 있는가? 자살을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증거라고 받아들인다.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해도 자살은 비도덕적인 행동이다. 자살에 대해 이야기하면 종종 감정이 앞서기도 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도덕성과 합리성의 개념을 구분하는 것이다. 나는 자살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따로 구분해두고, 이들을 서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리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한편으로는 합리성에 관한 문제들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덕성에 관한 문제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합리성과 도덕성에 관한 질문에 대해 생각할 때 ..
죽음을 마주하고 산다는 것(2)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비춰볼 때,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답은 조심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조심스럽게 살아가야한다. 조심하지 않으면 예기치 못한 사고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우리 모두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 인생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위험을 상기시켜 준다. 자칫하다가 인생 전체를 완전히 망쳐버릴수 있는 위험이 있다. 우리는 신중하게 살아가야 한다.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회할 수 있는 실수에는 두가지가 있다. 한편으로는 목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잘못을 범한 경우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올바른 목표를 선택했지만, 달성하지 못한 경우이다. 목표 선택에 신중해야하고, 목표달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
죽음을 마주하고 산다는 것(1) 우리는 죽음에 대해 세가지 태도를 취할 수 있다. 부정하는 것, 인정하는 것, 무시하는 것이다.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죽을 것을 인정하고, 사실에 직면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태도는 좋은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죽음에 관해 마음속에서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 가장 좋은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죽을 운명이라는 진실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지금과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무시한다는 것은 합리적 이지 않은 태도이다. 그렇다면 죽음의 본질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야 한다. 죽음에 관한 사실들은 여러분의 행동에 변화를 일으키는 동기를 제공하기도 하고, 여러분의 행동을 바꾸도록 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죽음에 관한 사실들은 그것을 떠올릴 때 행..
삶의 가치 삶에서 계속 좋은 것을 얻고 있다면, 죽음이 그런 축복을 모두 앗아가기 때문에 죽음은 나쁜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전체적인 차원에서 삶이 좋은 것들을 전혀 제공해 주지 않는다면, 그때는 죽음이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것이라 하겠다. 삶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고 있는가? 아니면 나쁜 것을 주고 있는가? 계속해서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삶인가, 아니면 삶을 지속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가? 어떤 요소들이 좋은 삶, 나쁜 삶을 이루고 있다고 흑백논리로 이야기 할 수는 없다. 즉 절대적인 차원에서 삶이 좋은 것,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상대적인 차원에서 더 좋은 삶, 나쁜 삶이 있을 뿐이다. 과연 무엇이 삶에서 얻어야 할 가치있는 것들인가? 좋은 직업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즐거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무거움 우리 모두 죽을 거라는 사실은 필연적인 진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죽음의 필연성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내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 자체로는 충분히 나쁘지만, 설상가상으로 거기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게 더 나쁘다. 내 존재에 대한 핵심적인 진실에 작면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죽음을 더 나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가 아무것도 바꿀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죽음에 대한 절망감도 어느 정도 사그라질 것이다.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감정적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일들로부터 더 이상 가슴을 졸이지 않아도 된다. 실망할 필요도 없다. 다른 결과는 처음부..
영원한 삶에 관하여 삶의 모든 축복을 앗아가기 때문에 죽음이 나쁜 것이라고 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영생이 아닐까? 삶에서 모든 축복이 사라져버렸다면, 죽음은 여러분에게서 좋은 것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펼쳐질 삶이 전체적으로 좋은 것일 때만 죽음은 나쁜 것이라 할 수 있다. 삶이 앞으로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죽음은 절대 나쁜 것이 아니다. 삶이 어떤 것을 주고 있는지 먼저 알아뵈야 한다. 이전까지 삶은 분명히 좋은 것이었는데, 50, 80,100살로 넘어가면서 어떤 시점에서 나쁜 것으로 변할 수 있다. 영원히 노화가 계속되고, 육체가 죽지 않고, 정신의 희미하고, 몸은 허약하고 병들어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영생이 이런 것이라면 죽음은 오히려 축복이다. 몽테뉴 역시 노년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 고통과 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