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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와 그 적들 (이나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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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그래도 희망에 산다. 금방이라도 망할 것 같이 호들갑을 떨지만,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느냐는듯이 시치미를 떼는 곳이 한국이다. 누구는 냄비근성이라 하지만, 어쩌면 하도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에 웬만한 일은 넘어갈만큼 내성과 포용력이 생긴 탓일 수도 있다. 사람 옆에 바짝 붙어 앉으려 하면 침범해 오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지는 사적인 거리가 훨씬 큰 서양사람의 눈에 한국인들은 때론 무례해 보일 수도있다. 살이 좀 접촉해도 개의치 않는 것은, 그만큼 사람을 좋아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선진국은 재미없는 천국이고,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라 하기도 한다. 밤늦게까지 비교적 이렇게 안전한 상태로 불을 밝힌 상점과 술집을 돌아디니며 놀수 있는 나라가 전세계에 몇 개국이나 되겠는가? 조금 아쉬운 점은 그렇게 어울려 일하고, 노느라 혼자..
즐거운 삶을 위하여 결혼제도의 폐해, 부부생활의 허위성에 대해 진절머리를 치는 이도 있다. 한편으로는 쓸쓸하게 늙어 죽는 것이 아닐까? 모아놓은 돈도 없는데 직장에서 짤리면 혼자 어떻게 사나하는 현실적 걱정들도 한다. 심리적인 문제점이 없어도 혼자 생활을 하다보면, 병 들었을 때나, 실직할 때가 더 불안할 수 있다. 반대로 스스로 부족하고 불만스러운 모든 상황이 결혼하지 않은 탓이라 생각하고, 혼인만 하면 문제가 모두 없어질 것이라는 비현실적 기대를 하는 이도 있다.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좀 불편해도 참고, 의견이 다를 때도 조율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갈등이 생겨 충돌한 뒤 서로에게 사과하는 화해 과정도 어렵게 여겨질 수 있다. 배우자나 자식이 없어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일종의..
가치관 전문적인 쪽으로만 훈련을 받다보니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성장이 멈춰 중도에 주저앉아 버리는 영재도 적지 않다. 훌륭한 영재가 되도록 아이들의 능력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아이의 잠재력을 알아주는 훌륭한 스승, 감춰진 능력을 자유롭게 발휘하게 해주는 부모, 독특한 생각을 포용해 주는 열린 사회 등의 외부조건이 함께 충족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약자와 소수에 따뜻한 배려. 정의롭지 못한 일을 거부하는 양심, 사회에 소속감을 키워주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국사, 철학, 노동윤리, 운동을 통한 팀워크, 동아리 활동을 통한 리더쉽보다 영어, 수학만 강조하다보면, 오히려 진짜 인재는 사장되어 버린다. 머리만 좋은 영재보다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는 가슴 따뜻한 일꾼이 필요하다. 연예인들의 얼굴을 TV나..
남들처럼 체면이나 남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남들 처럼’이라는 말은 일종의 덫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으로 끝없이 불안해질 수 있다. 남에 대한 질투와 선망뿐만 아니라 대세에 속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거나, 본인이 못나 보이지 않나 하는 불안감도 있다. 정작 원하는 삶은 따로 있는데, 남을 의식하며 가짜 삶을 살면 하루하루가 버겁고 힘들어진다. 심리분석을 하면서 '남들처럼' 이라는 허상을 버리고 참된 자신의 모습을 찾도록 도와주려 해도 거부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엉뚱한 고집을 부리느라 세상 돌아가는 것을 '너무 몰라' 몰락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주관이나 철학에 따른 선택이라면, 부끄러울 것도, 꿀릴 것도 없다. 대부분의 삶이 자기에게 특출한 ..
약해져 가는 우리 그리고 치유 배가 난파 되거나 숲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사막이나 추운 산에 홀로 남겨졌을 때, 사람들이 죽는 이유는 저체온증이나 탈수 같은 신체증상 때문이 아니라, 공포와 불안으로 삶에 대한 희망을 놓아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짐승은 위험이 닥치면 재빨리 도망칠 수 있게 심작동과 호흡 횟수가 빨라지며, 말초 혈관으로 가는 혈액량은 줄고, 머리와 심장으로 피가 몰린다. 전형적인 공황장애의 형성 기전이다. 또한 생명에 위협이 오는데 음식을 먹거나 잠을 잘 여유가 없으니 소화기관이나 신경호르몬 체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정신신체 질환, 즉 스트레스와 감정적 원인으로 인한 신체증상과 불면 등 다양한 심리적 증상도 찾아온다. 정치적, 경제적 위기가 닥치면,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불안과 우울감 등의 증..
종교, 귀신 인생이 곤두박질치듯 무너질 때 사람들은 자포자기, 근거없는 낙관론, 우왕좌왕, 책임회피 등의 증상을 보인다. 사이비교 교주들은 뛰어난 화슬과 용모, 따뜻한 마음 씀씀이와 강력한 카리스마까지 갖추고 있어 마음 붙일 곳 없는 이들은 자신이 잃어버린 정체성과 고향 찾는 기분에 빠져들고, 마침내 기존 사회와 단절 된다. 한국은 사람은 많고 땅은 좁아 경쟁이 심하다. 그러나 그만큼 좋은 환경을 가졌기 때문에, 많은 인구가 행복하게 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막, 동토, 습지 등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국가의 사람들에게는 사계절 모두 아름답고 숲, 강, 논밭이 모두 아름다운 한국이 천국처럼 보인다. 한국인은 현세, 즉 지금 사는 현실에 대한 사랑이 깊다. 굳이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에서 사는 것을 상상할 필요..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찾는 사람들 위험성이 알려져 있는데도 약물남용에 빠지는 이유는 멋있게 보여서, 주변 친구들이 하니까, 호기심으로 사는게 지겨워서 등 다양하다. 대마초나 담배, 감기약 정도는 해롭지 않다고 시작했다가 점점 강한 자극을 찾는 것이 문제다. 일단 신체적 의존이 생기면, 아무리 의지가 강해도 의학적 도움 없이는 그만둘 수 없다. 남들의 평가에 인생이 엇갈리는 연예인들은 능력보다 주위사람들에 의해 자기인생이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통제점이 자기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기력하다. 공연이나 연기 도중 엄청나게 집중해서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연예인들로서는 약이라도 먹고 최대한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을 수도 있다. 조명이 꺼지는 순간의 허무감과 피로가 때론 약물이나 술, 섹스 같은 것으로 도망가고 싶..
휴가, 술 고통과 좌절을 겪으면, 잠시만이라도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에서 멀어지기 위해 어딘가로 떠나버리고 싶은 것이 보통 사람의 마음이다. 떠날 형편이 못되면 모든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타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떠남은 낯선 세계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나를 만들고 경험한다는 면에서 인생의 큰 도약일 수 있다. 고향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세계로 길을 떠나는 행동은 자신의 미숙함과 이별하고, 진정한 독립적인 인간이 되는 일종의 영웅적인 여정이다. 익숙한 편안함을 박차고 낯설고 험한 곳에서 갖은 고생을 하는 어려운 과정을 견뎌내, 인격의 성숙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홀로 광야에서 사탄과 마주하며 대중과 함께 할 날을 준비했던 예수나 오랜 고행으로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체험이 그중 가장 높은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