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이감을 느끼는 아이로 키우기 (카

(16)
보이지 않는 시민 아이는 그저 아이일 뿐이다. 절대로 미완성된 불완전한 어른이 아니다. 아이는 그저 만들어지고 진행중이다. 우리가 사는 진짜 세상에 있는 나무들은 작은 싹에서부터 시작되고, 그다음 작은 가지들이 나오며, 그위에 연한 잎사귀가 달린다. 그것들은 나름의 자연법칙의 속도에 따라 자란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간난 아기로 태어나서 이후에 아이가 되는거지, 다 자란 채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즉 자기내면의 질서와 자신만의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아이를 다루면, 주위상황과 내면의 질서는 조화롭지 못하게 되는데, 이것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주변과 화합을 못하게 한다. 몬테소리는 아이들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사회와 어른들의 삶에서 아이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확신하며, 만일 우리가 이런 확신의 중요성..
벽돌담인가, 아름다운 모자이크인가? 지금까지 그 누구도 진심으로 아이 영혼에 숨겨진 공감과 친절, 관용의 재산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다. 진짜 교육의 힘은 이런 보물의 문을 여는 것이어야 한다. ( 엠마 골드만) 경이감이 없다면, 인간은 점차 반복성에 빠지게 될 것이고 자신의 삶을 참되게 살아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 요한바오르 2세, ‘이성과 신앙’) 아이의 관점에서 볼 때 자극이 불필요하게 넘쳐나면, 그것이 곧 그 아이에게 과잉자극이 되는 것이다. 아이의 필요를 잘 아는 사람은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다.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에게 아이에 대한 지식과 아이가 매순간 필요로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민감성이 있다면 아이는 균형있게 발전할수 있다. 신경과학에서는 정상적인 환경과 최소한의 자극을 강조한다. ..
추악주의 추악주의는 진짜 아름다움이 없는 것을 말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존재하는 모든 만물안에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고 했다. 이 세상에는 백퍼센트 완벽하게 추악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존재하기만 해도 그 안에는 뭔가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진짜 아름다움은 세상 모든 곳에 있고, 모두를 위한 것이다. 단지 그것을 느낄수 있는 감각이 있는 사람들만 알아채고 누릴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경이로운 것들이 가득한 현실에서 살고 있지만, 직관력을 발달시킨 사람만 그것을 볼 수 있다. 그런 감각이 없으면, 모든 것은 그저 평범한 것이 되고 놀라운 일도 그저 단순한 우연이라고 치부하며,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열쇠없이 세상의 문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경이감을 느끼는 아이로 교육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
아름다움 과연 무엇이 경이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우리는 아이가 사물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경이감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어떤 고대 철학자들은 이런 사물의 존재안에 있는 속성중 하나가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유행에 따른 아름다움은 우리 문화에 뿌리깊고 진실하며, 오래가는 진짜 아름다움을 자주 사그라지게 한다. 철학자들은 말하는 아름다움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파타고라스는 수학안에 아름다룸이 있다고 했다. 그는 수학에 대해 잘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아름다움을 보았고, 그 진가를 매길 수 있었다. 만일 우리중 누군가가 수학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아름다움이 수학에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진가를 매길 ..
신비감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깊고 아름다운 경험은 바로 신비감이다. 신비감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이것은 모든 진실한 예술과 과학의 원천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이들은 저절로 신비감의 존재를 알게 된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신비감에 다가가는데, 이것이 배움과 알고 싶은 욕구를 계속 살아있게 해준다. 신비감은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말하는게 아니다. 그것은 파고 또 파고 들어가도 끝이 없는 것이다. 또한 아이들이 경이감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볼 때 이 경이감이 알고 싶어하는 욕구라면 신비감은 아이들을 매료시키는 존재이다. 하지만 반대로 어른들은 신비감을 귀찮아 하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 범위안으로 그것을 축소하면서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합리화 하고 싶어한다. 아이..
틀에 박힌 일상에 생명력 불어넣기 경이감은 틀에 박힌 일상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다면 과연 일상이란 무엇인가? 일상이란 유용하고 조직적인 행동들이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로서, 때로는 일정시간이 정해져 있거나 누군가의 관리를 받기도 한다. 또한 일상은 한 집단이나 가족에게 질서를 부여하거나, 혹은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는데 종종 필요하기도 하다. 우리가 원하든 말든 삶의 대부분은 수많은 반복 행위로 채워져 있다. 우리는 모두 아침에 일어나고, 침대를 정돈하며 옷을 입고, 아침을 먹은 뒤 일터로 발길을 돌린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일하다가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쉬는 시간을 갖는다. 그렇게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나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물론 일상 자체가 나쁜 것는 아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삶은 아이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이성..
침묵 신경과학에 따르면, 한 번에 많은 일을 할 때 우리는 하나씩 차례대로 모든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일과 저 일 사이에서 재빨리 왔다갔다 하는 것일 뿐이다. 또한 거실에 텔레비전을 계속 틀어놓으면, 거기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놀이에 방해가 되거나, 부모와 아이들 사이의 교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양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과도한 자극을 받게 되면, 우리는 그걸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주의를 모든 것에 분산하게 된다. 휴대폰, 컴퓨터, 이메일 소셜네트워크를 하게 되면 모든 활동들 하나하나에 신경쓰느라 집중력이 분산되고, 줄어들게 된다. 제대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외부의 소음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급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는 셈이다. 집..
과잉 교육 ‘유년시절은 인생의 땅을 일구는 시간이다. 감정과 아름다움의 의미, 새로움과 모르는 것에 대한 열정, 공감과 연민, 존경과 사랑의 느낌이 들면 우리는 감동의 대상에 대해서 알고 싶어진다. 그렇게 그것을 발견하게 되면 그 의미는 지속된다. 아이가 흡수할 준비가 안 된 수많은 자료를 주는 것보다 아이가 알고 싶어하는 길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 레이철 카슨, 센스 오브 원더 중에서 ) 과잉교육은 ‘슈퍼차일드’로 만들기 위해 남들보다 인지적, 정서적 단계를 앞서 나가려는 강박증이다. 아이에게 더 많은 자극을 더 빨리 준다고해서 더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읽기와 쓰기 등의 학습을 정식으로 시작할 수 있는 지적 성숙이 여섯살 때부터 시작된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이전단계들을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