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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E.H. Carr, 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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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의 확대(2) 과학조차도 지금에 와서는 자연의 객관적인 법칙을 탐구하고 확립하는 일보다는 인간이 지신의 목적에 맞게 자연을 이용할 수 있고, 또한 자신의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게 해줄 실용적인 가설을 만드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이성의 의식적인 발휘를 통해 자신의 환경뿐 아니라, 자기 자신 마저도 변화시키기 시작 했다는 점이다. 우리는현 시대에 들어와 인간의 노력으로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고, 세대간 인구의 균형이 변화된 것을 보았다. 우리는 인간의 행위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약품에 관한 이야기와 인간의 성격을 변화시키려는 외과수술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다. 인간과 사회 모두는 우리의 눈앞에서 변화 했고, 또한 의식적인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변화하기도 했다. 오..
지평선의 확대(1) 세계의 파국을 예언하는 소리가 모든 이들을 무겁게 억누르고 있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것들은 사실로 증명되지 않을 수도 있고, 증명될 수도 있다. 우리를 위협하는 위험들을 이겨내고 살아남을 것이며, 또한 역사는 계속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해 보겠다. 21세기의 중반의 세계는 15세기와 16세기에 중세가 몰락하고, 근대세계의 기초가 놓여진 이래 큰 변화를 겪고 있다. 그 변화가 과학적인 발견과 발명의 산물이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 변화가 눈에 띄는 측면은 사회혁명으로서의 측면인데, 그 혁명은 금융과 상업에 기반을 둔 그리고 나중에는 산업에 기반을 둔 하나의 새로운 계급을 권좌에 오르게 한, 15세기와 16세기의 사회혁명에 버금갈만한 것이다. 사람들이 시간의 경과..
진보로서의 역사 나는 신비주의란 역사의 의미를 역사 밖의 어딘가에서 즉, 신학이나 내세론의 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견해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어딘가를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목적론적 역사관을 도입한 것은 유대인들이었고, 그 다음으로는 기독교도들이었다. 역사의 목적에 도달한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역사의 종말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 자체가 일종의 신정설이 되었다. 이것이 중세의 역사관이었다. 르네상스는 인간 중심의 세계와 이성의 우위라는 고전적 견해를 복원시켰다. 계몽주의 시대의 합리주의자들은 유대-기독교적인 목적론적 견해를 견지했지만, 그 목적을 세속화시켰다. 역사는 지상에서 인간세계의 완성이라는 목적을 향해서 진보하는 것으로 변했다. 진보의 이념을 쓴 베리는 진보를 서유럽문명을 활기차게 만들고, ..
역사에서의 인과관계(2) 누구나, 언제든지, 역사에서 그랬을지도 모를 것을 가지고 퀴즈놀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결정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역사란 전체적으로 우연의 계속이라는 즉 우연의 일치에 의해서 결정되고, 가장 뜻밖의 원인에서만 유래하는 사건의 연속이다. 악티움 해전의 결과도 역사가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그런 종류의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얼이 빠진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후관계가 그것과는 다른 전후관계에 의해서, 게다가 우리의 견해로 볼 때는 아무 연관성도 없는 전후관계에 의해서, 언제라도 분쇄되거나 굴절되기 쉬울 때, 우리는 어떻게 역사에서 원인과 결과의 일관된 전후관계를 발견하고, 또한 어떻게 역사에서 무언가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
역사에서의 인과관계(1) 누구든지 과거의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관해서 읽거나, 심지어 쓸 수 있고 혹은 제2차 세계대전은 히틀러가 전쟁을 원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하고는 만족스러워할 수도 있는데, 그 말도 웬만큼은 사실이기는 하나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역사의 연구는 원인에 관한 연구이다. 역사가는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렇기에 어떤 대답을 바라는 한 그는 쉴 수가 없다. 몽테스키외는 ‘로마인의 위대함과 성쇠의 원인에 관한 고찰’이라는 책에서 ‘ 모든 군주정에 작용하여 그것을 세우고, 유지하고, 전복하는 도덕적인 또는 물질적인 일반 원인들이 있다’는 원칙, 그리고 '발생하는 모든 것은 이 원인들에 좌우된다‘는 원칙을 자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는 몇년뒤 법의 정신에서 ’우리가 ..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2) 카톨릭 사상가들은 '신부는 어떤 연구자든 그것은 신의 뜻이었다고 말함으로써, 역사의 모든 문제를 대답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서 신을 불러낼 수는 없다. 크로체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고 있다. ‘역사를 쓴다는 구실로 재판관처럼 부산을 떨면서 여기에서는 유죄 판결을 내리고, 저기에서는 용서해주는 사람들, 역사의 직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 일반적으로 역사 감각이 없는 자들이라고 인정된다’ 개인에 대해서 도덕적인 유죄를 매우 열렬히 주장하는 사람들은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집단과 사회 전체에 대해서 면죄부를 주고 있다. 러시아인, 영국인, 미국인들은 스탈린, 네빌 체임벌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수상으로서 히틀러의 침략정책을 방조했음) 매카시..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1) 사회과학중의 하나인 역사의 개념은 19세기를 통해 점차 발전했다. 그리고 자연계의 연구에 적용되었던 과학의 방법론이 인간의 문제에 대한 연구에도 적용되었다. 사회는 자연계와 마찬가지로 기계적인 어떤 것으로 생각되었다. 사회과학자들은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법칙의 개념부터 살펴보자. 18세기와 19세기 동안 과학자들은 자연에 관한 여러 법칙들이 발견되어 명확하게 확정되었다고 생각하고, 과학자의 직무는 관찰된 사실로부터 귀납적인 추론과정을 통해서 그러한 법칙들을 더 많이 발견하고 확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치경제학자들이 그레셤의 법칙과 애덤 스미스의 시장법칙을 가지고 가장 먼저 무대에 등장한 것처럼 보인다. 맬서스는 인구법칙을 제시했다. 영국정치가 버클은 그의 ‘문명사’의 결론에서 인..
사회와 개인(2) 나는 첫번째 강연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역사가를 연구하라'. 이제 나는 이렇게 덧붙이려고 한다. '여러분은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라. '역사가는 개인이면서 또한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다. 영국의 여류역사가 웨지우드는 ‘개인으로서의 인간행동은 집단이나 계급으로서의 행동보다 나에게 더 흥미롭다. 역사는 저런 경향 못지 않게, 이런 경향으로도 쓰여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더 잘못될 것도, 덜 잘못 될 것도 없다 ....’라고 했다. 이 말은 틀린 데가 없다. 엄격한 역사가인 제임스 닐경 조차 튜더 왕정의 성격이 어떠했는지를 설명하는 일보다,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그의 존경심을 표시하는 일에 더 열중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개인은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