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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퀘스천 (줄리언 바지니 지음,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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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 전혀 알지 못하는 직관, 계시, 미신에 호소하지 않고 이성에 근거한 논증을 따른다는 점에서 합리주의적이며, 인간의 삶이 스스로 가치의 원천과 기준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인본주의적이다. 사르트르 같은 실존주의자들이 우리가 스스로 의미와 목적을 창조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떤 선택이 도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침도 주지 읺는다고 주장한다. 내 일관된 진술은 인생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야 하며, 그 가치는 그 삶을 사는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시도했던 일은 모든 것을 인간 지성의 범위안으로 편입하고, 어떤 의미로든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들은 거부하는 방식이었다. 인생이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꼬여 돌아가며, 우리는 종종 자기자신 조차 신비하기 때문이다. 살..
자신을 버려라 깨달음을 얻는 길은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는 여러 막연한 생각을 한다. 인생의 의미는 심각하게 생각해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긴장을 풀고 마음을 열어 에고를 내려놓아야 찾을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문제 자체를 소멸시키는 것이다. 마음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우리는 '나'가 중요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수레란 수래부품들이 적절하게 조립된 것일 뿐이다. 수레는 수레를 이루는 부품들보다 상위에 있는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는 것은 오온五蘊이 적절하게 조합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불교 용어 오온五蘊: 온蘊은 집합체, 모임, 더미 등으로 번역된다. 色육체의 물리적형태, 愛감각, 想지각, 行마음의 작용, 의식을 뜻한다) 수레가 부품들의 합이라면, 그 부품들이 존재하는 이상 수레도 ..
카르페 디엠(carpe diem) 우리는 필멸하며 현재에 발목이 잡혀있고 어느 순간이든 죽을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리가 가진 순간순간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전부이다. 오늘을 붙잡으라 ‘카르페 디엠’.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의 핵심에 있는 진실 하나는 경험과 순간이 최고의 가치이며, 소중하게 여겨져야 한다는 관념이다. 술집 철학자들의 카르페디엠은 '파티를 벌이라'는 식의 단순한 쾌락주의다. 더욱이 술집에 가는 것 말고 하는 일이 없다보니, 세상이 주는 다양한 쾌락을 경험하지 못한다. 쾌락주의자들은 선호하는 경향이 서로 다르다. 어떤 사람은 성적 쾌락을 , 어떤 사람은 좋은 음식을, 어떤 사람은 마약이 주는 쾌락을 추구한다. 음악이나 여행,예술처럼 육체적 감각에 덜 의존하는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
승리자 되기 바이올리니스트로 성공하고 싶어하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연주 또는 레슨으로 생계를 꾸릴 정도가 되길 바라거나, 국립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되기를 바라거나, 국립 오케스트라에서 수석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것 등을 원한다면 이 사람은 상대적 목표를 세운 것이다. 이때 성공은 얼마나 성공한 바이올리니스트인가에 대한 절대적 척도가 아니라, 자신이 할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기대하는 바에 따라 상대적으로 정의된다. 상대적 성공이든, 절대적 성공이든 성공을 보는 두가지 시각이 있다. 하나는 어떤 것을 해냈음을 중시한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기행위의 총합이며, 자신의 삶 자체이다' 라고 말했다. 다른 시각에서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어가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성취를 이룬다. 수석 ..
행복하기만 하다면 행복하기만 하다면, 아이가 커서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다. 이 말은 보통 진심이지만, 자식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기도 한다. 우리 대다수에게 행복이 인생의 전부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암묵적인 이해가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또한 행복은 규정하기 어렵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도 보여준다. 아이가 그저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는 부모라도 아이의 행복이 스트리퍼나, 마약상, 사채업자로서 일한다면 불안해진다. 행복은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행복은 가질 가치가 있지만 소유하기 어렵다. 좋은 음식을 먹는 쾌락은 식사를 하는 동안만 지속되지만, 만족해하는 사람의 행복은 평온한 순간 속에 지속된다. 쾌락이 전경을 차지한 흘러가는 잠깐 동안의 경험이라면, 행복이란 좀 더 배..
더 커다란 이익 이타주의에게 가치의 기본 단위는 개개인의 생명과 삶이다. 따라서 선행은 곧 개인을 돕는 것이다. 종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가치의 기본단위는 전체 종이며, 개개인을 돕지 않고서도 종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다. 종에 기여하는 것이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는 ‘사회 같은 것은 없다. 개별 남녀와 가족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처는 존재하는 유일한 것은 구체적인 개별자들이고, 이 개인들로 구성된 그 밖의 다른 것들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복합개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데릭 파핏의 국가존재론이 있다. 현대의 고전 ‘이성과 인간’에서 파핏은 국가같은 실체의 존제에 관한 시각을 세가지로 구분했다. 1. 국가의 존재는 단지 영토안에서 특정 방식으로 함께 ..
도우러 왔습니다. 인간은 남을 도움으로써 살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 사는 무기치한 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남을 도움으로써 자기 개인의 존재에 대한 좁고 제한적인 관심에서 벗어나, 자기존재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는 더 커다란 선善에 참여하게 된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남을 도우며,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얻게 되었다고 느낀다. 왜 이타주의가 삶에 의미를 주는가? 사람들이 자기 삶에 대해 주장하는 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철학은 종종 평범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물을 필요 조차 없어 보이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진보한다. 토의가 성과를 얻으러면, 이런 개념의 명료화는 필수적인 일이다. 가령 자유라는 말을 당신은 정부에 의한 속박이 없음 뜻으로 사용한다면, 이 ..
천지간에 있는 더 많은 것들 삶이 종종 힘들다는 것은 뻔한 말이지만, 극소수 사람들에게 삶은 우리 상상보다 훨씬 끔찍하다. 우리가 거주하는 이 물리적 세계너머에 초월론적 실재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세상의 밖, 혹은 너머에 존재하는 세계말이다. 그러한 세계가 앖다면 자연계 안에 있는 수많은 생명은 무의미한 고통, 그리고 희망의 부재로부터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신이 우리 하나하나에게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그 목적에 만족하리라고 그저 믿어버리면 " 나는 사실상 나는 인생의 목적을 알지못하며, 나는 그 문제를 신에게 맡겼고 때가 되면 신이 내게 알려주시길 기다릴 뿐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무신론자에게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볼 때 유신론자들은 자신의 믿음을 가공의 존재에 얹어놓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