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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마음 (월터 프리먼지음 진성록 옮김)

자기통제와 지향성

 

 

당신의 실제 주인은 누구일까? 우리 모두는 선택을 한다. 선택할 기회를 피하거나 선택하지 않는 이유를 제시하는 것조차 사실은 선택이다. 우리 인간은 언덕을 굴러 내려가는 돌처럼 그저 환경에 휘둘리고 만은 있지 않다. 우리의 산택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그 선택의 바탕에는 우리 각자가 과거에 겪은 모든 경험이 깔려 있다. 결정의 바탕이 된 경험들도 단순히 기억들을 수평으로 긁어모아 놓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의 의미를 이루는 수많은 영향과 욕망, 증오와 재능 등을 재료로 촘촘히 역어낸 바로 그 경험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 선택들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정신적 작용을 명쾌히 밝히고, 뒤죽박죽 일 것 같은 선택들이 겉으로 어떤 질서감과 명료한 느낌을 풍기게 하는 그 속성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오고 있다. 그리하여 눈에 두드러진 양상이 보이면 우리는 그것을 원인 결정자 혹은 근본적 이유로 본다.

 

뉴런이라는 세포들을 가진 뇌는 우리의 행위와 사고를 어떻게 어떤 뜻으로 만드는 것일까? 행위와 사고가 바로 우리가 마음과 우리 자신으로 경험하고 느끼는 그것들이다. 또 우리의 경험들이 우리의 뇌와 뇌 속의 뉴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모든 행동은 뇌에서 신경계가 일으키는 작용에 서 비롯되며, 그런 신경계의 작용 모두는 그보다 앞선 원인을 갖는다고 한다. 그 원인은 바로 뇌로 들어간 인풋이다. 철학자들의 목표는 자극이 바깥세계에서 감각 뉴런을 통하여 우리에게 들어와 뇌로 전달되어, 예측 가능한 어떤 행동을 일으키기까지 두루 적용되는 자연법칙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인과율의 법칙에서 원인을 네 종류로 정의하고 있다. 조각상을 예로 들어보자. 돌인 질료인이 있고 조각이 모양을 이루는 형상인이 있고 조각가의 작용인이 있다. 마지막으로 그 작품이 만들어진 목적인이 있다. 뇌의 질료는 뇌를 구성하는 화학물이고 뇌의 형태는 신경해부학의 주제이다. 뇌의 작용인은 뇌의 유전자와 환경 속에 들어있다. 그리고 뇌의 목적인은 생물학적 운명이다.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는 뇌가 없이는 생각을 할 수 없다. 뇌 기능 일부가 바로 사고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말로 표현하려고 노력할 때조차도 그 생각을 온전히 읽어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굴 안에 들어있는 토끼의 머리와 꼬리를 한꺼번에 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두 사람이 각각 토끼의 꼬리와 머리를 볼 경우에 토끼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본 장면은 똑같지 않지만, 그 동물은 같은 동물이다. 두 사람은 토끼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각자 본 것을 결합하면 온전한 그림으로 맞춰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인과율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머리와 꼬리는 서로의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레도 우리는 머리와 꼬리를 전체의 한 부분으로 쉽게 파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 이론에서 인과관계를 빼서는 곤란하다.

 

스피노자는 언덕을 굴러 내려가는 돌과 사람이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은 자신이 그렇게 하기로 선택하기로 했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목표지향적인 행동들은 동물이 아닌 인간에 의해 행해질 때에는 종종 자발적인 행동으로 불리곤 한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인간만이 의지의 힘으로 행동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의 메커니즘도 조금 더 단순한 동물로부터 진화해 왔다. 그 메커니즘 안에서는 의지가 없어도 의도가 작동할 수 있다. 지향은 행위자 본인이 정의하고 선택한 미래의 목표 쪽으로 행동을 맞추는 것이다. 그것은 행동의 이유이며 설명인 동기와도 다르고, 의도에서 비롯되는 자각이며 경험인 욕구와도 다르다. 어떤 생각이나 믿음과 그것이 이 세상에서 의미하는 것들의 관계를 나타낼 때 지향이라는 표현을 쓴다. 지향성의 작용을 통해 의미가 어떤 식으로 창조되는지 그리고 표현을 구성하는 상징과 몸짓, 언어를 빌려 의미가 어떤 식으로 밖으로 드러나는지를 분석한다. 뇌가 지향적인 행동을 만들어낼 때 의미가 발생하고, 그렇게 탄생한 의미는 그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지각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의미의 콘텐츠는 이 세상의 영향을 받는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우리에게 미치는 사회적 영향의 주를 이룬다. 그 의미의 콘텐츠에는 우리가 이미 몸으로 익힌 역사와 경험이 몽땅 다 들어있다.

 

의미는 늘 성장하고 변하고 상당히 오래 지속되는 일종의 살아있는 구조이다. 주변 환경이 감각에 충격을 가한 직후가 된다. 이 단계에서는 뇌가 일차감각피질들을 건드리는 것으로 세상에 반응을 보인다. 그러면 대뇌피질에 신경활동 패턴이 나타난다. 이 패턴이 의미를 만들어낼 요소들을 공급한다. 새롭게 형성된 패턴들이 뇌의 다른 부위로 전달될 때, 그 패턴을 촉발 시켰던 원래의 날것 그대로의 감각자료들은 씻겨나간다. 뇌의 뉴런이나 부위 중에서는 다른 부위를 지배하려 드는 것이 하나도 없다. 뇌에서 일어나는 공동작용은 어디까지나 초대의 형식으로 부드럽게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지향적인 행동은 자각 없이도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지향성은 어느 선까지는 자각과 의식의 발동이 있기 전에 먼저 작동한다. 그 어느 선이란 바로 우리가 지향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그 생각을 단어로 표현할 필요성을 느끼는 시점이다. 우리는 자신의 의미를 강화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거나 글을 읽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자신의 지향성을 지각하고 경험하는 과정을 생물학적으로 더듬다 보면 설명이 가능하다. 동역학 차원에서 보면 의식은 오퍼레이터이다. 왜냐하면 의식이 과거의 행동이 나온 그 뇌의 동역학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의식은 그 어디에도 없는, 한편으로 그 어디에나 존재하면서 뇌의 각 부위들이 공급하는 콘텐츠를 가공한다. 의미의 동화가 일어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바로 대화이다. 깊은 신뢰의 형성은 보다 복잡한 행동을 필요로 한다. 그런 행동은 무아지경을 포함한 의식상태의 변화가 따른다. 의식의 상태변화를 추구할 때 자주 쓰이는 기술로는 노래와 북과 춤과 같은 행동적 보조수단도 있고, 알코올과 환각제 같은 화학적 보조수단도 있다. 이 과정의 정수는 개인들의 자의식을 느슨하게 풀고 그 사람들의 인지 및 감정적 구조들을 녹이는 것이다. 그러면 사회화에 맞서던 의미들도 녹아버리게 된다.

 

의식은 하나의 사회적 계약이다. 사람들과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을 대하는 도덕적 행동과 태도에 적용되는 계약이다. 인간이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이 인간의 어떤 요소이든 불문하고, 인간들은 수천년에 걸친 개인적 사회화와 수천년의 문화적 역사 때문에 반드시 문화적 환경에 흠뻑 젖은 사회적 존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