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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김동춘)

이라크 전쟁으로 본 미국3

미국의 오만한 단독행동에 아랍진영은 물론 국제사회 전체가 미국에 등을 돌렸으며, 무질서와 혼란, 실업, 민간인 사망으로 이라크인들은 미국을 확실한 적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베트남전 당시도 그러했지만 미국은 남의 나라에 개입하는 것보다 명예롭게 빠져나오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또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아랍권 젊은이들이 분노의 칼을 갈도록 만드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요르단, 이집트 등 전근대적 왕조국가, 독재국가는 하나같이 미국이 일방적으로 후세인을 공격하는데도 무기력하게 제대로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중동의 젊은이들은 무능하고 부패한 왕족, 귀족들을 권좌에 앉힌 다음, 그들을 마음대로 요리해온 미국의 중동개입 역사를 다시한번 몸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정부의 무기력에 대해 아랍권 젊은이들은 말할 수 없는 수치감과 좌절감을 느끼게 되었다. 급기야 독재국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젊은이들까지 인권과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미국인 폴 존슨 그리고 한국인 김선일은 바로 이들 적의로 가득 찬 테러세력의 불행한 희생자였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서슬 퍼런 이들 테러세력의 잔인성을 비난하였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참수라는 잔인한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주류언론의 논조에 화답하듯이 미국의 공격은 문제 삼지 않고 테러의 잔인성만 일제히 비판하는 한국정부와 언론은 구한말 우리의 동학농민군이 우세한 총기와 폭탄으로 무장한 무자비한 일본진압군에 맞서 죽창과 돌을 사용하지 말아야 했고, 얌전하게 일본의 지배를 받아들여야 했다고 말하는 셈이다.

 

부시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9.11테러에 대한 공격적 방어를 중요한 논리로 내세운 바 있다. 테러의 기점을 없앰으로써 미국을 더욱 안전한 국가로 만들겠다며 미 국민들을 설득한 것이다. 그런데 20039월 부시는 자신의 입으로 9.11과 후세인은 무관하다는 사실을 실토하기에 이르렀고, 미 정보당국도 대량살상 무기에 대한 판단을 잘못 내렸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미국 정부는 전쟁에 돌입한 이유를 달리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라이스 보좌관은 불똥이 부시에게 튀는 것을 막기 위해 대통령은 이라크를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후세인을 추방한 것은 잘한 일이다하고 고장 난 녹음기처럼 같은 말만 수도 없이 반복했다.

 

부시가 맞은 최대의 정치적 충격은 20043월 이라크전쟁 1주년에 즈음하여, 이라크전쟁을 지지했던 스페인 인민당이 이라크 파견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세운 좌파 사회당에 패배한 것이었다. 선거직전 스페인에서는 무려 190명이 사망하고 15백명이 부상당한 대규모 열차테러가 발생했는데 배후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라크 전쟁 지지에 대한 보복의 메시지가 분명했다. 결국 새 정부는 스페인군을 철수시켰다. 국내에서 이러한 테러가 발생하여 정권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이탈리아, 폴란드, 네덜란드 등도 철군을 시사하였고, 중앙아메리카의 니카라구아, 온두라스 등은 철군하였다. 결국 부시는 유엔의 결의를 이끌어내고도 국제사회에서는 더욱더 고립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부시가 한국군 파병을 그렇게 강력하게 요청한 것도 사실 전투상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 고립무원에 빠진 자신을 구원해줄 상징적인 성과를 부여주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미국이 제아무리 군사적으로 초강대국이어도 국제적 지지 없이 멋대로 힘을 사용하면, 전투에서는 이겨도 전쟁에서 이길 수 없고 정치적으로도 상대방을 패배시킬 수 없다. 유엔이 아무리 비효율적인 조직인 것처럼 보여도, 유럽 국가들이 군사적으로 아무리 약해 보여도, 이 불완전한 세계에서 미국 홀로 이라크를 경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미군이 바그다드를 점령한 이후 미국의 의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일련의 정책이 발표되었다. 2003527일 럼스펠드는 이라크 국영기업의 사유화를 장려하고 시장제도를 선호하는 인사로 구성된 체제를 수립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919일 이라크 점령군 통수권자인 브리머 행정관은 명령 39조를 통해 ‘2백개에 달하는 이라크 국유기업을 사유화하며, 외국기업이 이에 대해 100% 소유권을 가질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후 미국은 2004131일 처음으로 세계의 외국은행에 영업권을 내주었다. 과도통치위원회는 광산, 은행 등 모든 이라크산업체가 외국자본에 매각되면, 외국자본은 이윤의 전부를 외국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미국언론은 이것을 새로운 골드러시라고 칭송하였고, 이코노미스트지는 새로운 자본주의 드림이라고 불렀다.

 

만약 미국이 어떤 나라를 완벽하게 정치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면, 그 나라의 공공설비를 좀 더 철저하게 사유화하여 미국 거대자본의 사냥터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2003331일 미시간대학 강연에서 언론인 조너선 셀은 이라크 전쟁을 두고 이것은 혁명적인 전쟁이다라고 언급했는데 그 혁명성이 가장 적나라에게 표현된 것이 바로 무차별적인 사유화정책이다. 그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어떤 영토를 점령하고 그곳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던 아주 낡은 형태의 제국주의 전략 다름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그가 말한 목적이란 바로 경제식민지화이다.

 

구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국가의 주민들이 자신들이 환영했던 민주주의와 자유가 실제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데 10년 넘게 걸렸듯이, 이라크인들은 이러한 급진적 사유화정책이 이라크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깨닫는데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사태를 바로 잡기에는 너무 늦을 것이다. 이라크의 비극은 단지 수많은 무고한 사람이 죽고 다친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라크인들의 문화적 자존심인 바그다드의 박물관이 유린당하고, 재산이 모두 외국자본에 매각되고, 국민들이 돈을 주고 공공서비스를 사야 한다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