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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煩惱를 끊는 이야기(간화선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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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품고 있는 닭은 때를 알아 마음의 땅을 心地라고 한다. 심지의 땅에 뿌려진 씨앗은 비가 와 촉촉해지면 어김없이 싹이 난다. 물건이 크다 작다, 부자다 가난하다, 명예가 높다, 이런 것들이 온통 나를 둘러싸고 있다. 이런 곳은 이익을 얻고자 서로 다투고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곳이다. 같은 일이 반복되어 돌고 돈다. 내가 만들어 짓는 세계는 없어지는 것이으로 헛 것이고, 곧 그 만든 것이 무상한 것으로 눈앞에 드러난다. 하물며 내가 베워 익힌 것, 관념속에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몸이 부처 땅에 닿아 쓰이면, 학문도 에술도 다 꽃이고, 취미 또한 마음 땅에 의지해 보이면 역시 그것도 하나의 꽃이다. 내가 있는 곳에 부처가 있다는 것을 아는 자는 부자다. 언제든지 믿음이 있으면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눈이 조금만 열리면..
천개의 눈중에 바른 눈? 우리 속에 있는 성품이 곧 불성이다. 이 성품은 누구나 있다. 다만 내가 가려 놓고 있다. 이 가려진 부처를 서로 드러내 놓고 보자는 것이 곧 무차대회다. 禪은 다툼없는 마음, 곧 부처 마음이다. 가려진 마음이 사람마다 가린 것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고 나온다. 성품을 덮어 놓으면 중생이요, 열리면 성인이다. 본 성품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있지만 문명이 주는 생활패턴에 나를 빼앗기고 나에게서 먼 것 같다. 우리 눈에 보이는 저 푸른 잎은 저 나무 아래 있는 뿌리에 닿아있고, 그 뿌리는 땅에 이어져 있다. 땅엔 잎도 없고 나무도 없지만, 나무를 푸르게 하고 줄기를 튼튼하게 한다. 내 몸에 붙어있는 오관인 눈, 코의 감각이 이 심지의 땅에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나뭇가지나 잎이 저..
성철스님의 중도론 본시 禪은 석가모니가 그의 손에 꽃을 들어보이니 가섭이 조용히 웃는데서 시작한다. 보리달마는 이 법을 가지고 중국에 온다. 달마가 오기 전 중국인에게는 제자백가사상이 그 문화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제자백가 사상은 보리달마가 온 뒤, 그 선비들 또한 마른 나무가 촉촉한 비를 만난 것처럼 생명이 살아난다. 중국 선사들 언어속에는 노자와 중용을 깔고 있는 흔적들이 곳곳에 잘 드러나 있다. 道와 中庸이라는 언어가 禪이라는 말을 둘러쓰고 나온다. 불교에 있는 인과의 윤리가 품고 있는 덕德을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는 것이 너무 드러난 것은 곧 철徹에 속한다. 그리고 天道는 사사로히 친함이 없다’ 도덕경의 철이라는 말을 우리 시대로 가져오면 그가 말한 도의 성질이 더 잘 드러난다. 성철 스님은 노자가 말한 철徹..
어록을 못 놔 버린 선승 '집 앞의 작은 길이 장안으로 뚫려있다' 이 말은 사실에 있어서 내 마음이 예수, 공자, 부처에게 닿아있고 모든 깨달은 사람에게 닿아있고, 또 못 깨달은 사람에게도 닿아있고, 또 개미, 병아리, 닭, 개 등 생명이 있는 곳에 있다는 말이다. 알음알이를 따라 들어가는 길은 말言은 나오지만 行이 나오지 못하고 아는 것에 얽매임을 당해 스스로 밝지 못한 허물이 있다. 큰 길을 막고 있다. 바른 경험은 사람에게 뚫려 있는 것이다. 이를 아는 사람은 자랑 대신에 겸허가 찾아들고 자비와 지혜가 크고 넓어져 간다. 불성을 본 사람은 날마다 내가 먼저 새로워져 간다. 마음은 비어 있다. 하지만 할 것은 다 한다. 그리고 그 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성품은 내가 깨닫고 못 깨닫고와 관계없이 본시 나에게 존재한다. 돌아..
마음은 기억할 수 없는 것 모든 조사와 선지식들은 곧 이 마음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중 마조스님은 '마음이 곧 부처다(卽心卽佛)' 라는 말로 다시 세존의 말을 살려내고 있다. 세존은 말한다. ‘ 마음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마음은 쉴 새없이 활동하고 있으니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우리가 바쁘게 마음을 쓰고 있지만 마음은 항상 텅 비어 있으니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항상 쓰고 있으니 우리에게 마음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우리의 마음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아함경) 대개 참선이 잘 안되는 것은 이 얻을 수 없는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시작한데서 온다. 얻은 것은 잃는다. 生한 것은 멸滅한다. 만남은 헤어짐을 저절로 기약한 것과 같다. 오감五感이 사물을 만나 만들어진 마..
바닥을 치고 나온 공부 사람 마음속에 있는 佛을 드러낸 석가로부터 시작된 심법인 이 불교는 남인도국 28조 보리달라스님을 통해 그 법이 중국으로 와 각 나라 문화와 생활 패턴속에 섞이면서 그 바깥이 달라져 나온다. 그러나 사람 안에 있는 성품을 만난 불교가 나오면 각 나라 문화가 주는 틀을 벗어나 서로 통하는 하나의 길에서 만나게 된다. 깨달음이 약한 선승들은 언어는 옛사람들이 언어를 쓰나 그 행은 엣사람과 같지 못하다. 우리는 대개 마음속에서 '내게 마음이 있다'라고 안다. 그러나 정직하게 돌아보면 마음이 아닌 것을 마음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성품을 놔두고 미혹된 마음을 마음이라고 믿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미혹 속에 있는 마음은 뿌리가 없는 마음이다. 남의 글과 어지러운 말만을 찾아서 묘하고 좋은 이치에 이르렀다고..
스승의 눈, 제자의 눈(2) 작은 뉘우침에 큰 길이 열린다. 참회懺悔는 '과거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혜능은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 참懺이요, 미래에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회悔라고 했다. 참회와 후회는 다르다.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하는 후회는 그 저변에 욕심이 깔려 있다. 반면 참회은 근본 뿌리가 끊어진 곳에서 ‘새사람’으로 바뀌어 나온다. 새사람은 마음이 안해야 한다는 그 생각이 없다.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후회속에는 '나'라는 어둠이 있다. 그런 사람은 욕심이 바탕하고 있다. 참회는 뉘우치자마자 새사람이 되어 나온다. 뉘우침 속에 겸허해져 가고 덕이 자라 사람이 넉넉해진다. 참회에는 아참理懺과 사참事懺이 있다. 일 가운데 뉘우침이 있는 사참은 이 세상 ..
스승의 눈, 제자의 눈(1) 사람이 바뀌려면 내 마음에서 새로워져야 한다. 내 마음이 새로워지면 사회도 새롭고 만나는 사람도 새롭고 모든 것이 새롭다. 그러나 내가 안 바뀌고 밖만 바꿔지면 나는 날마다 지루하다. 내가 바뀌려면 내 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성품을 봐야 한다. 마음은 빈 성품에 붙어 있는 구름이다. 빈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구름은 떠다닌다. 성품을 본 사람은 오온을 그렇게 본다. 번뇌 또한 그렇다. 가난한 마음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마음이다. 禪은 장애없이 뚫어져 있는 길을 향상일구 向上 一句, 화두 중에 이 하나의 뜻을 품고 一句 '이 뭣고!'가 그것이다. 성인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믿는 종교는 미혹으로 둘러싸여 있고, 사람사이에 벽만 두껍게 하고 어둡다. 예수가 ‘너희는 지금 나의 제자지만 깨달아 미혹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