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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물음이 답이다.(최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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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고 묻고 또 물어라. 생각이란 무한히 펼쳐지는 가능성이 아닌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건 그생각이란, 무한히 펼쳐지는 가능성중 어느 하나가 우연히 결려들었을 따름이다. 마치 망망 대해에서 그물에 한 마리 물고기가 걸려들 듯 말이다. 생각이란 그런 만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정해진 답이 없다. 그 누구도 이러한 삶을 살 수도 있고, 저러한 삶을 살 수도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이란 무수한 가능성 가운데 한가지일 따름이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낀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게 생각하니 여전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물음을 묻다 보면, '왜 나는 지금 이런 삶을 살까'라는 물음이 이어진다. 지금 삶은 무수한 가능성중 하나인 만큼, '왜 지금 삶이냐'고 묻지 않을수 없다. '왜'라..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삶과 언어가 어떤 관계인가를 주목한 철학자가 비트겐슈타인이다. 세계는 사물들로 구성된다. 언어는 이 세계를 구성하는 사물을 지시할 따름이다. 언어는 사물을 지시해야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언어가 사물을 더이상 묘사하지 못할때 언어는 한계에 이른다. 정의에 따라 맞는지 아니면 틀렸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명제들을 제외하면, 경험에 따른 검증만이 어떤 명제가 의미 있는지 또는 의미 없는지를 결정하는 기준이다. 경험으로 검증이 가능하지 못한 진술은 의미없는 사이비 명제일따름이다. 낱말이 지닌 의미는 그 낱말이 가리키는 특정 대상이 아니라, 그 낱말이 어떻게 사용 되는가에 따른다. 언어는 인간 삶을 엮는 형식이다. 고통이라는 낱말은 집이라는 낱말이 집을 가리키듯이, 고통을 지시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으로 말..
언어와 삶 부부가 되려면 결혼을 해야 한다. 결혼을 하려면 결혼식을 해야 한다. 결혼식에서 주례가 말한다. 오늘부터 두사람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남녀를 부부로 맺어준 것은 단 몇마디의 말이다. 명명식이나 결혼식에서 나온 말들이 올바름과 거짓을 따지는 말들이 아니다. 오스틴은 이 말들을 행위와 함께 발화된다는 점에서 '수행문'이라고 부른다. 말을 사용하여 어떤 행위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수행문이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려면,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어떤 특정한 배의 명명식에서 그 배는 이름이 없어야 하고, 명명하는 사람은 명명할 자격을 지녀야 한다. 그리고 와인을 터뜨리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언어는 마치 삶을 담는 그릇과도 같다. 그런만큼 언어를 잘못 사용하는 것은 중대한 잘못이다..
노동은 신성한가? '노동만큼 신성한 것은 없다'는 믿음은 너무 뿌리깊다. 게으름이 마치 이 세상 온갖 해악을 낳은 씨앗 인듯하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열심히 일해야 한다. 이 세상에 해악을 끼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일해야 한다.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 이 세상은 열심히 일해야 하는 곳일 따름이다. 도대체 어느 누구가 시켜서 하는 일을 기꺼이 즐겁게 한다는 말인가? 타인에게 즐겁게 만들 수는 있지만, 누군가의 시킴을 받은 일이 기꺼이 즐거울 수 없다. 그럼에도 언젠가부터 일을 해야 하는 하층민과 이 일을 시키는 상층민이 생겨났다. 토지소유자들은 토지를 소유했기에 일하지 않고, 잘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귀족이 누리는 특권을 지닌다. 일을 하지 않아도 잘먹고 잘 살 수 있다는게 귀족이 누리는 특권이..
인간은 왜 세상을 바꾸지 않는가? 마르크스는 세상을 마땅히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여러가지로 해석했을뿐 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일이다. 마르크스는 생물로서 인간 삶보다 사회인으로서 인간 삶에 관심을 기울인다. 생물로서 인간 삶을 강조하면, 그 삶을 바꾸기 어렵고 제어하기 어렵다. 사회는 혁명으로 짧은 시간에 급격한 변화가 가능하다. 본성상 인간은 탐욕스럽다는 주장은 단숨에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마르크스는 사회가 인간의 삶에 인간본성보다도 더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사회란 인간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가설이 우선이다. 인간은 사회를 창조하고, 사회는 인간을 바꾼다. 인간이 사회를 떠나 살 수 없다는 점과 함께 마르크스는 인간 삶을 경제활동과 연관 짓는다. 마르크스는 경제이익이 무..
인간은 누구인가? 종의 기원은 중요한 두 사상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 두 사상 모두 다윈으로부터 시작된 사상은 아니다. 다윈사상이 독창성을 지니는 까닭은 이 두 사상을 결합했기 때문이다. 첫째요소는 계통수 개념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상이한 종들은 모두 같은 종에서 나왔다. 계통수가 단 하나 있을 뿐이다. 두 번째 요소는 자연선택이다. 자연선택과 더불어 나오는 개념이 종의 기원이 처음부터 다룰려고 하는 변이개념이다. 생물연구를 바탕으로 인간본성을 탐구한 결실이 사회생물학이다. 인간은 자기를 스스로 의식하는 존재 이다. 언어와 문화를 소유한다는 점에서 짐승과 사뭇 다르다. 인간이 다른 생물종과 분명히 다름에도, 여러 다양한 문화에서 서로 같은 특징을 보이는 형태를 찾으려는 작업이 사회생물학이다. ..
이성 내가 언젠가 남의 물건을 훔치고 싶어도 오로지 의무감으로 억제되는 경우와 훔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어서 다른 사람이 소유한 물건을 훔치는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경우와 비교해 보라. 당연히 훔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경우가 더 낫다. 성숙한 도덕여행을 하는 초기단계에서 나는 아무렇게나 행위하려는 유혹에 맞서야 한다. 훔치지 않은 것은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훔치고 싶지 않았던 경향성 때문이다.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의무감에서 나오는 행위는 고귀하다. 그렇지만 애당초 부터 사악한 행동에 기울어지는 경향성을 극복하여, 그 경향성에 저항할 필요 조차 없는 행위가 더 고귀하다. 나는 의무에서 행위를 한다고 믿지만, 내가 하는 행위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결코 의무에 해당하는 행위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존엄할까? 의무는 숭고한가. 생각해보면 인간은 온갖 제도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그 제도중 하나가 이른바 도덕으로서 도덕제도이다. 철학자가 칸트는 세상 모든 것을 결과에 따라 좋다고 여겨지는 것과 또 결과와 무관하게 무조건 좋다고 여겨지는 것과 분류한다. 무조건 좋다고 여겨지는 것은 그자체 선으로 불린다. 이 분류에 따르면 행복이 무조건 선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과연 행복한가는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성향, 지능, 출생환경, 살아가면서 누리는 행운에 따라 다를수 있기 때문이다. 선택의지는 그 자체로 빛나며 스스로 모든 가치를 그 자체에 간직한다. 유용함과 무익함은 이 가치에 아무 것도 더하거나 뺄 수 없다. 도덕가치를 지닌 행위란 단순히 내가 하고 싶어서 한 행위가 아니라, 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