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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한다는 것 (남창훈 )

자연속의 나, 내 안의 자연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인간의 부족한 지식으로 모두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불안해한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는 병에 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 사람들은 언제 걸릴지 모르는 암 때문에 보험을 들기도 하고 병에 안 결리려고 아주 어릴 적부터 많은 종류의 백신을 맞는다. 인간이 지구라는 곳에서 홀로 살 수 없음은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인간은 자기를 둘러싼 생명체들, 그리고 무생물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제대로 살기위해서는 주변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올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탐구해야 한다. 영국에서 본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당신은 바로 당신이 먹은 음식이다. You are what you eat'라는 제목이었다. 인간이 먹는 음식에는 탄수화물과 단백질과 지방, 그리고 여러 가지 무기물이 들어있다. 인간은 음식을 먹고 소화하여 우리 몸의 구석구석을 이루는데 필요한 양분으로 삼는다.

 

생명체들은 이처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생명체와 무생물들로부터 만들어졌으며 또 계속 만들어져가는 존재이다. 불교에서는 생명이 있는 것은 죽어도 다시 태어나 생이 되풀이 된다고 여긴다. 소나 돼지가 다음 생에 인간으로 태어날 수도 있고 우리가 죽어서 나무나 꽃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윤회사상이라고 한다. 생물학자들의 눈을 통해 보면 윤회가 우리 주위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평범한 사건인 셈이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마치 한 몸이나 다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 우리 자신을 알기위해서는 우리를 둘러싼 자연 세계를 알아야 한다. 탐구를 하는 이유는 바로 인간이 자연과 맺고 있는 관계를 알아감으로써 자신의 참모습을 알고자 하는데 있다. 흔히 먹이사슬이라 불리는 이런 경로를 통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들이나 무생물들로부터 그 몸을 이루는 성분들을 얻고, 때가 되면 다시 다른 생명체나 흙의 일부가 된다. 자연에 속한 모든 생명체는 태어났다가 죽는다. 그들은 다른 생명체나 무생물과 끊임없이 교류한다. 서로의 몸을 구성하는 물질들을 나누며, 공기와 물과 무기물을 서로 나눈다. 자연도 역시 생명이 있는 유기체이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자연의 이러한 속성을 올바로 깨우치지 않으면, 인간이 대단하고 특별한 존재라고 착각하기 쉽다.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아주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깨뜨린 이론이다. 인간을 비롯하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진화해 왔고 현재도 진화하고 있다. 진화를 한다는 말은 환경에 적응한다는 말과 아주 비슷하다. 진화론에서 곧잘 등장하는 자연선택이라는 말은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이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다른 생명체들처럼 인간도 자연의 선택을 받아야만 한 세대에서 그다음 제대로 이어갈 수 있다. 인간이 자연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이 인간을 선택하는 것이다. 진화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돌연변이이다. 돌연변이란 몸속 유전자의 일부가 어떤 이유로 뒤바뀌거나 사라지거나 덧붙여지는 현상이다. 돌연변이가 생기는 원인은 다양하다. 햇빛속의 자외선에 의해 일어날 수 있고 유독 화학물질에 오랫동안 노출되어도 일어날 수 있다. 바이러스에 의해서도 돌연변이가 생긴다. 바이러스가 침투해 들어오면 인간은 크고 작은 병에 걸린다. 병에 걸리는 것 역시 진화하는 과정이다.

 

생명체 안에서는 언제나 다양한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그 돌연변이를 지닌 개체들 중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개체들이 자연에 의해 선택된다는 것이 진화의 줄거리다. 인간에게도 똑같은 진화의 원칙이 적용된다. 진화의 원칙 안에는 두 가지 사건, 즉 돌연변이와 자연에 의한 선택은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벌어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만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일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사건들은 인간과 주변 자연환경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진화는 우리 인간의 미래 모습을 결정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자신의 힘이나 의지만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고, 자연과 맺는 관계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는 말이다.

 

지구의 역사가 시작된 뒤로 산업혁명 시기까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줄곧 270ppm미만이었지만, 18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대략 200년 동안 갑자기 늘어나 2009년에는 383ppm정도가 되었다. 이처럼 이산화탄소는 지표면이 발산한 복사열을 더 많이 붙잡아서 지구표면의 온도가 조금씩 증가한다. 이것이 지구온난화이다. 이렇게 계속된다면 인류가 멸망하거나 지구가 파괴될 수도 있다. 지구라는 체계 속에서 자원이 생성되고 순환하는 일, 그리고 지구지표면과 대기 및 대기 바깥 공간 사이의 상호반응과 조화는 인간의 힘과 의지를 뛰어넘는 일이다. 물론 인간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붙잡아 모으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는 대체 연료를 개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들로 파국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자연과 지구라는 체계에 대한 과학탐구를 통해 우리가 그 체계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존재들인지 알게 되었다. 우리가 그 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 체계 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 힌트를 얻었다.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그 파국을 방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여러 나라가 참여한 교토의정서 체결에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미국은 동의하지 않았다, 미국은 지구온난화문제를 해결할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자연을 자기 마음대로 지배하거나 관리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오만은 중요한 사실들을 무시하고 있다. 자연의 법칙은 인간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 자연에 의해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다.” 막스 플랑크라는 물리학자가 한 말이다. 탐구는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는 자연의 존재를 밝혀준다. 자연은 자연만의 원칙과 법칙에 따라 존재한다. 탐구는 자연이나 지구라는 체계에서 인간이 지니는 위치와 그 의미를 밝혀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준다. 인간중심이 아니라 자연이나 지구라는 체계를 중심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준다. 지구온난화와 같은 위기를 앞에 두고 우리는 지구라는 체계 속에서 인간의 권리와 의미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답해야 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에 온 지구의 자원과 생명체들을 무한한 권리를 가지고 이용하고 써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은 지금껏 밝혀 온 과학탐구와 거리가 멀고 더 나아가 정반대되는 것이다.

 

교토의정서

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유엔 주도로 기후변화협정이 맺어졌다. 하지만 별 구속력은 없다. 그래서 1997년 일본의 교토에서 협정을 수정했는데 바로 그 수정안을 교토의정서라고 한다. 의정서에 동의한 국가들은 이산화탄소 등 지구온난화와 관련 깊은 6가지 가스의 배출량을 줄이기로 약속하고, 이를 안 지키는 나라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와의 무역에서 불이익을 받도록 하였다. 그런데 미국은 이러한 교토의정서의 비준을 거부하였다. 교토의정서와 관련하여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던 할런 왓슨 박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 환경문제에 대해 단기적인 조치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미국과 전 세계의 경제성장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환경문제에 있어 경제성장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해결책이며 장기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신기술 개발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환경보다는 경제가 우선이며 경제가 성장하면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신기술개발이 가능해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문제가 있다. 첫째 자연이나 생태계의 파괴는 어느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다시 회복될 수 없다. 자연의 자정능력은 인간이 저지르는 파괴가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작용할 수 없다. 둘째 이 주장에는 과학기술이 모든 것의 해결책이라는 지나친 믿음이 담겨있다. 과학기술의 주된 역할은 인간과 자연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제대로 된 관계를 맺기 위한 방도를 알아내는 것이다. 과학기술로 자연의 자정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믿음은 인간의 오만한 착각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