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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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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순간(3) 아버지는 전화통화를 할 때에도 말이 점점 느려졌고, 한마디 끝낼 때마다 긴 침묵이 흘렀다. 아버지의 세상은 점점 닫혀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엑스레이를 촬용한 결과 오른쪽 폐에 폐렴증세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의료진은 아버지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웠고 항생제와 포도당을 투여했다. 한 사람의 종말이 가까워 오면,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책임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시점이 온다. 우리는 그 순간에 대해서 거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기를 원하는지 상세히 밝혀두었다. 아버지는 인공호흡기도, 고통도 원하지 않았다.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기를 원했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몇주 아니 몇달 정도는 더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순간 (2) 물론 불가피하게 맨 마지막 순간에 남아있는 가능성을 어디까지 확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남아 있긴 하다. 삶에 대한 자율성과 통제력을 유지하게끔 한다는 논리에는 스스로 종말을 앞당기기를 원할 때도 돕는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가? 누구나 음식이나 물, 투약이나 치료등을 거부할 경우 그 뜻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그게 비록 현대의학의 관성에 맞서 싸우는 일이 될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또 마약성 진통제와 진정제가 죽음을 앞당긴다는 걸 알면서도 고통과 불편을 줄이기 위해 처방하기도 한다. 외부적이고 인공적인 장치를 꺼서 생명연장을 포기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과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내부적이고, 자연적인 기능을 멈출 권리를 부여하는 것 사이에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통을 연장시키는 실..
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순간 (1) 용기란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을 직면할 수 있는 힘이다. 그리고 지혜란 분별력 있고 신중한 힘이다. 나이들어 병드는 과정에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바로 우리가 찾아낸 진실을 토대로 행동을 취할수 있는 용기다. 문제는 어떤 것이 현명한 길인지 알기 어려운 때가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나는 단지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기 어려우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아는 것도 어렵다. 그러나 나는 우리에게 닥친 문제가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데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과 희망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판단해야 한다. 주얼 더글러스 할머니는 난소암이 상당히 크게 자라서 장을 일부 막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의 담당 의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
두렵지만 꼭 나눠야 할 이야기들 나도 이제 우리도 어려운 대화를 나눌 때가 되었다는걸 깨달았다. 사지마비가 진행되면서 머지 않아 아버지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앗아가려 하고 있었다. 사지마비가 오면 24시간간호, 산소흡입기, 영양공급관이 필요해질 것이다. 아버지는 그걸 원하지 않는 것 같다고 내가 말했다. '절대 안되지, 그냥 죽는게 낫지'.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그날 나는 내 평생 가장 어려운 질문들을 아버지에게 던졌다. 커다란 두려움을 안고 하나하나 물었다. 무엇을 두려워 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분노, 혹은 우울, 아니면 그런 질문을 함으로써 뭔가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눈후 우리는 안도감이 들었고, 뭔가 명확해졌다는걸 느꼈다. 오늘날 소득이 증가하면..
인간다운 마무리를 위한 준비(3) 2010년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의 획기적인 연구에서는 이보다 더 놀라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연구자들은 폐암4기환자 151명을 무작위로 나눠 서로 다른 두가지 치료법을 적용받게 하였다. 한 그룹은 통상적인 암치료를 받았고, 다른 그룹은 기존치료와 더불어 완화치료 전문가들의 방문을 받았다. 2010년 연구에 참여한 완화치료팀은 환자들을 만나 만약 상황이 악화된다면, 그때 우선 순위와 목표를 어디에 둘 것인지 이야기 나눴다. 그 결과 완화치료 전문가들과 상담한 환자들은 화학요법 치료를 더 일찍 중단했고, 호스피스 케어를 더 일찍 선택했으며, 삶의 마지막 순간에 고통을 덜 경험했다. 게다가 생존 기간도 25%나 늘어났다. 의학적인 의사결정은 크게 실패했고, 죽음이라는 주제를 피하느라 환자들에게 오히려 해를 주는 ..
인간다운 마무리를 위한 준비(2) 사람들은 의사라면 이 수많은 환자들을 이끌 준비가 잘되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방해가 되는 요인이 적어도 두가지는 있다. 첫째 의사들의 견해 자체가 비현실적일 수 있다. 63%의 의사들이 환자의 생존기간을 과대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의사들은 이 정도의 의견조차도 환자들에게 전달하기를 꺼린다. 의사들은 보통 암을 완치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 이를 환자들에게 알리기는 하지만, 정확한 예후는 환자가 정보를 요구할 때 조차도 밝히기를 꺼린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우리는 과도하게 낙관적인 것보다 과도하게 비관적인 것에 대해 더 많이 걱정한다. 그리고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엄청나게 불편하고, 곤란하게 여긴다. 새라는 폐암으로 세가지 화학요법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있더라도 아주 미미할 ..
인간다운 마무리를 위한 준비(1) 통찰이란 바로 노화나 질병으로 인해 심신의 능력이 쇠약해져 가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려면, 종종 순수한 의학적 충동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너무 깊이 제어 해서 고치고 제어하려는 욕구를 참아야 한다는 뜻이다. 내 환자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여기서 아주 어려운 문제는 고치려 애써야 할 때는 언제고, 그러지 말아야 할 때는 언제일까? 만일 우리가 전이암 혹은 그와 비슷한 불치병으로 생이 얼마남지 않은 상황이라면, 의사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랄까? 이 문제는 최근들어 종종 비용문제로 주목받게 되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의료비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장기적 재정 안정성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으로 떠올랐는데, 그중 상당액이 불치병을 관리하는데 쓰인다는 것으로 밝..
마지막까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3) 늙어서도 삶을 의미있게 살도록 만든다는 것은 새로운 개념이다. 그래서 노인들은 그냥 안전하게만 돌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필요로 한다. 나는 일종의 지역협동조합을 만들어 노인들이 계속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각종 서비스를 비싸지 않은 가격에 제공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생활하는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고해서 자율성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자율성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특별한 철학을 공유하고 있었다. 자율성에는 여러가지 개념이 있다. 그중 하나는 자유로운 행동을 가리키는 자율성 개념이다. 강압과 제한없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사는 상태이다. 이런 자유야말로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외치는 구호이다. 그러나 그런 자유는 환상에 불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