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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진화의 오디세이 (김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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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고인류학과 인류의 미래 인류의 기원을 탐구하는 작업은 인간과 그 존재에 대한 의문에 부분적이나마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런 희망을 갖고 우리는 지금까지 500만 년 넘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인류의 뿌리를 찾아 나섰다. 인류가 출현하기까지 지구상에서 펼쳐진 진화의 오디세이는 실로 파란만장 했다. 우리는 생물체의 진화과정에서 인류가 왜 출현하게 되었는지, 혹은 왜 출현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내기 어려웠다.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체의 진화 기제를 어느 정도 밝혀주었지만, 인류가 구체적으로 어떤 요인들에 의해 진화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밝혀내는 작업은 지금까지 살펴본 고인류학의 상과에 비추어 아직도 요원한 일인 것처럼 보인다. 인류의 기원을 입증하는 가장 결정적인 단서는 화석이지만, 아직도 화석의 연대를 측정하는 방식에는..
신석기문화의 발달(2) 알자지라로 불리는 스텝평원은 중산간 구릉의 고원지대로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의 석회암 암반 위에 조성되었다. 여기서는 4월에 추수하는 일모작 작물에 충분할 정도로 겨울 강수량이 있어서, 천수 농경이 가능했다. 이와 달리 메소포타미아 평야는 서로 멀리 떨어져 흐르던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가까워지면서 퇴적층이 쌓여 형성된 삼각주 평야였다. 메소포타미아 평야지대는 5월부터 10월사이에 낮 평균기온이 섭씨 40도에 이를 정도로 더웠고, 8개월간 비가 오지 않아 매우 건조해서 뜨거운 진흙먼지 바람으로 뒤덮이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만 원활하게 공급된다면 비옥한 토양과 더불어 높은 온도는 식물생장을 엄청나게 촉진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평야를 곡창지대로 탈바꿈 시키기 ..
신석기문화의 발달(1) 신석기 문화의 발달 과정은 네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취락 규모의 변화, 사회계층화, 대규모 문화권의 형성, 그리고 식량생산성의 증가이다. 먼저 신석기 문화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경작에 따른 정착생활은 출산을 증가 시켰고, 그 결과 인구가 늘어났을 것이다. 이에 따라 취락 규모가 커지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도 발달했을 듯하다. 특히 가족 단위의 생산이 촉진되면서 새로운 사회적 관계는 사회계층화로 이어졌을 듯하다. 또한 장거리 교육이나 토기 제작술 같은 기술발달은 대규모 문화권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취락규모와 관련하여 눈길을 끄는 것은 기원전 7350년경 오아시스 주변에 자리 잡았던 예리코의 취락지 유적이다. 원형가옥들이 성곽으로 둘러싸여 밀집된 취락구조를 이루었는데 소도시 혹은 ..
농경과 목축의 출현: 비옥한 초승달 새로운 지질시대 즉, 홀로세(충적세)가 시작된 시점을 기원전 약 8000년으로 보는 것은 마지막 빙하가 북으로 물러간 것을 기준으로 한데서 비롯된다. 이런 관점에서 빙하가 물러간 이후의 시기를 후빙기라고 부른다. 대규모 기후 변화는 이미 기원전 1만3000년에 시작 되었으며, 지구상에는 기원전 6000년에야 비로소 지금과 같은 기후대가 안정적으로 확립될 수 있었다.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를 구분한 러벅은 또한 두 시대를 개념적으로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첫째 신석기 시대는 현존하는 동식물과 동시대적이지만 구석기 시대는 부분적으로 멸종한 동식물과 시기적으로 겹친다. 둘째 구석기 시대의 인류는 생계를 전적으로 수렵 채집에 의존했지만, 신석기 시대의 인류는 적어도 부분적으로 농경 혹은 사육을 시작했다. 셋째 구..
현생인류의 아메리카 대륙 진출 현생인류의 아메리카대륙 진출은 빙하시대 베링햐협을 가로질러 해수면 밖으로 형성되었던 육로, 즉 베링기아를 따라 이루어졌다. 그런 까닭에 시베리아 동북아지역은 아메리카 대륙의 진출을 위한 전진기지가 되었다. 마지막 빙하기때 이지역에서 발전된 인류의 발자취는 시베리아 서부지역에 나타났던 후기구석기 유적이 유일한 것은 아니었다. 돈 강 유역의 코스텐스키에서도 상당한 규모의 취락지가 발견되었다. 이로부터 동쪽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시베리아 중부 평원의 남쪽지역 즉 히말라야산맥의 어귀의 테시크-타쉬에서도 이미 중기 구석기의 뮤스티에 문화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후기구석기 인류는 더욱 북쪽으로 나아갔다. 오비강 등의 이들 유적지의 연대는 2만년 전후로 추정된다. 이 유적을 대표하는 것은 14500년전 바이칼 호수..
구석기 문화 19세기 중엽 존 러벅은 북유럽의 선사시대 도구 양식을 시대적으로 구분한 석기-청동기- 철기라는 삼분법을 도입하고, 석기시대를 다시 구석기와 신석기로 나누었다. 다양한 유물이 발굴되면서 석기시대를 전기구석기, 중기구석기, 그리고 후기구석기 시대로 세분했다. 로버트 엥크는 중기구석기 및 후기구석기 문화의 특징을 직립원인의 전기구석기 문화와 대비하여 다음과 같이 열거했다. 첫째 뇌용량이 1100cc에서 1400cc로 증가했다. 둘째 두개골의 생김새가 달라졌다. 셋째 집단의 인구가 증가했다. 넷째 도구 제작의 기술적 개혁이 있었다. 다섯째 조각상, 벽화, 부조, 무덤 등 예술적 유물이 발견되었다. 여섯째 체계적인 집단수렵이 이루어졌다. 일곱째 유물의 양식과 원거리 교역이 생겨나면서 지역적인 문화권이 형성되기 ..
현생인류 출현과 네안데르탈인 현생인류 즉 호모사피엔스의 기원은 고인류학계의 최대 난제이다. 현생인류의 출현은 화석을 통해서 입증되는 것이기 때문에 현생인류 형태, 특히 두개골의 생김새를 다른 유형의 화석과 비교해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현생인류와 계통적으로 그리고 시대적으로 가까운 유형의 화석으로 직립원인, 고전적 네안데르탈인, 그리고 서아시아의 네안데르탈인을 들수 있다. 직립원인은 눈두덩이가 현전하 나왔고 뒤통수가 돌출해 있다. 그리고 두개골이 두꺼우며 중앙에는 앞뒤로 용골이 나왔다. 고전적 네안데르탈인 역시 눈두덩이가 두드러지고 뒤통수가 돌출해 있으며, 직립원인에 비해 뇌용량이 훨씬 크다. 안면의 길이가 짧으면서 광대뼈가 나왔고 주둥이도 다소 돌출했지만, 턱주걱은 거의 없을 정도로 목으로 후퇴했다. 큰 앞니를 비롯해서 분쇄 능력..
직립원인의 아프리카 탈출과 문화적 적응 직립원인, 즉 호모에렉투스의 발견은 네덜란드 의사 뒤부아의 끈질긴 집념의 결실이었다. 1891년 인도네시아 자바의 중부 솔로강 유역의 트리닐에서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 일명, 자바원인을 발견했다. 20세기 초엽에 베이징 저우커우덴 동굴에서 45점의 두개골이 발견되었고, 시난트로푸스 페키넨시스, 일명 베이징 원인으로 명명되었다. 피테칸트로푸스란 문자 그대로 원인, 즉 원숭이 인간이란 의미이지만, 자바 원인과 베이징 원인은 모두 나중에 재분류되어 호모의 분류학적 지위를 취득했고, 직립원인으로 개명되었다. 아프리카의 올두바이협곡에서 나타난 직립원인은 약 1.2-1mb.P의 지층에서 발견되었다. 자바와 베이징의 직립원인은 대체로 90만-60만년전과 50만-35만년전 것으로 각기 연대 측정되었다. 이처럼 플라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