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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시인 본명은 영일英一이다. 한 송이 꽃이라는 뜻이다. 시위, 필화사건, 긴급조치 및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선동죄 등으로 체포와 투옥, 사형 및 무기징역 선고, 석방을 거듭하면서 시인은 1970년대 내내 박정희 정권과 맞섰다. 그러나 1991년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이어진 학생들의 분신자살을 질타하는 칼럼을 에 실었다. 이 일로 그는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민주화 운동 진영과 척을 지게 되었다. 그리고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는 자신을 탄압했던 독재자의 무능하고 부패한 딸에 대한 옹호와 지지로 어처구니없이 훼손된 말년의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도 없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
에필로그-문명의 뒤섞임, 차이와 통합을 아우르는 시대로 세계가 하나로 묶인 20세기에만 지구촌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지역의 역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세계사의 일부였다. 고대사에서 보았듯이 아득한 옛날에도 민족이동은 끊이지 않았으며 민족과 지역 간의 교류와 교섭, 전쟁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오늘날보다 시간이 훨씬 오래 결렸고 장구한 세월에 걸쳐 조금씩 진행되었을 뿐이다. 중국과 일본은 역사의 탄생과 시작에서 또 독자적인 역사의 전개과정에서도 서로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인도는 동북아시아의 두 나라와 별로 관계가 없었다. 인도는 사실 지리적만으로 동양에 포함될 뿐 문명적으로는 서양에 가깝다. 흔히 4대 문명의 발상지를 말하자면 실상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네 곳이 아니라 두 곳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
동양사- 한결 같이 도발하는 일본3 영국은 1902년 드디어 동양에서 일본과 동맹을 맺었다. 오로지 러시아의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은 뤼순과 인천에 정박 중인 러시아 함대를 기습하고 다음 날에야 선전포고를 했다. 영국만이 아니라 프랑스와 미국도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 측에 전쟁 비용을 지원했다. 졸지에 유럽열강을 대표해 러시아와 싸우게 된 일본은 예상외로 선전했다. 서구 열강의 지원까지 받았으나 개전 후 1년이 지나자 일본은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었다. 일본을 사지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준 것은 러시아의 내부 사정이었다. 19세기 후반부터 활발해진 러시아의 혁명운동은 러일전쟁으로 더욱 고조되었다. 사태가 급변하자 전쟁을 바라보는 열강의 태도도 변했다. 이제는 군국주의 일본의 성장보다 러시아의 혁명운동이 더 큰 위협이..
동양사- 한결 같이 도발하는 일본2 일본 바쿠후가 쇄국을 하던 18세기 후반 무렵 유럽은 격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자본주의의 새 물결이 거세게 일어났다. 영국은 18세기 중반 프랑스를 꺾고 단독으로 인도를 식민지화 하는데 성공했다. 영국에 패한 프랑스는 엄청난 변화의 회오리를 맞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이다. 이 혁명과 뒤이어 나폴레옹전쟁은 전 유럽의 지각을 뒤흔들어 근대적 국민국가의 성립을 촉진시켰다. 러시아는 18세기 초반 표트르 대제의 개혁을 바탕으로 착실하게 근대화를 추진해 유럽의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유럽의 식민지로 시작한 미국도 1776년 혁명으로 독립해 성공해 열강의 막내로 당당히 끼어들었다. 영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은 중국과의 통상에 최대한 주력했다. 향료 산지인 동남아시아는 이미 에스파..
동양사- 한결 같이 도발하는 일본1 100년에 걸친 센고쿠 시대를 끝낸 오다 노부나가는 장수로서의 용맹과 정치지도자로서의 지략이 두루 뛰어난 인물이었으나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결국 그 자신도 센고쿠 시대를 특징지은 하극상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 노부나가의 죽음에 기민하게 대처해 사태를 진정시킨 당시의 합수부장 히데요시는 비상태책회의를 열었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2살짜리 손자를 후계자로 내세우면서 자연스럽게 권력을 장악했다. 히데요시는 소년시절부터 노부나가 밑에서 마구간 일부터 시작했다. 12세기 바쿠후 시대를 처음으로 연 미나모토 요리모토는 전통의 귀족인 후지와라 가문휘하의 무사집안이었고, 노부나가 역시 센고쿠 다이묘 출신이었다. 히데요시는 시코쿠와 규슈의 유력가문을 평정하고 1590년 마침내 꿈에 그리던 전국 통일을 달성..
왜 詩를 읽는가? “책을 읽는 것은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서이고,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기 위해서이고, 감동받기 위해서이고, 위로받기 위해서이고, 깨닫기 위해서이고, 친구가 필요해서이다.” 법정 스님 말씀이다. 나도 그렇다. 나도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읽은 책을 통해 다음 책을 소개 받고, 뭔가 더 알고 싶은 게 있어서 책을 읽는다. 중독이라 할 정도로 주위에 책이 없으면 왠지 마음이 불안하다. 요즘은 책을 읽어도 기억되는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아마 내 지식체계 어딘가에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난해한 詩는 별로지만 나는 시도 좋아하는 편이다. 박완서 작가와 같은 의미에서 시를 찾아 읽는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詩가 와서 나의 아무렇지도 않은 시간과 만나니, 나 같은 속물도 철학을 하게 만든다..
무책임한 입방아 탄천을 걷는다. 겨울답게 눈도 내리고 매서운 칼바람 불고 추웠으면 좋겠는데, 포근하니 오히려 불안하다. 올해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나려나? 아흔이 넘은 어머님은 전화를 하면 올해 아홉수니 조심하라고 걱정하신다. 세상이 하도 우수선 하고 불안하니 막연하게 두렵고 답답하고 쓸쓸하다. 아홉수라 그런가? 故 이선균 사건을 보면서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이러한 사건은 언제나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이러한 사건은 언제나 말이나 글로 먹고 사는 이들의 무책임한 입방아가 그 원인이다.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인간의 비열하고 잔인함이 두렵고 치가 떨린다. 1981년에 일어난 윤경화 살인사건은 71살 무속인 할머니 윤경화씨가 자택에서 자신의 수양딸과 가정부가 함께 피살된 사건이다. 이 사..
동양사- 외부에서 온 인도의 통일 중국과 달리 인도의 역사는 통일 제국이 아니라 늘 분권화된 상태가 중심이었다. 과거분열은 기본적으로 인도 토착왕조들이나 인근 중앙아시아의 이슬람국가들이 새력 다툼을 벌인 결과이지만, 이번에는 서구 열강이라는 외세가 활개를 쳤던 것이다. 인도의 역사를 세계사에 합류시키는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외세였다. 무굴제국시대에도 남인도에는 유럽의 상인들이 새운 무역도시들이 번영을 누렸으나, 그때는 무굴의 힘이 강성했으므로 외세는 별다른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무굴은 쇠약해졌고 유럽에서는 영국, 포르투갈, 에스파냐, 네덜란드의 뒤를 이어 영국과 프랑스가 중심세력으로 떠오르면서 본격적인 제국주의 시대가 출범했다. 18세기 중반까지 인도에서 진출한 영국과 프랑스는 함이 비슷했다. 인도 경영을 놓고 두 나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