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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의 가해자들과 피해자들 통상적으로 인간의 공격충동을 억제하는 것은 남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의향,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 보복에 대한 두려움, 결과에 대한 걱정들이다. 또한 공격성을 가라앉히는 것은 우리가 애착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과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자기조절의 욕망들이다. 하지만 공격의 충동이 일어났을 때 자기조절 의지가 부족한 상태에서 공격의 충동이 작동되면 부적절한 행동으로 분출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아이가 또래에게서 애착을 형성한 경우 실질적으로 다른 모든 사람들이 공격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애착대상의 관심밖에 없는 다른 또래들도 공격의 대상이 된다. 다시 말하지만 그런 공격성은 다양한 형태를 띤다. 험담하기, 조롱하기, 무시하기, 헐뜯기, 정서적 적대감, 말대꾸하기, 적대하기, 경멸하기 등이..
또래지향성이 조장하는 공격성 미성숙한 사람들은 아이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개성을 짓밟는 경향이 있다. 성숙해 가는 과정에 있는 창발創發적인 아이는 자발적이고 또래와의 접촉요구에 휘둘리지 않으며, 이례적이고 변칙적이고 좀 별난 것처럼 보인다. 또래지향적인 아이들이 그런 아이를 지칭할 때 쓰는 단어들은 괴짜, 멍청이, 지진아, 변종, 얼간이처럼 매우 비판적이다. 아이의 또래지향성이 강할수록 더 강한 분노를 보이고 공격을 퍼붓는다. 또래애착은 개성을 압박한다. 스스로 독립적인 사람이 되고 자기만의 기호를 갖고, 자신만이 의견을 이야기하고 자기 판단을 표현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아이를 또래지향적인 관계에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아이들이 점점 더 성숙하기에 불리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또래지향적인 세상은 아이의 성숙 과정에..
不失其所者久 不失其所者久 부실기소자구자기의 위치를 잃지 않으면 오래 간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언제 어디에 있든 자신의 위치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아마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자기소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자기의 존재감을 지키는 일입니다. 노년의 소임은 무엇일까요? 노년에 나는 무엇으로 나를 지킬까? 새해를 맞으면서 나의 화두話頭입니다. 이번 겨울, 눈 내리는 날 아침 우리 동네 사진입니다.인간은 태어나면 줄곧 죽음을 향해 걸어갑니다. 인생이란 그런 과정입니다. 모든 사람이 줄지어 천천히 걸어가고 그 길의 끝에는 삶의 종점이 있습니다. 나에게도 이제 그 종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일상에서 온 몸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나를 침울하게도 하지만 성찰하게도 합니다.  노년이 되면 ..
미성숙에 머무는 아이들 신체적 성장과 성인으로서의 생리적 기능이 갖추어졌다고 해서 저절로 심리적, 정서적 성숙이 수반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세계는 취학 전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아동증후군이 그 연령을 훨씬 지난 많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십대와 어른들에게서 조차 그런 증후군이 발견되기도 한다. 많은 어른들이 성숙에 도달하지 못했다. 자신의 정서적 욕구를 가꿀 줄 알고 다른 이들의 욕구를 존중할 줄 알며,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는 자신이 되는 법을 완전히 터득하지 못한 것이다. 성숙이 일반적으로 자리 잡지 못하는 것에는 또래지향성이 주된 원인이다.  미성숙과 또래지향성은 서로 협력관계이다. 아이의 일생에서 또래지향성이 일찍 시작될수록, 또래에 대한 집착이 강할수록 영원히 철없는 어린애로 살아갈 가능성이 커진다. 우리..
功遂身退 天之道也 우리 동네 폭설이 내리던 날 성복천을 따라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언제 이런 설경을 볼 수 있겠는가? 눈은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리지만 세상은 고요하기만 하다. 인적이 드문 적막한 풍경을 홀로 즐긴다. 우산 속에서 하하 호호 깔깔거리는 연인들은 즐겁기만 하다. 가까이 다가오니 할매 할배다. 참 정겹고 부럽다. 지난 20년 동안 일상에서 항상 화두로 삼은 것이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먼저 생존해야 하니 먹고 살아야 하고, 그리고 의미 있고 즐겁게 사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 생각한다. 젊어서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가야 하니 생존에 더 무게를 두지만, 나이 들어 어느 정도 사회에 정착하게 되면, 의미 있는 삶을 살며 즐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이 들어 죽음이 보이면 하루하루 성찰하며 의미 있는 삶..
느낌을 거부하는 아이들 요즘 인터넷 대화에 사용하는 문장은 뜻이 분명치 않은 단음절로 축약하고 있다. 진정한 의사소통이 없는 의미없는 접촉이다.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려는 의도가 없다. 이런 대화들이 의미 없이 오랫동안 지속된다. 이것은 자아에 대한 가치는 전혀 드러내지 않으면서 접촉하려는 맹목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의 십대들은 어른 사회와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전통을 아이들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무능력과 좌절감의 밑바탕에는 이런 아이들의 종족화 현상이 자리하고 있다. 아이들이 속한 각각의 종족 내에서 가치관과 문화는 무지하고 미성숙한 개인에게서 개인으로 수평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세대 간 어느 정도 긴장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개는 아이들이 연장자의 문화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성숙을 유도함..
왜 아이들은 반항 하는가? 아이의 애착이 우리를 도와주는 마지막 방법은 바로 부모에게 착한 아이가 되고 싶은 욕망이다. 아이가 못되게 구는 이유는 부모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망이 없기 때문이다. 슬픈 일이지만 부모가 요구하는 기준이 절망적일 정도로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아이의 욕망 자체가 없다면 부모이 기대가 현실적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게 되어 버린다. 양육을 위해서 애착이 이룰 수 있는 가장 큰 업적은 아이에게 착한 아이가 되고 싶은 욕망을 심어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아이를 착하다고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 아이의 내적인 특성을 묘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의 착은 성격을 키우는 것은 아이의 어른에 대한 애착이다. 착한 아이가 되고 싶은 충동은 아이 성격에서 비롯되..
힘을 잃은 부모들 부모로서의 힘은 모든 일이 순리에 따랐을 때 애쓸 필요 없이 굳이 태세를 취하거나 밀어붙이지 않아도 나오게 되어 있다. 반면 부모로서의 힘이 모자라면 그만큼 목소리를 높이고 무자비한 태도를 보이고 위협을 하고, 아이들이 우리 요구를 듣게 하기 위해 다른 수단을 찾게 된다. 부모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힘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왜 그럴까? 우리는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책임을 완수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부모역할을 할 수가 없다. 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는 부모역할의 역학관계를 이해할 수 없다. 부모로서의 힘은 아이에게서 주의를 집중시키고, 바람직한 태도를 이끌어내고, 부모에 대한 존경을 불러일으키고, 아이의 협력을 보장한다. 이런 네 가지 능력이 빠진 채 강압이나 매수만으로 아이를 설득할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