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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슾픔 (알랭 드 보통)

직업상담사

 

우리의 과학기술이 아무리 강력하고 우리 회사들이 아무리 복잡하다해도 현대의 일하는 세계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결국 내적인 것으로서 우리의 정신의 한 측면을 구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일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널리 퍼진 믿음이다. 일을 중심에 둔 것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일이 형벌이나 속죄 이상의 어떤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 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처음이다. 경제적인 필요가 없어도 일을 구해야 한다고 암시하는 것도 우리 사회가 처음이다. 직업선택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 사귀게 된 사람에게도 어디 출신이냐 부모가 누구냐묻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길로 나아가려면 보수를 받는 일자리라는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는 가정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늘 이랬던 것은 아니다.

 

기원전 4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만족과 보수를 받는 자리는 구조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으며 이런 태도는 그 이후 2천년 이상 지속되었다. 이 그리스 철학자에게 경제적 요구는 사람을 노예나 동물과 같은 수준에 놓는 것이다. 육체노동과 정신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리적 기형을 낳는다고 보았다. 시민은 노동하지 않고 소득을 얻어 여가를 즐기는 생활을 할 때만 음악과 철학이 주는 높은 수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생각에 이어 초기 기독교는 일의 괴로움이 아담의 죄를 씻는 데 어울리는 확고부동한 수단이라는 더 어두운 교리를 더했다. 18세기 부르주아 사상가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공식을 뒤집은 셈이다. 이 그리스 철학자가 여가와 동일시했던 만족은 이제 일의 영역으로 옮겨갔으며, 아무런 경제적 보답이 없는 일은 모든 의미가 빠져나가고 퇴폐적인 딜레탕트(예술, 학문을 즐기다)의 우연적인 관심이나 받는 대상이 되었다. 귀족은 비관적으로 또는 어쩌면 현실적으로 쾌락을 연애와 취미라는 부차적 영역에 한정시켰지만, 유럽의 부르주어지는 이 쾌락을 결혼과 일로 가져오는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으며, 우리 또한 이런 흐름을 이어받고 살아가고 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커리어 카운슬링 인터내셔널이라는 이름의 회사가 있다. 웹사이트를 보니 인생의 어려운 결정과 직업선택의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약속하고 있었다. 유일한 상근직원인 로버트 시먼스는 쉰다섯 살의 심리상담사로 12년 전에 이 사업을 시작하여 부인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그녀는 회계와 적성검사 채점을 도와주었다. 시먼스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그때 창조성과 자기발전을 강조하는 인간성 심리학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남는 시간에 진실한 나: 직업은 자아실현 활동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썼고 몇 년째 출판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시먼스는 일주일에 세 번 개인적으로 찾아오는 상담요청자들을 집에서 맞이하고, 나머지 이틀은 전국의 사업체를 돌아다니며 해고를 당하게 된 노동자들이나 책임을 이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관리자들에게 조언을 했다. 또 실직자들을 대상으로 동기부여를 위한 세미나를 하고 면접을 돕기 위한 심리측정 테스트를 하며, 대학 취업박람회의 부스에서는 직업시장에 진입할 준비를 하는 졸업생들을 상담하기도 했다. 어느 상담요청자는 세 번이나 자신의 말을 스스로 끊고 갑자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 이야기는 견딜 수 없이 지루하세겠네요그러자 시먼스는 마치 그녀가 그런 말을 할 것이라고 그동안 쭉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차분하게 대꾸했다. ‘나는 모든 이야기를 듣고 싶을 뿐입니다.’ 상담을 시작한지 20분이 지나자 카운슬러는 목소리를 낮추고 삼촌처럼 따뜻한 태도로 전에는 자발적이고 모든 일에 흥미를 느꼈을 텐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잉글랜드은행 근처의 사무실에서 직원 45명이 일하는 부서를 책임지고 있는 31세의 세금전문 변호사 캐럴은 그 말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자신을 보러 오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가장 흔하고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착각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그저 남들 하는 대로 평범하게 살기만 하면,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해야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냐하는 문제에 관한 직관을 얻을 수 있다고 당연시하는 착각이었다. 학위를 얻기도 전에 가족을 꾸리기 오래 전에, 집을 사기도 전에, 법률회사의 정상에 올라서기 오래전에 그런 직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어떤 잘못이나 어리석음 때문에 그런 직관을 얻지 못했고, 그 결과 진정한 소명을 이행하지 못하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에 남아 괴로워했다. 소명이라는 이 묘하고 불행한 용어는 중세에 기독교의 맥락에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때 소명이란 예수의 가르침에 헌신하라는 명령과 마주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시먼스의 말에 따르면 이런 개념의 세속화된 변형이 현대까지 살아남아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 삶의 의미가 이미 만들어진 결정적인 형태로 드러나고, 그러면 우리에게서 혼란, 질투, 후회의 느낌이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로 우리를 괴롭히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것은 보기 드물고 얻기 힘든 심리학적 성과다.

 

글쓰기 연습을 잠깐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그녀 앞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이 적힌 백지 세장을 놓고, 10분 동안 거창한 것이든 하찮아 보이는 것이든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적어보라고 했다. 시먼스는 사람들과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에 관해 직접 이야기하는 단순한 방법으로는, 더 큰 충족감을 주는 직업으로 그들을 안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돈과 지위에 대한 걱정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정으로 자신이 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능력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먼스는 사람들을 직업이라는 경직된 틀에 맞추려 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이 첫번째 원칙들로 돌아가 그들을 기쁘게 하고 흥분시키는 관심사들을 중심에 두고 자유연상을 하게 했다. 시먼스가 좋아하는 비유가 있다. 그와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적성을 찾을 때 마치 금속 탐지기를 들고 땅위를 걸어가는 보물 사냥꾼처럼, 그가 기쁨의 삐삐 소리라고 부르는 것이 들리지 않나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에 관한 그녀의 공상에는 오래된 교회 찾아가기, 선물주기,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기, 친구가 차린 해물레스토랑에서 식사하기, 인터넷에서 경제학에 관한 블로그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캐럴과 시먼스는 이후 몇 번의 상담을 통해 그 목록을 해석했다. 마치 고대 도시의 잡석더미 연구를 맡은 한 쌍의 고고학자들처럼, 그들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이 과제를 처리했다. 해물레스토랑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캐럴이 거기에서 특별한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그 장소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졌다. 그녀가 감동한 것은 레스토랑 주인이 개인적인 관심을 중심에 놓고, 사업을 벌이는 모험을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시먼스는 이 대화에서 정열이라는 단어를 잡아내 붙여놓은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시먼스는 다시 10분을 주며 캐럴에게 그녀가 가장 자주 질투하는 사람들을 다 적으라고 말했다. 나는 CCTV로 이 상담들을 지켜보다가 그 습도 높은 옆방에서 벌어지는 일에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시먼스는 다른 사람의 아주 미세한 감정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 일은 우리의 욕구의 위계에서 한참 아래쪽에 있는 요소들을 돌봐주는 이미 자리를 확고하게 잡은 일들을 해석하는 사업이었다. 니체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우리 각자가 진정한 나 자신이 되도록 돕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서비스를 받으려고 투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은 비용과 속도를 이유로 단 한 번의 시험상담만 받고 끝내며 테스트에 기초한 방법이 아닌, 다른 상담은 선택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영국 사람들 대부분이 아무 생각 없는 열여섯 살 시절에 선택한 일자리에 체념을 하고 평생 일을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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