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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작가 한강 우리나라 한강 작가가 드디어 2025년도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강 작가는 원래 시인으로 데뷔하였고 그 다음에 소설가로 데뷔하였습니다. 심사위원회에서는 그녀의 문체가 시적이고 실험적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그녀의 작품 세계를 소개했습니다. 그녀의 시도 좋은 시가 많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그녀의 시를 소개합니다. 서시 / 한강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나에게 말을 붙이고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내가 마음에 들었니,라고 묻는다면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오래 있을 거야.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잘 모르겠어.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라고 말하게 될까.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회계사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집을 짓지도 못하고 옷을 꿰매지도 몫하고 오로지 분할상환, 표준고용 소득, 거래세 문제에 답하는 일에만 헌신하는 재정전문가의 도래는 3천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 분업의 긴 역사의 절정을 이루는 듯이 보이며, 적어도 이런 오아시스에서는 엄청난 수입과 더불어 뚜렷한 심리적 부작용을 낳고 있다. 어느 회계회사는 5천명의 직원은 회계감사, 세금, 금융, 지본시장, 부동산, 위험 자문 서비스 등의 이름이 붙은 부서에 분산 배치되어 있다. 지원부서에 근무하는 200명은 의자를 수리하고 고객과 회의를 하는 자리에 비스킷을 갖다 주고 이메일을 전달하고 신분증명 패찰을 클립으로 한데 묶는다.  공중의 넓은 관점에서 보자면 회계는 관료적인 지루한 일과 동의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서..
로켓 과학자 외 로켓 과학자위성발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자 현재 과학계의 삶이 개인적 욕구의 제한 또는 말살을 의미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개인적 영광의 기회는 없었다. 역사적인 위성발사에서 전기가 기록되거나 일반인이 기억할만한 이름으로 남을 전망이 없었다. 이것은 어떤 한 사람도 심지어 어떤 상업적 또는 학술적 조직도 명예를 독차지할 수 없는 집단적 기획이었다. 천재들이 관측소나 작업장에서 일로 매진하여 과학사의 방향을 바꾸던 시절은 지나갔다. 우리는 천체물리학자와 항공 엔지니어들이 어느 한 사람을 우리 시대의 갈릴레오로 띄우려는 미디어의 시도에 저항하면서, 공동실험실에서 작은 수수께끼를 10년 동안 함께 공략하는 소박한 시대에 들어섰다. 과학자 한 사람이 고온에서 티타늄의 속성을 살피거나 점화시점에 수소가 보..
관악산에서 가을이 되어 찬바람만 불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노래가 ‘이별의 노래’다. 아침 저녁으로 기러기가 날아가는 풍경은 시골에서는 흔하게 보는 가을 풍경이었다. 그 시절의 이 풍경을 지금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아이들과 함께 지낸지가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오늘도 어린이집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보내놓고는 마음이 한구석이 짠하다. 비싸고 좋은 어떤 장난감보다 손자는 산에 가서 도토리 줍고 밭에 가서 감자를 캐고 강가에 가서 돌멩이를 던지며 노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물질적으로 빈곤했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이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는 지금의 아이들의 삶보다 훨씬 더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이별의 노래/ 박목월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 리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아~! 너도 가고 나도..
직업상담사 우리의 과학기술이 아무리 강력하고 우리 회사들이 아무리 복잡하다해도 현대의 일하는 세계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결국 내적인 것으로서 우리의 정신의 한 측면을 구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일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널리 퍼진 믿음이다. 일을 중심에 둔 것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일이 형벌이나 속죄 이상의 어떤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 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처음이다. 경제적인 필요가 없어도 일을 구해야 한다고 암시하는 것도 우리 사회가 처음이다. 직업선택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 사귀게 된 사람에게도 ‘어디 출신이냐 부모가 누구냐’ 묻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길로 나아가려면 보수를 받는 일자리라는 관문..
물류와 비스킷 공장 물류200년 전 우리 선조들은 자신이 먹는 음식이나 소유하고 있는 한정된 수의 물건 하나하나의 정확한 역사와 유래, 나아가서 그 생산에 관여한 사람이나 연장까지 알았을 것이다. 그 이후로 구매 가능한 물품의 범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과 반비례로 물품의 유래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거의 깜깜할 정도로 줄어들었다. 현재 우리는 많은 물건을 실제로 손에 넣을 수는 있지만, 그런 물건들의 제조와 유통과정이 어떠한지는 전혀 상상할 수 없다. 이런 소외과정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경이, 감사, 죄책감을 경험할 수많은 기회를 박탈당한다.  우리가 침대에 무방비 상태로 누워 입을 헤 벌린 채 이따금 좌우로 뒤척이는 동안, 어떤 곳에서는 그날 아침의 팔 탈지우유 가운데 대부분의 물량을 실은 트럭 한 부대가 잉글랜드 북..
나만 이렇게 답답하고 우울한가? 이번 여름은 유달리 많이 힘들었다. 불볕더위도 힘들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답답함과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일상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제법 시원해졌지만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걷는 새벽 산책길도, 문득문득 일어나는 불편한 감정으로 우울하다. 무엇을 해도 항상 마음이 편치 않고 일상이 무기력하다. 박완서의 산문집 ‘살아있는 날의 소망’의 내용을 빌어 답답한 마음을 정리해 본다. 일제 36년이라는 민족적인 치욕을 비롯해서 그 후에도 수많은 난국을 겪고 비리에 시달렸으면서도, 우리는 그 원흉을 한번이라도 정당하게 심판해 본적이 있었던가? 추상같은 단죄가 내려질 듯 서슬이 시퍼렇다가도, 어느 틈에 꽁무니를 빼고 흐지부지 되고 만 것의 좋은 본보기가 아마 ‘반민특위’가 아..
남북은 왜 통일되어야 할까? 북한 현대사와 세계 사회주의 체제김일성은 북한을 세우고 약 50년간 북한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북한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 현대사의 유일무이한 인물 김일성을 먼저 알아야 한다. 김일성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을 무렵 평안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만주로 건너가 일본군과 맞서 싸우는 무장투쟁을 했다고 한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그는 소련군과 함께 북한에 들어왔다. 소련의 지원을 받아 권력을 잡은 그는 북한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었다. 공장 등의 생산수단을 국가소유로 했고, 지주의 토지를 빼앗아 토지가 없는 농민에게 나누어 주었다. 1950년 남북한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졌다. 북한 인민군이 남침을 개시함으로써 6.25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김일성의 큰 잘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