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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슾픔 (알랭 드 보통)

회계사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집을 짓지도 못하고 옷을 꿰매지도 몫하고 오로지 분할상환, 표준고용 소득, 거래세 문제에 답하는 일에만 헌신하는 재정전문가의 도래는 3천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 분업의 긴 역사의 절정을 이루는 듯이 보이며, 적어도 이런 오아시스에서는 엄청난 수입과 더불어 뚜렷한 심리적 부작용을 낳고 있다. 어느 회계회사는 5천명의 직원은 회계감사, 세금, 금융, 지본시장, 부동산, 위험 자문 서비스 등의 이름이 붙은 부서에 분산 배치되어 있다. 지원부서에 근무하는 200명은 의자를 수리하고 고객과 회의를 하는 자리에 비스킷을 갖다 주고 이메일을 전달하고 신분증명 패찰을 클립으로 한데 묶는다.

 

공중의 넓은 관점에서 보자면 회계는 관료적인 지루한 일과 동의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수에 관한 재능이 특별하게 밀집되어 있는 이곳은 동지애, 지능, 무익함이 흥미롭게 뒤섞여 있어 사무실의 여러 가지 매력의 사례를 연구하기에 적당하다.

 

오늘도 그는 샤워를 하고 옷을 입은 뒤에 크런치넛 한 사발을 먹는다. 그런 뒤에 핸드백과 레인코트를 집어 들고 쌀쌀한 공기 속으로 나가 기차역을 향해 걸어간다. 일단 밖으로 나오니 자연세계가 인간의 일에 무관심한 채로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고요하다는 것이 왠지 특별해 보인다. 자리를 잡고 앉은 승객들은 고개를 들지도 않고 다른 식으로 아는 체를 하지도 않는다. 인간이 자연스럽게 모여 사는 종임을 고려할 때, 열차 안의 정적은 왠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통근자들이 서로 은밀히 평가하고 심판하고 비난하고 욕망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는 척하는 것이 얼마나 더 편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모든 신문을 읽고 있다. 물론 새로운 정보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잠으로 인해 내성적으로 되어버린 마음을 살살 달래 밖으로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신문을 본다는 것은 소라고동을 귀에 대고 인류의 고함에 압도당할 각오를 하는 것이다. 발광과 파국에 이른 온갖 이야기들은 역설적으로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런 것들과 비교할 때 우리는 제 정신이고 복을 받았다고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이야기들에서 고개를 돌리면서 우리의 예측 가능한 일상을 확인하고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사무실에서 하루가 시작되면 풀잎에 막처럼 덮인 이슬이 증발하듯이 노스텔지어가 말라버린다. 이제 인생은 신비하거나 슬퍼하거나 괴롭히거나 감동적이거나 혼란스럽거나 우울하지 않다. 현실적인 행동을 하기위한 실제적인 무대다.

 

회계사에게 하는 일을 설명해달라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일반인이 보이는 호기심에 반드시 조롱이 숨어있다고 느낀다. 졸업 후 이런 직업을 선택했다고 처음 밝힌 이래 넓은 세상에서 자주 마주치던 익숙한 것이 또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참으면 그들의 조건반사적인 자기 비하가 점차 사라지면서, 미로 같은 일을 정복한 것에 대한 진지한 자부심이 나타난다. 감사에 사용되는 절차는 세계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회계사들은 비행기와 조종사와 마찬가지로 외부의 동료들과 어려움 없이 일을 할 수 있다.

 

현재 이들은 부가가치세 청구 체계의 신뢰성을 확인할 방법들을 찾아내고 있다. 그들은 지난 여섯 달 동안 1억 파운드가 클라이언트 회사의 내부배관을 통하여 흘러온 과정을 도표로 정리했다. 우리가 25만년 전 아프리카에 등장했던 인간조건으로부터 멀리 떠나왔다는 점만은 부정할 수 없다. 작은 활자에 대한 회계사들의 헌신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전 사회에서는 군사적 모험이나 종교적 도취에 바쳐졌던 노력이 지금은 숫자 바느질로 흘러들고 있다. 역사는 영웅답게 길게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결국 우리 가운데 몇 사람만 먼 바다에 나가고 다수는 항구에서 밧줄을 헤아리고 닻의 꼬인 사슬을 풀지 않는가. 회계가 세상을 보는 특수한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회계사는 나에게 책을 어떻게 또는 왜 쓰느냐고 묻지 않고 어떤 책의 세금을 몇 년에 걸쳐 낼 수 있느냐 아니면 출판할 때 전부 내느냐하고 묻는다. 그들은 사람을 보면 먼저 신장부터 생각하는 신장전문의와 비슷하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들에게 지속적인 유산으로 남을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성을 발휘할 때 누리는 내적 자유란 택시운전사들이 길을 찾는 기술을 실행에 옮길 때와 비슷하다. 어디든 손님이 가라고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인간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피고용자들이 자신의 의무를 힘차게 또 빈틈없이 완수하게 유도하는데 필요한 유일한 도구는 채찍이었다. 노동자들이 무릎을 꿇고 탈곡장 바닥에 흩어진 낟알을 줍거나 비탈에서 캐낸 돌을 들어 올리는 일을 하기만 하면 되는 경우에는 채찍질을 해도 무방했고 종종 면책과 혜택이라는 방법을 구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을 하는 사람이 단지 겁에 질리거나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만족감을 느껴야만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일들이 등장하면서 고용의 규칙을 새로 써야 했다. 뇌종양을 들어내거나, 구속력 있는 법률문서를 작성하거나, 힘찬 모습으로 설득력 있게 콘도를 팔아야 하는 사람이 시무룩하거나 원한에 차서는 혹은 병적이거나 분노에 차서는 많은 이윤을 낼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피고용자의 정신적 복지가 관리자들의 최고의 관심사가 되기 시작했다.

 

일터의 역학이 가족관계 만큼이나 복잡하고 갑자기 격렬해질 수 있다. 아니 가족생활보다 외려 더 어려운 면이 많다. 사무실 생활은 보통 명랑함이라는 가면 뒤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동료들이 계속 일으키는 분노와 슬픔에 대처할 준비가 부족한 사람들이 안타까울 정도로 많다. 현대의 사무실은 수만 명의 직원들이 자기들끼리 제대로 의사소통을 해야만 돌아가는 생각들의 공장이다. 그렇게 돌아가야만 난폭하고 부담스러운 고객들의 요구를 이행할 수 있다. 따라서 같이 죽자는 싸움, 부서끼리 편협하게 정보를 감추는 태도, 불평등한 보수체계에 대한 독기어린 불만에 매우 취약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노래방의 밤, 또는 강 유람선이나 중역실에서 사장과 함께 먹는 점심을 상으로 주는 이 달의 직원이라는 제도를 우습게 여길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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