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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부여된 임무 내 주위 사람들이 다 떠나버리고 혼자 침대에 누워 있는 상상, 곁에는 월급을 받기 위해 내 수발을 들어주는 간병일 뿐. 그토록 두려워 하든 상상은 나이들어가면서 모든 이에게 현실로 된다. 휠체어에 앉지 못하면 아무 곳도 갈수 없고, 평소 나를 지탱해 주든 생활을 하나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런 상황이 닥친다. 단순한 절망감 정도가 아니다. 희망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느낌... 내가 가치 있게 여겼든 것, 의지했던 것,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잃은 느낌, 더는 고통을 견딜수 없는 상태에 이른 느낌이다. 상처가 아무는데 필요한 모든 것은 우리 몸 속에 다 있다. 필요한 영양분만 제대로 공급되면 스스로 알아서 치료된다. 몸의 상처가 그렇게 치유된다면,..
살아가기 위한 지혜 마음고생을 훌훌 털고 일어나 이전 보다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여전히 고통의 굴레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보았다.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았던 사람들이 자기 내면의 어둠을 직시하고, 마음의 빗장을 여는 것도 보았다. 이를 통해 용기와 희망, 그리고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샘이 태어나던 날부터 나는 샘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인생과 사랑에 대해 그리고 부모 또한 상처받기 쉬운 인간이라는 것을, 학교가 어떤 곳인지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지, 간혹 못된 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연애, 일, 돈, 마약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싶었다. 이것은 내 인생에서 또 세상에서 내가 배우고 깨달은 이야기들이다. 결국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
나는 다시 아내가 되고 싶다. 이대로 혼자 살아가는 일이야말로 나의 영원한 사랑인가 보다. 그 삶이 아주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심심한 일이라는 것을 너는 모를거야. 싸우더라도 동행이 있다는 것은 매우 인간적인 일이다. 나는 가끔 다시 그 지겨운 아내가 되고 싶다. 아주 가끔 몸 빠르게 시장을 봐와서 갈비를 재고 싶다. 그리고 황태국을 끓이고 싶다. 신명나게 도마질을 하면서 도마질 만큼 수다를 떨면서, ' 여보! 여보!' 그렇게 자꾸 남편을 부르며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 그에게 맛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싱거워?''아니, 맛있어?'그렇게 평범한 행복을 지금 나도 좀 가지고 싶다. 식탁에 꽃을 꽂고, 촛불을 켜고, 좀 멋을 내며 자식 걱정도 하고, 손자의 장래도 걱정하며 남편 옆에서 과일을 깍아 입에 넣어주고 싶다. 너무 ..
다시 새로운 출발 돈이 뭔지 모르는 멍청이인 대가로 세상의 손에 따귀를 맞았다. 돈이란 늘 어떻게 되겠지 하고 생각한 나에게 그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니. 너는 왜 소설을 쓰고 있으며 왜 소설가가 되려고 하니? 그것은 적어도 돈과 무관한 일인지도 모른다.명예에 대한 유혹은 있을지 몰라도, 글로 부자가 되려고는 누구도 생각지 않을 것이다. 마흔에 가까운 시간까지 시를 위해 사랑과 노력을 바쳤는데, 내 인생이 쓰러지고 있는데 시는 나에게 아무것도 해주는 것이 없었다. 나는 그것이 억울했다. 이제 나의 어깨는 가벼웠다. 이세상에 내게 기대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으므로 홀가분하기도 했다. 막살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어찌 막살겠니? 죽어도 어머니는 내 가슴에 살아 있는데.. 나는 내 인생의 중대한 시점에 서 있..
운명 미래를 생각하며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포기했던 사람, 아픈 사람으로서 가족에게 짐이 되면 생명을 포기하겠다던 사람. 아까운 돈을 축내며 가족을 고생시킬 바에야 차라리 자신의 생애를 반납하고 말겠다던 그 사람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먹을 것을 주면 좋아하는 그저 살아났으므로 얼마나 다행이냐는 단순한 생각을 가진 그런 남자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주면 먹기만 하면 되고, 가만히 있으면 옷 입혀주고, 시간 맞춰 걸음마를 시켜주고, 그저 자기가 하고 싶으면 입만 움직이면 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친척들이 오면 한가지씩 좋다는 약을 환자에게 말하고 가곤 했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의사인지 모르겠다. 마치 반드시 해야하는 일처럼 그것을 하면 좋아진다는 말을 해서, 환자는 그것을 해주지않는다면 성의 없다는..
중환자실 중환자실의 풍경은 거의 연옥 아니 지옥이라고 해야 맞다는 것을 . 보호자는 이미 죽은 풍경을 하고 있었고,오랜 전쟁 끝에 겨우 살아남은 난민 같은 모습은 누구랄 것 없이 같았다. 하루에 두번정도는 죽은 사람이 실려 나갔다.그 음습하고, 무겁고, 축축하고,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고, 한숨과 밭은 기침소리와 낮은 탄식이 어우러진 중환자실을 떠올리면 지금도 나는 그곳이 바로 지상의 지옥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은 다 불쌍한 존재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아니, 불쌍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곳에 없는 사람들 일 것이다. 복이 있는 사람들은 그 시간쯤 쾌적한 잠자리에서 사랑을 나누거나, 향기로운 식탁에서 포도주를 나눠마시거나 ,음악을 들으며 웃음 섞인 대화에 빠져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가족끼리 산책을 하거나 ..
자존심 '당해봐!' 누구나 자기 것이 되면 안 할 수 없는 것이야. 능력이 아니야. '네가 알까 몰라' 그럴때 사랑, 희생, 그 따위 단어는 힘을 못쓰는 법이야. 이를 악물게 하는 것은 자기를 지키는 마지막 자존심이라는 것을 '너가 알까 몰라' 아픈 사람을 돌보아 본 사람은 안다. 찾아오는 사람마다 모두 처방을 들고 온다. 환자 앞에서 이러저런 것이 좋다고 말만 던져 놓고 가면, 환자는 그것을 꼭 해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하지 않으면 서운해 한다. 미칠 노릇이다. 사람들의 말이 파도처럼 출렁거리고 나는 머리가 아팠다. 그렇다,나는 멀미를 앓고 있었다. 자존심은 그때도 살아 있었다. 내가 허약한 위치에서 누구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사실이 나는 끔찍했다. 남편이 아픈 여자가 밖에서 돈 빌리는 모습이 나에게는 결코 ..
결혼 세 살짜리 아이에게 아버지가 없어지고, 여든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아들을 잃고 , 서른 다섯의 여자가 미망인이 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나는 자존심이 상했다. 누군가는 말하고 있을 것 같았다. '너는 망했다. 너는 끝장이다. 그래 너는 완전히 실패했다'. 그리고 놀랐다. 내게 자존심이 남아 있었단 말인가? 그렇게 거친 들길을 걸어오면서 자존심이 남아 꿈틀거린다는 것이 눈물겨웠다. 생각하면 인간은 참 어리석다. 나는 아직도 결혼이야말로 인생의 최대 성공이었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그래도 어제도 결혼을 하고, 오늘도 결혼을 하고, 내일도 결혼을 하며, 결혼의 주인공들은 모두 미래의 꿈에 부풀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결혼에 대해서 말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나 무겁고, 은밀한 생의 깊은 비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