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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중환자실

 

중환자실의 풍경은 거의 연옥 아니 지옥이라고 해야 맞다는 것을 . 보호자는 이미 죽은 풍경을 하고 있었고,오랜 전쟁 끝에 겨우 살아남은 난민 같은 모습은 누구랄 것 없이 같았다. 하루에 두번정도는 죽은 사람이 실려 나갔다.그 음습하고, 무겁고, 축축하고,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고, 한숨과 밭은 기침소리와 낮은 탄식이 어우러진 중환자실을 떠올리면 지금도 나는 그곳이 바로 지상의 지옥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은 다 불쌍한 존재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아니, 불쌍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곳에 없는 사람들 일 것이다복이 있는 사람들은 그 시간쯤 쾌적한 잠자리에서 사랑을 나누거나, 향기로운 식탁에서 포도주를 나눠마시거나 ,음악을 들으며 웃음 섞인 대화에 빠져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가족끼리 산책을 하거나 ,텔레비전 앞에서 과일이라도 나눠 먹고 있을 것이다. 아니, 혼자 독방에서 흐느끼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중환자 대기실에 있는 사람보다는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한 친구는 교회야 말로 치유가 되는 곳이라고 일어 주었다. 안수기도 받으면 네 남편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듣다보면 모두 마음 움직이는 것이었다. 굿도 해보고 싶었고, 안수기도도 해보고 싶었다. 그렇다. 그가 일어나는 일이라면 굿이 뭐 부끄러운 일인가? 나는 자꾸 마음이 약해지고 있었다.불행을 겪는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도 돈을 흘리는 법이다. 내가 무엇을 않해 보았겠니더 기가 막힌 것은 그런 생지옥 같은 중환자실도, 언제부턴가 내가 늘 거기 있었던 것 처럼 길이 들고 익숙해지는 것이다. 옆에 있는 사람과 인사도 하고 미소도 띠고, 그 지긋지긋한 중환자실은 그렇게 나에게 친숙한 곳이 되어 갔으며, 나는 거기서 입안으로 밥을 밀어 넣고, 씹었으며 잠시 푸른 하늘에 마음이 닿기도 했다. 거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마음이 약해져 그 어디든 실오라기 하나를 잡고 매달려 보고 싶은 가장 처절한 곳 중환자실, 언제 죽음이 날아들지 모르는 분위기에서 누가 감히 오만 할 수 있으며 그 어떤 종교를 거부하겠는가성당안, 도망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거야.여기가 어디야. 내가 어디와서 울고 있는거야. , 그렇지. 아무도 없는 빈공간이 필요했는가? 울려고 ..마음 놓고 울어 보려고 ..그러나 그간 나는 울 시간도 없었다. 아니 마음 놓고 울 시간에 환자와 돈과 아이들을 생각해야 하니까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온몸으로 울었고, 온 몸으로 눈물흘렸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침대위에서 죽어가고 있는 남자는 머리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너무 슬픈 나머지 그 순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는 것 뿐이었다. 주저앉아버린 자존심, 순간순간 세상이 무너지는 좌절감. 어디에도 길이 없었던 막막한 세상평범하게 아침을 맞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하며, 어떤 사건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가 껴안으며 입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세상에 별 희안한 병도 다 있다. 이 병이 우리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많은 이야기가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늘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었던 거야.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는 것이 약이니까. 자신에게 유리하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방법이니까. 그것이 어쩌면 살아남는 길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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