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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운명

미래를 생각하며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포기했던 사람,  아픈 사람으로서 가족에게 짐이 되면 생명을 포기하겠다던  사람. 아까운 돈을 축내며 가족을 고생시킬 바에야 차라리 자신의 생애를 반납하고 말겠다던 사람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먹을 것을 주면 좋아하는 그저 살아났으므로 얼마나 다행이냐는 단순한 생각을 가진 그런 남자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주면 먹기만 하면 되고, 가만히 있으면 옷 입혀주고, 시간 맞춰 걸음마를 시켜주고, 그저 자기가 하고 싶으면 입만 움직이면 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친척들이 오면 한가지씩 좋다는 약을 환자에게 말하고 가곤 했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의사인지 모르겠다. 마치 반드시 해야하는 일처럼 그것을 하면 좋아진다는 말을 해서, 환자는 그것을 해주지않는다면 성의 없다는 식으로 얼굴을 붉히는 것이다. 정말 환장 할 노릇이다. 그 남자는 서서히 이기주의, 개인주의에 빠져 자기만 아는 종족으로 변해갔으며, 놀라운 것은 상대가 힘들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현실을 볼수 없는 그는 정신적인 장님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의심하면서 믿기로 했다. 나는 하나님을 욕해가면서 믿기로 한 것이다. 불안함이 내가슴을 메워오고 내 온 몸을 휘어잡고, 그리고 사는 일이 서서히 무섭고 두려워 나는 하나님을 택한 것이다. 도무지 내가 누구에게 내 현실에 부닥친 일을 말할 수 있겠는가이 세상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속내 깊은 벗을 얻은 것처럼, 나는 영세를 그렇게 인간적으로 풀이했다. 나는 내가 서 있는 공간이 커지는 느낌을 받았다. 말 할 수 있는 대상,  때릴 수 있는 대상, 고함치는 것을 들어주는 대상, 통곡을 하면 다 받아주는 대상.

 

자신의 분수에 맞게 살아서  그렇게 똑똑하고 자신만만하던 사람이, 왜 저렇게 벌레처럼 되어 세상의 가장 초라한 밑바닥에서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적어도 이렇게 구차하게 살지 않겠다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나는 이렇게 살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내 원대한 꿈은 어디로 가고 나는 마치 거지처럼 이집저집을 돌아다니며, 선심을 구걸하고 다녔다내 남편 제발 좀 아는체 해 달라고 구걸하고 다녔다.  내 꼴이 얼마나 불쌍했는지 그들은 내 부탁을 잘 들어주었다. 그들이 아는 척하면 내 남편은 세상이 아직도 자기를 버리지 않았다고 믿는다는 것을 내가 알므로 나는 기꺼이 그 선심 구걸을 하고 다녔던 것이다

 

이 땅에서 내가 힘이 없으지면  모두가 다 버린다는 사실을. 나는 그렇게 공부했다. 잊혀진 사람이 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애인에게 버려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회집단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이다. '수고하고 짐진 자들은 나에게 오라. 그러면 내가 여러분을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11 28절) 당신은 웃긴다. 나는 당신 앞에 왔다. 어떻게 쉬게 할 것인가? 나의 고통은 더 높아만 가고, 당신을 알고 나서도 계속 지옥속을 헤메고 있는데  '쉬게 한다고?' 나는 거의 미쳐 있었다.  하느님은 거짓말쟁이고, 혼자 잘난 척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거칠게 대들었다

  

여러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혹은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시오. (마태복음 6장)  무엇을 걱정하지 말라는 것인가? 나는 숨이 멎을 것 같고, 미쳐 버릴 것 같고, 자꾸 가난해 지고, 쌀독은 비어만 가는 데도 걱정하지 말라는 것인가온몸에 부상을 당하고, 인생은 깨진 쪽박처럼 불쌍해졌는데  '그래 걱정하지 말라'니 하느님은 무지한 방관자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불확실한 미래와 언제 어떤 불상사를 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떨고 있는데 나더러 짐 진자는 쉬게 될 것이라니 나의 짐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걱정거리는 날마다 쌓여만 갔다. 저를 살려주세요. 저는 지금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도 돈도 의지도 남아 있는 거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하느님 죽을 것 같은데 죽지도 않습니다. 하느님 말씀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오늘 아니 지금 제게 무엇인가 짚고 일어설 지팡이라도 내려주세요.

 

밭 하나를 한번에 바라보지 마라. 큰 밭을 한 번에 바라보면 언제 저 밭을 다 갈아내는가 싶어 맥도 빠진다. 도저히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주저 앉게 된다. 네가 누을 자리 만큼만 봐라. 바로 네 앞만 보고 그곳을 쟁기질 하다 보면, 어느새 밭을 다 갈아 놓았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그럴지 모른다. 산을 바라 보면 엄두가 나질 않아 오르지 못하지만, 앞만 보고 한걸음 한걸음 떼어 놓으면 산의 정상도 오를 수 있다. 내가 너무 먼 곳 까지 본 것이라고 일단 생각했다. 오늘을 살자. 그래야 내가 살 수 있다 나는 널 뛰듯 긍정의 생각에서 부정의 생각을 오르내리며 미치듯 외치고 절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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