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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나는 다시 아내가 되고 싶다.

이대로 혼자 살아가는 일이야말로 나의 영원한 사랑인가 보다그 삶이 아주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심심한 일이라는 것을 너는 모를거야. 싸우더라도 동행이 있다는 것은 매우 인간적인 일이다나는 가끔 다시 그 지겨운 아내가 되고 싶다. 아주 가끔 몸 빠르게 시장을 봐와서 갈비를 재고 싶다. 그리고 황태국을 끓이고 싶다. 신명나게 도마질을 하면서 도마질 만큼 수다를 떨면서, ' 여보! 여보!' 그렇게 자꾸 남편을 부르며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 그에게 맛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싱거워?''아니, 맛있어?'그렇게 평범한 행복을 지금 나도 좀 가지고 싶다. 식탁에 꽃을 꽂고, 촛불을 켜고, 좀 멋을 내며 자식 걱정도 하고, 손자의 장래도 걱정하며 남편 옆에서 과일을 깍아 입에 넣어주고 싶다.

 

 너무 혼자 먹는 밥이 많아, 혼자 먹는 밥은 맛이 없어.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언젠가 나는  혼자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혼자 우아하게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것이었다. 그 많았던 가족들 사이에서 삶이 곤두박질 치면, 나는 혼자 있고 싶어 간절히 외치곤 했다. 여왕보다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지금 나는 혼자가 되었다. 어느 날 '누구나 혼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그런데 혼자라는 것은 하루에 몇시간이면 족한 것이다. 더 필요하면 일주일에 사흘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늘 혼자라는 것사람들이 밤에 가족과 함께 차를 마시고, 과일을 먹고, 세상사 이야기를 하고, 저녁 산책하는 그 시간에 언제나 혼자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특히 나는 병원에 혼자 가는 일도 죽기보다 싫다. '보호자는요?' 하고 묻는 간호사들 앞에 나는 늘 황망하게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리고 나이들어 혼자라는 것도 늘 서럽다. 나 같이 할 일이 많고 바쁘고 정신없이 뛰는 사람도 늘 마음에 찬바람이 불어. 다시 빈집으로 빈방으로 들어야하니까 말이다.

 

삶이 뭐 거대 담론이니?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이지만 소중한 것들이다누가 아프면 약국에 가서 파스 하나 사 오는거. 그게 사랑이다. 그게 사는거야. 넘어지면 팔 붙들고 일으켜 주는거, 그게 사랑이며, 사는 일이다.

 

환자를 간호하는 일은 또 하나의 호사라는 것을 이제 안다. 내가 환자로 그것도 암환자라는 이름으로, 병원 침대에 눕혀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겠니? 물론 모른다. 그래 누구도 모른다. 나는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 물인지 정말 너무도 자세하게 알아버린 사람이다. 누구보다 환자를 많이 본 나였고, 환자에게 익숙한 사람이다. 시어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남편, 그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나의 불행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정작 환자가 되어서 병실에 눕고 말았을 때, 그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임을 나는 알았다. 그 공포, 그 외로움, 그 막막함…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온몸이 벌벌 떨렸다. 내가 한층의 계단을 내려 오는데 20분쯤 걸린 것은 생애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나는 남편이 쓰러졌을 때도, 어머니가 아버지가 시어머니가 죽었을 때도, 이렇게 절망적이지 않았다. 인간은 그렇게 이기적인 것이다나는 전화기를 들고 어딘가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내가 어디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하겠니나는 전화번호 수첩을 들고 살펴 보았다. 내가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고,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명도 없었다수술날 나는 아이들 옆에서 농담도 하고,  웃기도 했지만 정작 옷을 벗기고, 침대에 옮겨 눕히고, 흰천으로내 몸을 덮고, 남자둘이 침대를 수술실로 주루룩 끌고가는 그 장면에서 나는  정신적으로 거의 실신하는 같았다. 그 처절한 외로움과 절망을 비유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몸이 아픈 사람이 그렇게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알았더라면,  내 남편이 반길 일 이라고 나는 반성했다. 그 끔찍한 외로움을 겨우 겨자씨 만큼 알았다고나 할까. 그 긴긴 환자를 나는 죽도록 지겨워 했으니까 말이야. 비로소 이제 나는 그의 외로움을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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