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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자존심

 

'당해봐!'  누구나 자기 것이 되면 안 할 수 없는 것이야능력이 아니야. '네가 알까 몰라' 그럴때 사랑, 희생, 그 따위 단어는 힘을 못쓰는 법이야. 이를 악물게 하는 것은 자기를 지키는 마지막 자존심이라는 것을 '너가 알까 몰라' 

 

아픈 사람을 돌보아 본 사람은 안다.  찾아오는 사람마다 모두 처방을 들고 온다환자 앞에서 이러저런 것이 좋다고 말만 던져 놓고 가면, 환자는 그것을 꼭 해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하지 않으면 서운해 한다.  미칠 노릇이다. 사람들의 말이 파도처럼 출렁거리고 나는 머리가 아팠다. 그렇다,나는 멀미를 앓고 있었다자존심은 그때도 살아 있었다. 내가 허약한 위치에서 누구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사실이 나는 끔찍했다. 남편이 아픈 여자가 밖에서 돈 빌리는 모습이 나에게는 결코 허용되지 않았다. 나를 아는사람들이 그러한이야기를 그렇게 그냥 서로 아침 대화를 나누는 것쯤으로 생각하면,  다시 내가 죽는 것처럼 느껴졌었다.나도 생각해 보면 많이 뒤틀려 있었다인생에 낭패를 당하면 반드시 정신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 알 것 같았다.

 

'물질이 뭔지 아니?' 어떤 면에서 사랑보다 훨씬 더 확실한 구원이기도 하고, 파산이기도 해.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할 때, 뭐든 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그것이 인생의 가장 가치 있는 도달점이라는 듯이 그러나 돈을 가진 사람들을 봐. 돈에 사랑보다 더 큰 중독과 거기서 영원히 떨어지고 싶지 않은 밀착 증세가 거의 질병처럼 상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은가사랑만이 아니다. 물질도 나를 떠나면 거품을 물게 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어쩔수 없이 집을 급하게 판 이후 그 며칠은 남편이 병신되어 있는 것보다 집을 싸게 팔아버린 것 , 그것이 더 화가 났다. 돈이 그렇게 사람을 무너지게 한다. 나 자신에게 화가나서 머리가 핑핑 돌 것 같았다물질은 그렇게 인간을 나약하게 비겁하게 형편없이 저질로 만든다. 잔인하게도 만드는 것이다.

 

방문객은 '고생한다'느니,  '곧 쾌차할거'라니, '생각보다 좋아 보인다'느니, 뭐 그런 이야기하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들의 눈빛은 늘 나의 초라한 생의 고비를 훔쳐보고는 침묵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사람들은 병실을 다녀가고 난 다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제 끝장이야, 인생도 끝났다' 나는 다 부끄러웠다. 어쩌자고 내 인생이 이렇게 부끄럽게 되어버렸을까. 나는 도도하고 싶은데, 나는 당당하고 싶은데, 나는 이 세상에사 고개를 치켜들고 잘난 척하고 싶은데. 그것이 가슴속에서 끊어오르고 있는데, 현실은 참혹한 실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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