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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와 그 적들 (이나미 지음)

남들처럼

체면이나 남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남들 처럼’이라는 말은 일종의 덫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으로 끝없이 불안해질 수 있다. 남에 대한 질투와 선망뿐만 아니라 대세에 속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거나, 본인이 못나 보이지 않나 하는 불안감도 있다정작 원하는 삶은 따로 있는데, 남을 의식하며 가짜 삶을 살면 하루하루가 버겁고 힘들어진다심리분석을 하면서 '남들처럼' 이라는 허상을 버리고 참된 자신의 모습을 찾도록 도와주려 해도 거부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엉뚱한 고집을 부리느라 세상 돌아가는 것을 '너무 몰라' 몰락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주관이나 철학에 따른 선택이라면, 부끄러울 것도, 꿀릴 것도 없다.  대부분의 삶이 자기에게 특출한 창조적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시대를 앞서는 지혜도 없다고 생각해 다른 길을 과감하게 택하지 못한다.

 

주류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는 것이다. 창조적 재능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고 성공한 사람들이 반드시 특별히 창조적인 것도 아니다.  창의성 교육의 시작은 다른 목소리와 생활관을 가진 아이들도 사회에서 자리 잡을 수 있게 해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남과 다른 이들이 황량한 벌판에서 창조적 에너지를 소진시키지 않도록 좋은 토양을 제공하는 것이 성숙한 집단이 할 일이다. 복고가 과거를 재해석한 것이라면, 키치(천박하고 저속한 모조품 또는 대량 생산된 싸구려 상품을 이르는 말)는 자신이 B급 아류임을 아예 공표해 버린다.  혼성모방 ( 패스티쉬: 비판하거나 풍자하려는 의도 없이 기존의텍스트를 무작위적으로 모방) 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기법 중 하나라고 해서 때로는 표절을 합리화 하기도 한다. 복고나 키치는 대개 직접적으로 감성을 건드려 때로 조악해 보이지만,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 받을 때도 있다. 혼성모방 기법을 쓴 책이라고 스스로 말하거나, 주변에서 모방이라고 지적하는 베스트셀러 창작집도 많다.

 

의식주의 모든 산물은 모방되고, 과거는 끊임없이 재현된다. 집단 지성의 시대이므로 이런 현상은 더 증폭될 것이다. 문명이 시작하는 시점만 보면 미국은 서유럽의, 서유럽은 로마의, 로마는 그리스의 그리스는 이집트의 복고적 아류였다. 자신의 창조적 능력이 거의 고갈되어 간다고 느끼면, 사람들은 대개 지위나 돈을 탐한다. 공허한 마음을 외적인 조건들로 감추고 싶은 무의식적인 방어다. 기성세대들이 회사건, 대학이건, 사회건, 이른바 파벌과 정치싸움에 죽을 힘을 다하는 것도 결국, 자신들이 창조적 천재가 아니라 이류 또는 아류에 불과하다는 절망감 때문일 수도 있다. 젊은 세대들이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권력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것은 그래도 자신의 삶은 조금 다를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년이후 자신의 삶이 특별하지도 않고 창조적이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때, 사람들은 곧잘 우울증에 빠지거나 질투심에 사로 잡힌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기분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무대위에 올라간 배우나 가수들은 많은 평론가의 사냥감이 되지만, 무대 아래서 그들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좋은 시간을 즐기면 그 뿐이다. 만약 내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면, 굳이 자신의 창조적 재능부족을 한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 삶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창조물일 수 있다. 사람사는 동네에서는 항상 갈등이 있고, 서로 크고 작은 상처를 주기 마련이다. 평생 살면서 누군가에 대한 미움 때문에 힘들어 했던 기억 또는 배신 등으로 상대방에게 큰 실망을 했던 경험이 한번도 없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화가 나면 먼저 상처받은 원인부터 분석해야 한다. 오랫동안 일방적으로 희생하며, 살았던 사람들이 그만큼 자신에게 돌려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들간에도 한쪽이 많이 희생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많다.

 

사실 상대방에게 무엇을 베풀 때는 정말로 상대방이 필요한 것을 주기보다 자기가 뭔가해 줄 때, 기분이 좋아서 자기 취향대로 주는 경향이 있다. 오랫동안 희생했는데도 대가는 커녕 배신 당하고 무시 당해 상대방을 용서하기 힘들다면, 그 동안 상대방에게 베풀면서 느꼈던 기쁨의 가치에 대해 스스로 환기해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자녀를 키울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떠올려 본다면, 그 자식이 그만큼 돌려주지 않아도 별로 화나지 않을 것이다.  일단 벌어진 과거 일은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걱정해 봐야 소용 없으므로거기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강요가 아니라 진심으로 나 자신을 힘들게 한 상대를 편안하게 용서하려면,  우선 자신의 자아가 행복하고 건강해야 한다. 원인은 상대방이 제공했을지 모르나 상처받은 마음의 치유는 내 몫이다.

 

내게 상처를 주었으니 상대가 책임지고 낫게 해야 한다고 생각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분노와 억울함, 용서는 감정 반응이지만, 그 반응을 해결하는 몫은 많은 부분 이성이다. 진정으로 자신을 귀하게 여긴다면 상대방이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그것을 잘 막아내고, 자신을 소중하게 가꾸어야 한다. 용서하는 것은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속의 독소를 빼고 행복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한 나만의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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