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사회와 그 적들 (이나미 지음)

즐거운 삶을 위하여

결혼제도의 폐해, 부부생활의 허위성에 대해 진절머리를 치는 이도 있다. 한편으로는 쓸쓸하게 늙어 죽는 것이 아닐까? 모아놓은 돈도 없는데 직장에서 짤리면 혼자 어떻게 사나하는 현실적 걱정들도 한다. 심리적인 문제점이 없어도 혼자 생활을 하다보면, 병 들었을 때나, 실직할 때가 더 불안할 수 있다. 반대로 스스로 부족하고 불만스러운 모든 상황이 결혼하지 않은 탓이라 생각하고, 혼인만 하면 문제가 모두 없어질 것이라는 비현실적 기대를 하는 이도 있다.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좀 불편해도 참고, 의견이 다를 때도 조율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갈등이 생겨 충돌한 뒤 서로에게 사과하는 화해 과정도 어렵게 여겨질 수 있다.  배우자나 자식이 없어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일종의 대안 가족으로 생각해 오랫동안 공들이며, 행복을 영위하는 이들도 많다.

 

요즘엔 결혼한 한국의 부부들마저 7분의 1정도가 서로 떨어져 살고 있다는 통계가 발표돼 혹시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해체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교육이나 직장, 교툥과 관련된 문제 때문에 어쩔수 없이 별거하는 경우도 있지만 속사정은 다양하다.  우선 가족들의 성격이나 생활방식이 맞지 않아 함께 사는데 몹시 불편한 경우가 있다. 물론 같이 살면서 서로 맞추어가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워낙 자아가 강한 21세기 한국인들의 경우엔, 나를 희생해서 배우자나 다른 가족 구성원에 맞추는 것을 굴욕이자 큰 희생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각자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존중하고 계속하려면 차라리 따로 사는게, 가정을 그런대로 유지하는데 훨씬 편리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10여년 이상 외국과 한국에서 기러기 가족으로 살다가 완전히 남이 되어버린 부부도 많다. 특히 가까이 살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할 기회를 놓쳐버려 안타깝게 헤어지는 부부도 적지 않다. 원래 사이가 좋았던 부부라도 오랫동안 서로 보지 않으면,  함께 나눌 이야기도 별로 없어져 마음과 몸이 멀어질 수 잇다. 같이 나눈 달고 쓴 추억이 없으면, 깊은 가족애를 느끼기 어렵다. 한국인들이 절대 침해받지 않는 사생활을 점점 강조할수록 사실,  여러가지로 잃어버린 소중한 부분도 많다. 전통적인 가족의 안정과 편안함이 그중 하나일 것이다. 과거처럼 직접 살을 부대끼지는 않더라도, SNS를 통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어 편하다는 아들도 있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어떤 사랑이 확실하고 견고하게 지속되겠는가?

 

한 집에 기거하면서 서로 증오하고 싸우는 것보다 몇 달에 한번씩 보고 정제된 시간만 함께 하는 사이가 더 좋다는 의견도 있다.  반대로 격정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은 아니지만, 귀찮고 성가신 것을 성실하게 함께 나누어야 유대감이 훨씬 더 공고해진다는 의견도 있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 자유지만 그에 따른 결과는 인정하고,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끼리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다.  독거노인의 증가, 급속한 가정해체가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는 기사도 사라질 것 같다. 독거노인이 일반적인 추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한국인의 정신건강이 심각할 정도로 병들어 있다는 소식이 많이 들린다. OECD국가중 높은 자살율, 특히 노인과 청소년의 건강수준은 위험 수위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2012년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148개국에서 각각 1000명을 대상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정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인은 97위였다. 1위를 차지한 나라는 파나마와 파라과이였다. 미국, 중국은 33위, 일본은 59위, 싱가포르가 최하위를 차지했다.

 

갤럽은 대상자들에게 어제 잘 쉬었는지, 많이 웃었는지, 즐거웠는지 등의 질문 한 뒤 '그렇다'고 대답한 순위를 매겼다. 여기서도 중남미국가가 10위권에 대부분 들었으며, 태국과 필리핀이 유일하게 10위 안에 들었다. 그리고 북유럽 국가도 높은 순위였다.  행복해 보이는 중남미 사람들은 잘 살아보겠다는 욕심이 아시아 사람보다 강하지 않다. 돈이 생기면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는데 쓰지, 자녀 교육 등 미래에 대해서 많은 투자를 하려하지 않는다.  노인들 세대를 보면 그런 상황을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비참한 시절도, 지금처럼 고통스럽지 않다고 회상한다. 그 당시 그야말로 생존 그 자체가 절체절명의 화두였기 때문에 행복이니, 치유니 하는 것들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 사회가 잘 살게 되었다고 해서 국민 행복감이 증가하지 않는 이유하나는, 주관적인 행복에 대한 기대치가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자극의 피로현상이다.

 

일단 단 것을 먹게 되면 좀 더 단 것을 먹어야 그 음식이 달다고 생각된다. 매스콤과 주변의 소문 등을 통해 호화로운 생활에 대한 불필요한 정보를 너무 많이 접하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된 것도 사실이다. 선거때 여야 상관없이 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내걸었던 만큼, 한국인들이 느끼는 부의 편중으로 인한 위화감과 불행감이 심각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교육의 심화로 소득 상위 20%가 명문대 재학생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빈부격차가 심화되었으니, 상대적 불행감은 당연히 더 깊어졌을 것이다. 잘못된 의학과 심리지식도 사람들이 마음을 병들게 한다. 첫번째가 유전자 결정론이다. 유전자가 좋지 않다며 미리 포기해버리는 것 역시 잘못된 결정론이다. 좋은 유전자를 받고도 망쳐버린 경우도 많고, 좋지 못한 유전자를 받아도 잘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둘째 모든 상황을 부모탓으로 돌리는 태도이다. 셋째  자기와 자녀가 받은 교육을 원망하는 태도이다.  넷째 사회가 안고 있는 병에 모든 잘못을 돌리고 자신은 책임지지 않는 무기력한 태도이다. 

 

기업이나 사회의 책임은 지적하지 않고, 개인의 정신에 무한책임을 돌리는 긍정심리학이 위험한 것처럼, 자아의 책임과 의지는 부정하고 모든 일에 환경탓만 하는 태도 역시 건강하지 못하다내 책임은 부정하고 외부에서만 불행의 원인을 찾을 때, 사람들은 무기력하게 아프거나 미치게 된다.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심성은 훨씬 더 성숙해 지고 건강해진다. 그러나 이 작업은 고통이 수반된다. 아프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

 

'한국 사회와 그 적들 (이나미 지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인 그래도 희망에 산다.  (0) 2014.01.01
가치관  (0) 2013.12.30
남들처럼  (0) 2013.12.27
약해져 가는 우리 그리고 치유  (0) 2013.12.26
종교, 귀신  (0) 2013.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