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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와 그 적들 (이나미 지음)

약해져 가는 우리 그리고 치유

배가 난파 되거나 숲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사막이나 추운 산에 홀로 남겨졌을 때, 사람들이 죽는 이유는 저체온증이나 탈수 같은 신체증상 때문이 아니라, 공포와 불안으로 삶에 대한 희망을 놓아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짐승은 위험이 닥치면 재빨리 도망칠 수 있게 심작동과 호흡 횟수가 빨라지며, 말초 혈관으로 가는 혈액량은 줄고, 머리와 심장으로 피가 몰린다. 전형적인 공황장애의 형성 기전이다. 또한 생명에 위협이 오는데 음식을 먹거나 잠을 잘 여유가 없으니 소화기관이나 신경호르몬 체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정신신체 질환, 즉 스트레스와 감정적 원인으로 인한 신체증상과 불면 등 다양한 심리적 증상도 찾아온다. 정치적, 경제적 위기가 닥치면,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불안과 우울감 등의 증상이 없다면,  원시적 수준의 방어기전인 부정상태에 빠져 절박한 위험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오히려 의심해 봐야 한다. 다만  경험에 입각해 미래를 계획할 줄 모르는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고통도 언젠가는 끝날 것임을 안다는 점이 다르다.  모두 겪는 난리는 난리가 아니라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그간의 진짜 난리는 잘 극복해 왔지만,  최근 어려움은 오히려 디디고 일어서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자기가 먹을 것은 자기가 타고난다는 옛말을 뒤집으면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 숨어 있다. 부동산이나 주식투자, 사업 등으로 돈을 많이 번 부모들이 자녀들의 장례식까지 책임진다는 우스갯말이 있을 정도로 과잉보호 경향이 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쪼르르 달려가 해결해 부모가 있으니, 강인한 생활력을 갖출 필요가 없는 것이다. 2차 대전중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이들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보다 노동에 동원된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한다. 워낙 경제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학교건 집이건 허드렛 일은 대부분 학생들이 했다. 자기도 모르게 노동하는 습관을 배운 것이다. 요즘은 과거에 비해 학교의 환경과 교육내용이 엄청나게 좋아졌지만 실제로 학생들에게 직업윤리를 가르쳐주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들의 경우엔 인문계 학교라도 목공, 원예, 자동차 운전과 정비, 재봉 등을 많이 가르치는 편이다. 어린 학생들에게 직접 몸을 쓰며 일하는 태도를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하다. 땀을 흘리며 힘들게 노동하는 법을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으니 당연히 어려운 일이 있으면, 참지 못하는 것이다텔레비전, 잡지, 인터넷 등에서 자주 뜨는 부자들의 일상과 사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안락하게 살고 있구나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모든 것을 부모 잘못 만난 탓으로 돌리며 위화감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도 큰 스트레스다.  3-4월에 정신과 환자들이 급증한다. 환절기라는 요인도 있지만,  새로운 과정 하나하나를 경험해 가는 것에 정신적 에너지가 많이 요구되기 때문이다위계질서와 집단주의, 특히 한국에서는 처음 잘못했다가 찍힐까봐 내부의 권력관계를 파악하느라 에너지가 과도하게 필요하다. 시작에 약한 사람들은 강박적이고 완벽주의적인 경향을 자주 보인다.

 

새로움에 대한 불안이 무의식에 잠재해 있어 모든 것이 확실치 않으면 시작을 못하는 것이다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 실수를 스스로 용납하지 않아 그만큼 좌절하기도 한다. 누구든 첫걸음마는 힘들게 마련이다. 누군가 내 행동을 지적할 때 자존심부터 세우지 말고, 그들로부터 배울 점을 적극적으로 알아내는 것이 결국 내게 이익이다.  겸손한 태도로 자기 말을 경청해 주는 사람을  적으로 삼는 사람은 없다. 인류가 계속되는 한, 어느 문화에서건 사람들에게 울음과 웃음, 좌절과 환희, 슬픔과 기쁨이 모두 필요하다. 사람의 감정은 본래 양극단이 연결되어 있다. 고독을 느껴보지 않고 어울림의 기쁨을 알 수 없고, 실패한 경험이 없으면 성공의 짜릿함을 모른다. 그러나 감정의 양극이 너무 심하게 요동치거나 한쪽으로 흐르면 마음이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이럴 때 예술이나 축제를 통해 상처 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술을 마시고, 취해 자는 대신에 뭔가 예술적 감흥을 즐길 수 있으니 인생이 훨씬 아름답다.

 

열심히 일하는 시간과 예술적 흥취를 즐길 수 있는 디오니소스적 시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삶의 지혜 아닌가. 좋은 노래를 들으면 소름이 돋는다. 좋은 음악은 뇌로 가는 혈류를 증가시키고, 이 과정에서 말초신경의 피부가 수축되어 생기는 현상이다. 멜로디는 측두엽을, 가사는 접두엽을, 박자는 두정엽과 소뇌를 주로 자극한다. 불쾌한 소음은 통증을 인지하는 부위를 자극한다. 간난 아이들도 불쾌한 소음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악을 구별한다. 음악을 가르치면 주의력과 추상적 사고가 증가되며, 수학과 음악교육은 상호보충적 작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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