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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와 그 적들 (이나미 지음)

종교, 귀신

 인생이 곤두박질치듯 무너질 때 사람들은 자포자기, 근거없는 낙관론, 우왕좌왕, 책임회피 등의 증상을 보인다. 사이비교 교주들은 뛰어난 화슬과 용모, 따뜻한 마음 씀씀이와 강력한 카리스마까지 갖추고 있어 마음 붙일 곳 없는 이들은 자신이 잃어버린 정체성과 고향 찾는 기분에 빠져들고, 마침내 기존 사회와 단절 된다. 한국은 사람은 많고 땅은 좁아 경쟁이 심하다. 그러나 그만큼 좋은 환경을 가졌기 때문에, 많은 인구가 행복하게 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막, 동토, 습지 등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국가의 사람들에게는 사계절 모두 아름답고 숲, 강, 논밭이 모두 아름다운 한국이 천국처럼 보인다. 한국인은 현세, 즉 지금 사는 현실에 대한 사랑이 깊다. 굳이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에서 사는 것을 상상할 필요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불교나 기독교가 한국에서는 힘든 이승 대신 편안한 이승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지극히 현실적인 종교로 변한 이유도 거기 있을 것 이다. 깨달음과 절대자에 대한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목표보다 자신과 가족들의 부귀공명을 얻기 위해 기도 한다.

 

주역을 제대로 읽으면 기본적으로 승승장구 하면서 일이 잘 풀릴 때 보다 겸손하게 처신하고, 또 뭔가 안좋은 일이 일어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좋은 때를 기다리며, 재충전하라는 것이 기본 철학이다. 융 심리학에 따르면 무속인은 네 개의 성격유형, 즉 사고형, 감각형, 감정형, 직관형 중 특히 직관력이 강한 쪽이라 할 수 있다. 무속인들도 정신과 의사들처럼 오래하면 비슷한 경험이 쌓일 수 있다. 가려운데를 긁어주어 시원하게 해주는 카타르시스 효과를 느끼게 한다. 불안한 미래를 한정된 자기의 이성과 개인적 능력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유일신이나 道, 우주의 원리와 조응하면서 보다 의식을 확장시켜 보려는 의도로 여긴다면, 이것 또한 종교성일 수가 있다. 종교성을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적 종교관으로 국한하면 사실상 불교나 유교, 샤머니즘은 종교가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넓게 보면 무속도 일종의 종교이다. 죽음과 삶의 근본에 대해 생각하고 초자연적인 사건들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굿이라는 일종의 의식도 전통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종교적 태도는 세속속에서 느끼는 자신의 한계를 피안의 영역으로 지향하는 마음을 말한다. 기독교의 기도, 불교의 독경이나 참선은 종교적 태도를 갈고 닦는 훌륭한 방식이다. 현재가 힘들 때, 보다 나은 미래를 기다리면 현재를 기다리는 힘이 생긴다. 특히 현실이 고통스러울 때 자연스럽게 종교에 귀의해 저승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종교는 죽음과 탄생 등 인간의 의식이 닿지 않는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한다. 건강한 영혼에 대해 무관심하다 보면, 우리의 혼이 깊은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아, 그냥 소멸해 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무의식속에 숨어 있는, 우리가 돌보지 못해 숨죽이고 있던 영혼은 질병이나 사고 또는 정신적인 큰 스트레스상태에서 불쑥 귀신의 형태로 튀어나올 수도 있다. 극심한 공포의 상황을 견디면서 이들의 정체가 밝혀지고 완전히 제거되면, 그동안 철없고 약한 또는 이유없이 반항적인 주인공들이 대개 성숙하고 강한 인물로 변신한다.

 

나이가 들면 대개는 공포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 삶에서 공포물보다 더한 좌절, 끔찍한 사고와 죽음들을 경험한 탓에 피와 죽음을 보는 것 자체가 싫을 수 있다.  더 이상 영웅으로 재탄생할 기력도 필요나 가능성도 없다는 피로감 때문일 수도 있다. 세계적인 불황,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에 따른 소외감, 원전 사고나 기름 유출로 인한 환경오염 같은 진짜 무서운 상황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터라 또 다른 공포심에 노출될만한 기력이 없다. 어쩌면 귀신보다 더 공포스러운 삶이 상황들에 너무 많이 노출된 탓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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