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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와 그 적들 (이나미 지음)

한국인 그래도 희망에 산다.

금방이라도 망할 것 같이 호들갑을 떨지만,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느냐는듯이 시치미를 떼는 곳이 한국이다. 누구는 냄비근성이라 하지만, 어쩌면 하도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에 웬만한 일은 넘어갈만큼 내성과 포용력이 생긴 탓일 수도 있다. 사람 옆에 바짝 붙어 앉으려 하면 침범해 오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지는 사적인 거리가 훨씬 큰 서양사람의 눈에 한국인들은 때론 무례해 보일 수도있다. 살이 좀 접촉해도 개의치 않는 것은, 그만큼 사람을 좋아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선진국은 재미없는 천국이고,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라 하기도 한다.  밤늦게까지 비교적 이렇게 안전한 상태로 불을 밝힌 상점과 술집을 돌아디니며 놀수 있는 나라가 전세계에 몇 개국이나 되겠는가? 조금 아쉬운 점은 그렇게 어울려 일하고, 노느라 혼자 책보고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창조적인 작업, 내적인 성찰은 여러 사람과 함께 하기보다 혼자서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선진국을 따라가느라 허덕인 지금까지의 스트레스를 넘어 지구촌의 선구자가 되려면, 혼자 하는 것도 잘하는 고독의 힘을 갖추어야 한다. 고독한 자신을 성장시키려면 몇가지가 전제 되어야 한다.

 

첫째 외로움과 친해져야 한다. 행복하고 평화롭게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을 때는 혼자 기도하고, 책 보고, 나무 심고, 그림 그리고 음악을 들을 때이다. 다음으로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무언가에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 예술이건, 운동이건, 일이건 혼자서 열심히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지금 하루라도 빨리 개발하는 것이 좋다. 다음으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단순함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나오며 구매하라고 부추기고, 복잡한 인간관계에 매여 살도록 강요하고, 사회가 그것을 당연시 하기 때문에 실은 행복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매일 누군가를 만나느라 지치는 데도 모임에 참석하지 않아서 불안하다면, 복잡한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일과 사람에 얽매여 불평하면서도 끊지못하고 있다면, 최악의 상황에서 손을 내밀고 위로해줄 사람이 누군인지 생각해보자. 만약 한명이라도 확실하게 떠오른다면, 당신은 성공한 인생이다.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사실 당신 인생에서 흘러가는 존재이니, 너무 애를 쓰면 어울리려고 할 필요는 없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기꺼이 나누지 않는 친구들은 내가 늙고 병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껍데기들일 뿐이다. 앞으로 30년쯤 뒤에는 어떤 변화도 싫어하며,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사는 무기력한 노인들의 세상이될지 모른다. 부모와 사회에서 양육되어 노인보다 더 노인 같이 겁많고 소심한 젊은이들의 노년을 상상해 보라. 정신없는 사회변화에서 스트레스보다 오히려 정체된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하는 고민이 더 클 수 있다.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부계에서 모계사회로 변한 것에 대한 적응이다. 늙은 아버지를 가정에서 공공의 적처럼 고립시키고, 비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젊어서는 여자들 환심 사느라 월급보다 더 많은 명품백 사주고, 결혼해서 집 마련하느라 애쓰고, 늙어서 부인에게 연금 차압 당하는 게 대한민국 남자들의 자화상이 될 수 있다. 그럴 능력이 되지 않아 성폭력범이 되거나, 가정 파괴범이 되거나,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 될 가능성도 많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태어났기 때문에 행복하게 살려고 애쓰는 것 뿐이다. 지구위의 모든 생물처럼 자기보존 본능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다. 어떤 종교도, 부모도, 사회도,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쾌락과 기쁨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감각적 쾌락은 경험하면 할수록 그 효과는 반감 된다. 맛있는 케이크도 첫 입에 황홀하지만, 쉬지 않고 먹어 되면, 결국 맛을 느끼기는 커녕 탈만 날 것이다. 명품가방, 비싼 가구, 일류 오디오, 좋은 차 등 모든 소비재는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게 마련이다. 미남과 미녀와의 섹스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엔 세상이 온통 황홀해질 수도 있겠지만, 다른 일은 않고 뜨거운 잠자리만 계속하면 감흥은 사라지고, 혐오감만 남을 것이다. 자극이 너무 많아 권태로운 사회가 된다. 인간은 행복한 순간보다 고통스러운 순간이 훨씬 더 많게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자아와 개인의 의지와 행복 그리고 소유하고, 소비하는 삶을 강조하는 오늘날에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나만이 누리고 행복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화가 난다는 유아적인 논리에 사회 전체가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

 

요즘엔 내가 좋으면 다 좋은 것 아니냐고 하는 이기주의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건 말건 무슨 상관이냐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일하다 보니 언제 어느 틈에 서로가 다른 사람에게 언제 상처받을지 모르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외부의 억압과 통제가 사라지면, 내부통제가 작동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그만큼 위험과 불안이 고조될 수 밖에 없다또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 없어져 무언가에 헌신하고, 투신할수 있는 인내와 용기도 사라져 간다. 결혼, 육아, 직장도 포기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원인 중 하나이다.  모든 세상 가치와 덕목에 냉소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경제성장율이나 출생율이 떨어지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힘든 것을 참지 못하니 아이들은 학교를 떠나고, 금방 직장을 포기하고, 장년이나 노년은 갈 데가 없다. 소소한 일상이 창조성의 원천인데도 스티브 잡스나 스티븐 호킹 정도는 되어야 창조적인 인재라고 생각하는 일반인은 시작도 하기 전에 죽거나 포기한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나는 한국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문제가 많다고 떠들고, 고민하고, 원망하고, 자책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역동성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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