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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물음이 답이다.(최용철)

이성

내가 언젠가 남의 물건을 훔치고 싶어도 오로지 의무감으로 억제되는 경우와 훔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어서 다른 사람이 소유한 물건을 훔치는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경우와 비교해 보라. 당연히 훔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경우가 더 낫다. 성숙한 도덕여행을 하는 초기단계에서 나는 아무렇게나 행위하려는 유혹에 맞서야 한다.  훔치지 않은 것은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훔치고 싶지 않았던 경향성 때문이다.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의무감에서 나오는 행위는 고귀하다. 그렇지만 애당초 부터 사악한 행동에 기울어지는 경향성을 극복하여, 그 경향성에 저항할 필요 조차 없는 행위가 더 고귀하다. 나는 의무에서 행위를 한다고 믿지만,  내가 하는 행위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결코 의무에 해당하는 행위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순수한 실천이성과 순수하지 않은 경험계에 속하는 신체로 살아가는 이중성을 지닌 존재이다. 이기주의 경향을 배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은 어쩌면 타고난 경향인지도 모른다. 칸트 윤리학은 어떤 도덕 전통을 표현하는 '도덕철학'이다. 그 도덕 전통이란 다름 아닌 유대 기독교 전통이다20세기 부터 21세기에 걸쳐 종교주의는 윤리학이라는 탈을 쓰고,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종교는 무지가 낳은 자식이라고 힐난한다. 이 무지가 낳은 자식은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라고 요구할 뿐, 왜 복종해야 하는지 성철하지 않으려 한다. '인류 발전에 가장 큰 장애중 하나는, 사람들이 가장 현명하게 말하는 사람들 말이 아니라 가장 크게 말하는 사람들 말을 듣는다는 것이다' 라고 쇼펜하우어는 한탄한다.

 

이성은 인간의 지닌 지고한 능력이 아니다. 이성이 지닌 기본기능은 감정을 억제하는 일이다. 무질서와 혼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이성능력을 높이 평가하기 시작한 철학자는 플라톤이었다. 이성은 좋고 감정은나쁘다. 정신은 고상하고 육체는 비열하다. 육체는 고상한 정신을 가로 막는다. 혼란에 벗어나려면 질서가 마련되어야하고, 질서를 잡기 위해 온갖 규칙이 만들어진다. 규칙은 다시 제도를 만들고, 다시 금기를 생산 해낸다. 인간이 저마다 개성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육체때문이다. 육체가 없다면 나는 존재하지 못한다.

육체와 정신을 가르는 이분법은 육체를 왜곡한다.  몸이 곧 사람이라는 전제에서 유전자 선택이론이 등장한다. 유전자 선택이론이란 생물로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설명한다. 새로운 암컷을 보고 수컷이 자극받는 현상을 쿨리지 효과라 부른다. 수컷이 성행위를 시들해 하거나, 그만 두는 까닭은 결코 피곤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암컷이 없어서 더 이상 자극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쿨리지 효과는 포유류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동물로서 인간은 본능에 따른 삶과 함께 본능을 억제하는 일부일처제에 따른 삶이 모순과 갈등으로 점철된다. 사랑이 본디 쉽게 이루어지는 그런 것이라면, 지금 사랑은 언제라도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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