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 물음이 답이다.(최용철)

노동은 신성한가?

'노동만큼 신성한 것은 없다'는 믿음은 너무 뿌리깊다. 게으름이 마치 이 세상 온갖 해악을 낳은 씨앗 인듯하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열심히 일해야 한다. 이 세상에 해악을 끼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일해야 한다.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  이 세상은 열심히 일해야 하는 곳일 따름이다. 도대체 어느 누구가 시켜서 하는 일을 기꺼이 즐겁게 한다는 말인가?  타인에게 즐겁게 만들 수는 있지만, 누군가의 시킴을 받은 일이 기꺼이 즐거울 수 없다. 그럼에도 언젠가부터 일을 해야 하는 하층민과 이 일을 시키는 상층민이 생겨났다.  토지소유자들은 토지를 소유했기에 일하지 않고, 잘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귀족이 누리는 특권을 지닌다. 일을 하지 않아도 잘먹고 잘 살 수 있다는게 귀족이 누리는 특권이다. 귀족이란 토지를 소유한 특권층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다. 문명이 시작된 이래 오늘날까지 귀족은 거의 같은 능력을 지니며 살아왔다. 가족 모두가 힘을 합해 일을 해도 결코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얼마든지 나눠 쓸 정도로 물자를 생산해내지 못한다. 그러다 기근이 닥치며 굶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노동의 결실을 억지로 빼앗는 계층이 언제나 있어 왔다.

 

일찍부터 종교를 내세운 사제집단들이 노동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노동을 시키려면 우선 강제력을 동원해야 한다. 강제력을 동원한 노동 결과와 자발성에 따른 노동 결과는 사뭇 달랐다. 필요한 건 자발성에 따른 노동이다.  그러려면 노동이 미덕이라고 가르쳐야 했다.  노동이 미덕이라는 윤리를 내세워 노동자들을 교욱하기 시작했다. 말이 교욱이지 세뇌였다.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이 농부가 따라야 하는 본분이라는 윤리를 만들었다. 의무란 개념은 역사상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자기이익이 아니라, 주인이익을 위해 살도록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권력을 가진 이들은 자기이익과 인류전체 이익은 동일하다고 억지로 믿음으로써, 자기 스스로 이 사실을 은폐한다. 오늘날 노동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 모두에게 여가는 필요하다. 예전에 귀족이 여가를 누리려면 노동을 착취해야 했다. 노동을 착취하려면 여가를 금기시 해야 했다. 여가를 금기시함로써, 여가를 즐기지 않고서 오로지 노동만을 하도록 만들수 있기 때문이다. 여가란 게으름이기도 하다. 사람에게 이 게으름이 노동보다 훨씬 가치를 지닌다.

 

사람은 온갖 편견과 선입견에 휩싸여 살아간다. 편견과 선입관이란 다름 아닌 착각이다. 착각은 잘못된 지식이며, 잘못된 지식은 잘못된 믿음이다. 잘못된 믿음이 판치는 세상이 이른바 타이타닉 현실이다. 지금 막 침몰하려는 타이타닉 위기상황을 외면한 채, 여전히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는게 이른바 타아타닉 현실이다. 타이타닉에 탑승한 승객이 자기일을 하는 동안 승무원들도 자기 맡은 일에 열심이다. 타이타닉 현실에서 개인 권리를 국가보다 앞세우는 일은 몰상식에 속한다. 국가가 행하는 공권력은 언제나 개인권리를 능가한다. 마침내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짓밟는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경제발전’ 만큼 20세기에 들어서 뿌리깊게 자리잡은 이데올로기는 없다. 경제발전은 1949년 2월 20일 트루만 취임 연설에서 처음 등장한 이데올로기였다. 트루먼은 미개발 국가에 대해서 경제와 기술원조를 통해 발전시키는 정책을 내놓았다. 발전시키는 나라가 있으면 발전 당하는 나라가 있어야 한다. 발전은 자동사이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된다든지,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된다든지, 주로 생물의 성장과정을 가리키는 말이 '발전하다' 였다.  ‘발전시키는' 정책은 '발전시키다' 라는 타동사로 바뀐다. 발전시키는 나라와 발전시킴을 당하는 나라가 서로 다른 만큼 차별이 있다. 경제발전은 다른 나라를 차별하여 착취하려는 이데올로기이다.

 

아마존 정글에서 살아가는 원시인, 북미 인디언, 유서깊은 문화를 가지고 있는 이집트, 중국 등 유럽과 미국 밖의 모든 나라를 미개발국가라 부른다. 유럽과 미국문화가 기독교에 바탕을 두었기에 그밖의 문화는 이교도 문화로 나뉘었다. 미개발은 반문명, 야만, 이교도로 타민족과 타문화를 비하하려는 이데올로기였다. 미개발 국가를 발전시키려면 노동이 절실히 필요했다. 미개발지역의 사람들은 이제까지 삶을 몽땅 부질없다고 여기면서 새로운 삶을 모색했다. 그들은 미국인과 유럽인의 생활방식을 흉내내고, 그들과 같은 종교를 믿으며,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배우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야만과 반문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문명과 경제발전을 위하여. 경제발전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었다. 경제발전을 누리는 가운데 돈이 필요한 사람은 자꾸 많아져 가고, 부자는 점차 돈이 없는 사람들을 지배해가는 사회가 형성되지 않을 수 없다.

 

 세계화의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운동 경기, 문화, 예술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분야에 이르기 까지 모든 영역에 나타난다. 한때 근대화로 불리던 것이 오늘날 세계화로 바뀌었다.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고유문화를 상실하고야 말았다.  세계를 통해 모두 같은 문화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한 시장이 되었다세계화 중심에는 국제금융시장을 마구 휘젓는 폭력배들이 있다. 그들은 어떤 화폐가치를 떨어뜨리거나, 특정 주가가치를 폭등시켜 막대한 이익을 은밀히 챙긴다. 지구촌을 농락하고 있는 것은 다국적 은행, 보험회사, 그리고 투자기금 회사들과 같은 돈기계들이다.

 

'철학, 물음이 답이다.(최용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0) 2013.11.29
언어와 삶  (0) 2013.11.27
인간은 왜 세상을 바꾸지 않는가?  (0) 2013.11.21
인간은 누구인가?  (0) 2013.11.20
이성  (0) 2013.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