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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물음이 답이다.(최용철)

언어와 삶

부부가 되려면 결혼을 해야 한다. 결혼을 하려면 결혼식을 해야 한다. 결혼식에서 주례가 말한다. 오늘부터 두사람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남녀를 부부로 맺어준 것은 단 몇마디의 말이다. 명명식이나 결혼식에서 나온 말들이 올바름과 거짓을 따지는 말들이 아니다. 오스틴은 이 말들을 행위와 함께 발화된다는 점에서 '수행문'이라고 부른다. 말을 사용하여 어떤 행위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수행문이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려면,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어떤 특정한 배의 명명식에서 그 배는 이름이 없어야 하고, 명명하는 사람은 명명할 자격을 지녀야 한다. 그리고 와인을 터뜨리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언어는 마치 삶을 담는 그릇과도 같다. 그런만큼 언어를 잘못 사용하는 것은 중대한 잘못이다. 언어를 잘못 사용할때 삶은 엉키기도 하고, 뒤틀리기도 한다. 라일은 잘못된 언어사용을 ‘범주오류’ 라고 부른다.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과 그 일이 발생할 확률은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가능성과 확률을 같은 범주에 속하는 용어처럼 사용하는 것은 범주오류이다. 라일은 범주오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옥스퍼드 대학교나 케임브리지 대학을 방문하는 사람은 수 많은 대학 건물, 도서관, 운동장, 박물관, 학과와 교무과 사무실을 본다. 그리고 그는 '그렇지만 대학이란게 도대체 어디 있느냐? 나는 지금까지 대학생, 교수, 사무실 등을 보았지만, 이들이 머물고 활동하는 대학을 본적이 없다.'말한다. 대학이란 그가 보았던 모든 것들이 조직, 구성되는 방식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 건물, 연구실, 사무실, 학생, 교수 등을 보고나서 이것들 상호관계를 이해하면 대학을 이해하기에 이른다.”

 

난생 처음 야구경기를 관전한 사람이라면 투수, 야수, 타자, 심판, 기록원 등이 맡고 있는 역할을 알아가게 된다. 그럼에도 그 사람이 '하지만 시합에서 단결심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누가 던지고, 치고, 수비하는지 알 수는 있지만, 단결심을 발휘하게 하는 것은 누구인지 모르겠다.' 라며 투덜거릴 수 있다. 단결심이란 투구, 타격, 수비와 같이 야구에서 어떤 역할이 아니다. 단결심은 각자 맡은 위치에서 선수들이 열심히 할 때 생겨난다. 범주오류를 범하는 이런 사례들은 대학, 단결심 등의 개념이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르고 있다. 그들의 혼돈은 이런 개념들을 사용하는 능력부족에서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