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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셸리 키건, 박

죽음을 마주하고 산다는 것(2)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비춰볼 때,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답은 조심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조심스럽게 살아가야한다. 조심하지 않으면 예기치 못한 사고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우리 모두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 인생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위험을 상기시켜 준다. 자칫하다가 인생 전체를 완전히 망쳐버릴수 있는 위험이 있다. 우리는 신중하게 살아가야 한다.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만회할 수 있는 실수에는 두가지가 있다. 한편으로는 목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잘못을 범한 경우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올바른 목표를 선택했지만, 달성하지 못한 경우이다. 목표 선택에 신중해야하고, 목표달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신이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삶을 원하는가? 맛있는 음식과 술, 그리고 순간의 쾌락으로 가득한 삶인가, 아니면 의미있는 성취로 이뤄진 삶인가?' 그러나 문제는 현실 속에서 진정한 성취를 추구하는 가치 있는 삶은 실패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문학 작품을 쓰고 싶지만 완성못하고 포기하고 만다. 또 회사를 세우고 오랫동안 열정을 바쳤지만, 회사는 결국 파국하고 만다. 이게 뭔가? 올바른 전략은 무엇인가?  인생을 보다 가치있는 삶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어느 정도 중대한 성취를 추구해야 한다. 인생에서자신이 뭔가를 얻았다는 확실한 성취감을 위해 일상적인 목표들도 적절한 비율로 추구해야 한다.

 

삶속에 많은 것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 타당한지 따져 보자. 거대한 선을 추구하는 삶, 사소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 무엇이든 더 많을 것을 채워 넣을수록 인생의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은 과연 진실일까?  우리는 삶의 가치가 동일한 삶의 가치가 50년이 아니라, 100년 동안 이어지는 삶을 원한다. 다른 모든 조건들이 동일하다면 수명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가치있는 삶이다. 수명과 행복을 곱한 점수는 삶의 내용물에 대한 가치만을 의미한다. 하지만 살아있는 것 자체에 고유한 가치가 있다. 삶의 가치가 행복과 수명으로 이루어진 함수라면 두가지를 놓고 선택해야 한다. 흔히 이야기 하는 굵고 짧은 삶, 가늘고 긴 삶. 삶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단지 그 속에 얼마나 많은 것을 집어 넣었는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삶에서 이룩한 성취가 얼마나 높은 곳에 이르렀는지 확인해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양보다 질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인생을 어떻게 살지 생각할 때, 삶에서 어떤 것들이 가치있는 일인지 묻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양과 질의 문제를 따져봐야 한다.  삶의 양이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질은 그 자체로 추구 할만한 중요한 가치인가?  질이 중요한 요소라면 양 또한 그러한가? 자손을 낳지 않는다고 해도 몸을 이루는 원자들은 자연에 의해 계속 순환할 것이다. 결국 내 몸은 자연으로 흡수되어 돌아간다. 그렇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쇼펜하우어는 이런 믿음이 죽음의 아픔을 덜어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여러분이 먼지를 알아보겠는가?  그게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알수 있겠는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하기전에 먼저 그 먼지를 들여다보자. 지금은 먼지와 재로 존재하지만 물에 녹아 수정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식물이나 동물 형태로 태어날 것이다.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나 좁아터진 마음으로 걱정하고, 괴로워 할 수 밖에 없는 죽음을 맞이 할 것이다. ’

 

자식을 낳아 즐거움과 위안을 주는 요소는 여러분의 몸을 이루는 부분들이 자손을 통해 지속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를 길러내는 것이 인생을 바칠만큼 중요하고 고귀한 성취라는 믿음이다. 불교에는 사성제[四聖諦]라는 가르침이 있다. 그 중 첫 번째 진리는 삶은 고통이라는 것이다. 우리 삶을 떠받치는 본질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할 때, 세상 모든 곳에 고통과 아픔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가 갈망하는 것도 있으며, 운이 좋다면 그것들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잃어버릴 때 고통과 괴로움이 따른다. 이런 진실에 직면해 불교는 상실의 고통을 최소화 하기 위해 삶의 모든 좋은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강조한다. 뭔가를 상실할 수 밖에 없는 '나'라는 존재로부터 벗어나라는 것이다. 자아 관점에서 죽음은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자아가 없다면 두려울 것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 삶을 가장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인가?

 

사성제의 첫째는 태어나는 것, 늙는 것, 병드는 것, 죽는 것, 싫어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 등을 포함하여, 존재한다는 것은 괴로움(dukkha)이라는 고성제(苦聖諦)이다. 둘째는 ' 괴로움에는 원인(samudaya)이 있다'는 것으로, 즐거움을 탐하고 추구하는 갈애(渴愛), 살아남으려고 하는 갈애, 삶에서 떠나고자 하는 갈애 등이 바로 그 원인이라고 하는 집성제(集聖諦)이다. 셋째는 괴로움은 완전히 멸할 수 있으며 괴로움을 없앤 상태가 해탈이라고 하는 멸성제(滅聖諦)이다. 넷째는 괴로움을 멸하기 위한 8가지의 바른 수행방법, 즉 8정도가 있다는 멸도성제(滅道聖諦)이다.

 

이 4가지 진리는 불교의 여러 교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괴로움의 원인은 12가지 상호의존적인 단계(十二緣起 paîṭcca-samuppāda)로 설명하는 경우도 많다. 무지[無明], 잠재적 형성력[行], 식별작용[識], 명칭과 형태[名色], 눈· 귀· 코· 혀· 몸· 마음 등의 6가지 감각기관[六處], 접촉[觸], 느끼어 받아들이는 작용[受], 갈애[愛], 집착[取], 생존[有], 태어나는 것[生], 늙고 죽는 것[老死] 등의 그 12가지 요소는 무한하게 반복 순환한다. 이 순환 과정을 끊는 사람은 윤회로 부터 해탈하여 괴로움이 그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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