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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셸리 키건, 박

삶의 가치

 삶에서 계속 좋은 것을 얻고 있다면, 죽음이 그런 축복을 모두 앗아가기 때문에 죽음은 나쁜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전체적인 차원에서 삶이 좋은 것들을 전혀 제공해 주지 않는다면, 그때는 죽음이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것이라 하겠다. 삶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고 있는가? 아니면 나쁜 것을 주고 있는가? 계속해서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삶인가, 아니면 삶을 지속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가? 어떤 요소들이 좋은 삶, 나쁜 삶을 이루고 있다고 흑백논리로 이야기 할 수는 없다. 즉 절대적인 차원에서 삶이 좋은 것,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상대적인 차원에서 좋은 삶, 나쁜 삶이 있을 뿐이다과연 무엇이 삶에서 얻어야 할 가치있는 것들인가? 좋은 직업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즐거움, 섹스, 초코렛 ..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반면 피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질병, 강도를 당하는 것, 고통, 해고, 전쟁, 시력을 잃는 것 등이 그럴 것이다. 우리는 가치있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 가치있는 것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 때문에, 가치있는 것, 그리고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 즐거움은 왜 가치 있는 것일까? 즐거움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철학자들은 수단으로서 가치를 '도구적 가치'라고 하고, 목적으로서 가치를 '본질적 가치'라고 부른다. 나쁜 것들 대부분은 도구적 차원에서 나쁜 것이다. 가령 질병은 왜 나쁜가? 병에 걸리면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것과 행복의 본질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우리는 도구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것 자체로 가져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 어떤 것들이 그것 자체로 가져야할 가치가 있을까? 쾌락이다. 피해야 할 것은 고통이라 할 수 있다. 쾌락은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고, 고통은 본질적으로 나쁜 것이다. 뜨거운 난로에 앉으면 화상을 입는다. 그래서 나는 화상을 입지 않기 위해서 난로를 조심한다. 고통은 본질적으로 나쁜 것이지만, 동시에 도구적인 의미도 있다.  여기서 화상을 입지 않도록 주의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그러므로 본질적인 가치와 도구적인 가치 중 하나만을 가져야되는 것은 아니지만, 행복의 본질을 추구한다는 관점에서 본질적인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

 

도구적 차원에서 좋고, 나쁜 것들은 그것들을 통해 얻을수 있는 본질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 때문에 그런 가치가 있다. 쾌락은 본질적으로 좋은 유일한 요소이고, 고통은 본질적으로 나쁜 유일한 요소라고 하는 이런 관점을 '쾌락주의'라고 한다. 삶이 전체적으로 가질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미래의 좋은 것들을 모두 더하고, 나쁜 것들 모두 빼서 그 최종 합계가 어떻게 나오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 합이 플러스가 나오면, 그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  내 삶은 얼마나 행복했는가? 의사가 아니라,  변호사가 되었더라면 얼마나 더 행복했을까?  예술가가 되었다면 삶의 총합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철학자 대신 농부가 되었다면, 총합이 어떻게 달라졌을지에 대해 나는 아무런 근거를 내놓을 수는 없다. 쾌락주의 관점에서 얼마나 많은 쾌락을 경험했는지, 또는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겪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의미있는 것은 오직 미래이다.

 

인생 전체 뿐아니라 삶의 특정 기간에 대해서도 평가작업을 할 수 있다. 쾌락주의의 오류는 쾌락과 고통이 본질적으로 좋거나, 나쁜 유일한 요소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나는 단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은 회피하는 삶보다 고차원적인 삶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예술작품을 감상하거나, 멋진 석양을 바라보거나,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거나, 획기적인 발견을 했을 때 우리는 쾌락을 경험한다. 영화 속에서 처럼 '나는 ....원한다'고 말하면, 그것과 똑같은 경험을 내면적으로 경험한다고 하는 장치가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경험기계에 연결되어 있다면, 그래서 최고의 경험을 누리고 있다면, 경험기계 속에서 삶이 지금보다 더 나을 것인가? 가슴 아픈 일이지만, 나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경험기계 속의 삶이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다. 경험기계속에서 여러분은 삶이 가져다주는 어떤 가치 있는 것들을 얻을 수 있을까?

 

경험기계속의 삶으로부터 가치있는 것을 얻을 수 없다고 한다면, 내면적 경험을 추구하는 삶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 삶에서 실질적인 경험은 없고 생각만 있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닫고, 물리법칙을 이해하는 일은 1984년 방콕의 평균 강수량을 아는 것과는 다르다. 강수량이 여러분의 삶을 가치있는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소한 지식과 진정으로 가치있는 지식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우정이나 사랑처럼 가치있는 인간관계와 별로 중요하지 않는 관계를 구분기준이 필요하듯이. 최고의 삶을 위해서는 내적경험 뿐만아니라 외적경험도 필요하다많은 사람들이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일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불치병에 걸려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경우, 병상에 누운채 아무런 일도 할수 없다. 그사람의 인생이 전체적으로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결코 그렇지 못할 것이다.

 

삶이 얼마나 가치있는가는 소위 삶의 내용물을 모두 더한 합계에 달려있다. 여러분이 인생에서 경험하는 쾌락과 고통, 성취와 실패 등을 모두 더해서 그 합계를 구한다. 즉 인생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여러분의 인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삶 그자체는 좋은 것과 나쁜 것들을 채워넣을 수 있는 그릇같은 것이다. 삶은 단지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즉 인간적인 삶, 하나의 인간으로 누리는 삶을 말한다. 삶의 내용물만을 더하고 빼는 것으로 삶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다. 내게 주어진 앞으로의 기간을 채우게 될 내용물이 긍정적인 가치가 있다면 1개월, 1년, 10년을 살지 못하고 지금 죽는다는 사실은 내게 나쁜 일이다. 아무런 가치가 없다면, 지금 죽는 편이 내게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이 항상 너무 빨리 찾아온다고 생각할거라고 믿는다. 모든 사람에게는 아닐 것이다. 어떤 일들은 불구가 되어 움직일 수 없고, 희망없이 고통으로 사는 삶을 버티어 내어야 한다. 그들에게 삶은 하나도 좋을 게 없다. 이런 사람에게 죽음은 너무나 늦게 찾아오는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