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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셸리 키건, 박

자살에 관하여(2)

자살의 합리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장담할수 없기 때문에 자살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살의 결심 같은 것은 일종의 도박과 같다. 인간의 도박의 세계에서 벗어날수 없다. 우리는 불확실 상황에서도 어떻게 하든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는 현실 속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반적인 원칙과 위배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가치있는 삶을 회복할 가능성을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고통스런 삶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 역시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다. 자살은 가치있는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을 날려버리는 것이다. 가치 없는 삶을 살아아야 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이라면, 자살은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당연히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동시에 회복할 가능성 그리고 자살하지 않았을 때 겪어야 할 고통에 대해 현실적인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누구나 진진하게 자살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때, 그사람이 정말로 자신의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떤 사람의 삶이 극단적으로 나쁜 상황에 있고,  그 상황이 극적으로 호전 될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해보자. 그는 죽는게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기서 그 사람이 자신이 처한 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자살을 합리적인 선택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현실적인 차원에서 그 사람이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신뢰할 만한 판단을 내릴수 있을까? 여러분은 나름대로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면서 자살이라는 주제에 대해 진지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고민하고 있다.  그러한 현실적인 의미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인생이 너무 힘들어서 죽는게 더 낫고 그래서 자살이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일까?

 

신의 의지에 의존하는 초기 개념들 -신이 존재하며, 우리에게는 신의 의지에 따라야 하는 도덕적 의무가 있다-을 공유하는 일부 주장들은, 신이 자신의 의지를 책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는 가정을 거대한 토대로 삼고 있다. 그 책이 성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믿고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인간들은 지침의 내용들 중 일부는 골라내고, 나머지는 버렸다. 돼지고기를 먹지말라, 불효자식은 돌을 던져 죽여야 한다 등 ... 이는 자신이 이미 받아들인 도덕적 믿음들을 기준으로 지침서의 다양한 사항들을 선별하고, 그것을 정말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할 뿐이다. 이는 자살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에 기반을 둔 주장들을 실제로는 활용하지 않는다는 이다. 한 개인의 자살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영향을 미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가족과 친구들, 즉 당사자들을 잘알고 있고,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이 될 것이다. 어떤 행동이 오직 좋은 결과 또는 나쁜 결과만 낳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하는 행동들은 부분적으로는 좋고, 부분적으로는 나쁜 혼합된 결과로 이어 진다. 이런 차원에서 자살이 당사자의 가족과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해도 당사자의 삶에서 죽는 편이 더 낫다면, 자살로 인해 나타나는 좋은 점이 나쁜 점을 능가할 수 있다. 자살을 통해 당사자가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와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또한 전체적인 차원에서 안도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어떤행동을 올바른 것 또는 잘못된 것으로 만드는지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결과가 도덕적으로 중요한 유일한 요소라고 생각해 보자.  도덕성과 관련해 결과만이 유일하게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이론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공리주의를 꼽을수 있다. 자살은 다른사람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한사람의 자살이 주변사람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너무 심각해 당사자가 받았던 고통의 수준을 능가할 수 있다. 어린자녀를 키우고 있을 경우, 여러분에게는 자녀를 돌봐야 할 도덕적인 의무가 주어져 있다. 갑자기 여러분이 세상을 떠나다면, 아이들은 끔찍한 고통을 겪으면서 성장해야 할 것이다.

 

의무론자들은 결과외에도 도덕적으로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고 말한다. 행동의 선악을 판단하기 위해 당연히 결과에 주목해야 하지만, 우리는 그 밖의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어떤 요소들이 있을까? 의무론자마다 답은 다르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결과와 더불어 어떻게 그런 결과로 이어졌는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의무론자들은 대부분 그런 결과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은 아닌지 주의해야 한다. 결과가 아무리 좋았다고 해도 아무 잘못 없는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자신을 대할때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대할때만 도덕성이 의미있다고 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는 도덕성 범주 밖에 있다. 여러분은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물질로 대해서는 안되고, 아무리 숭고한 목표라고해도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치부 되어서 안된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자살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동의를 기반으로 자살한다. 이 주장 역시 도덕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누구를 때리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권투시합은 다르다. 왜그런가? 나를 때려도 좋다고, 서로 동의했기때문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동을 도덕적으로 받아들을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근거가 동의다. 동의라는 개념 속에 도덕적인 의미는 없다. 자신이 몸을 던져 수류탄을 막았을 경우, 그의 몸은 산산조각 나겠지만 전우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전우를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희생한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도덕적으로 존경받을만 하다. 왜 우리는 그를 존경하는가? 자신이 죽고 다른 사람들이 살았다고 하더라도 도덕적으로 받아들일수 없는 행동이다. 다른사람의 등을 떠민게 아니라,  자신이 몸을 수류탄 위로 날린 것이 도덕적으로 적절한 행동이었다고 말할 수 없을까? 자신이 동의했기 때문에 비도덕적이라 말할수 없다고 설명할 수 있다. 동의가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을바꾸어 놓은 셈이다. 반드시 자유로운 상태에서 동의해야 한다. 행동의 결과가 어떻게 이어질지 또는 자신에게 어떤일이 일어날지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동의해야 한다. 그리고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자살은 항상은 아니지만 때로는 도덕적으로 적절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누군가 자살을 생각하고 있을 때,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까? 그 사람이 명료하게 생각하고, 완벽한 판단 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자살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고통과 스트레스 속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자살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심사숙고 했고, 타당한 이유를 갖고 있고, 충분한 조언을 받아 자발적으로 행동했다면, 우리는 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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