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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진화의 오디세이 (김용환)

직립원인의 아프리카 탈출과 문화적 적응

직립원인, 즉 호모에렉투스의 발견은 네덜란드 의사 뒤부아의 끈질긴 집념의 결실이었다. 1891년 인도네시아 자바의 중부 솔로강 유역의 트리닐에서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 일명, 자바원인을 발견했다. 20세기 초엽에 베이징 저우커우덴 동굴에서 45점의 두개골이 발견되었고, 시난트로푸스 페키넨시스, 일명 베이징 원인으로 명명되었다.  피테칸트로푸스란 문자 그대로 원인, 즉 원숭이 인간이란 의미이지만, 자바 원인과 베이징 원인은 모두 나중에 재분류되어 호모의 분류학적 지위를 취득했고, 직립원인으로 개명되었다. 아프리카의 올두바이협곡에서 나타난 직립원인은 약 1.2-1mb.P의 지층에서 발견되었다. 자바와 베이징의 직립원인은 대체로 90만-60만년전과 50만-35만년전 것으로 각기 연대 측정되었다. 이처럼 플라이스토세 지층에서 발견된 직립원인들의 연대와 지리적 분포는 플라이오세의 호미니드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호모 하빌리스가 아프리카에만 나타났다는 사실에 비추어 매우 의미심장한 변화를 내포한다. 즉 플라이오세호모로 부터 진화한 직립원인이 상당기간 아프리카에서 머물다가 언제부터인가 아프리카 밖으로 나와 구대룩 전반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로렌츠는 아프리카 탈출이 생태계가 심하게 교란된 100만~ 70만년전에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약 5~1mB.P사이에 지구상의 기후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90만년 전부터 심해졌고, 지구의 자기가 전도되던 70만년전 이후에는 빙하기과 간빙기가 서로 교차하면서, 아프리카 열대림 생태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사바나지대는 극상의 빙하기에 현재 열대우림으로 덮힌 중앙아프리카까지 펼쳐졌고, 간빙기 때는 북으로 확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지역들은 사바나, 열대림, 혹은 사막으로 반복해서 변했다로버츠에 따르면, 사하라 지역은 현재 사막으로 남아있지만, 그 당시에는 비교적 습한 사바나 생태계가 조성 되면서 남부의 초식동물들은 끌어들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건기가 찾아오고 사막으로 변하면서, 초식동물의 일부는 남하했지만, 다른 일부는 사하라 지역을 넘어서 지중해 연안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이들의 이동경로를 따라서 함께 이주할 수 밖에 없는 동물이 있었는데, 그들은 초식동물을 먹이로 하는 육식동물이었다. 그래서 70만년전의 지층을 비교하면,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에 동물의 교환이 대규모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때까지 주로 아프리카에서만 나타나던 하마나 코끼리같은 초식동물과 사자, 표범, 하이에나 같은 육식동물이 유럽에서도 대량 발견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인류의 조상도 이러한 육식동물과 함께 북으로 이동하면서 아프리카지역을 벗어난 듯하다.

 

직립원인은 구대륙 전반에 걸쳐 확산될 수 있었다. 그런데 직립원인이 발견된 베이징 같은 곳은 북위 40도에 위치하고 있다. 그곳은 사계절 특히 겨울이 존재하는 온대지대로 열대지방에 국한해서 살던 호미니드가 범접할 수 없던 곳이다. 베이징 원인이 발견된 곳은 동굴이었고, 처음으로 불을 이용한 흔적을 보여주기도 했다. 불이란 난방의 용도외에 육식동물을 쫓거나 음식을 조리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직립원인들을 석기들을 활용하고, 또 불의 위력을 빌려 온대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여기에는 직립원인 집단의 내적인 협동과 비록 저급한 수준일지라도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뒷받침 되었을 듯하다. 사실상 온대지역의 겨울을 나기 위해서 인간은 음식 에너지의 80%를 체온유지에 소모한다. 이전의 호미니드에 비해 신체가 월등히 커진 직립원인은 더욱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이런 에너지를 얻기 위해 지속적으로 이동하면서 넓은 지역에서 식량자원을 획득할 수 있었을 듯하다. 그러나 베이징 원인처럼 북으로 올라간 직립원인의 경우 5개월 이상 식물성 식량자원에 의존하기는 어려웠다. 다양한 방식으로 식량을 저장할 수도 있었겠지만, 대체로 그것을 직립원인에게 기대하기는 무리인듯하다. 결국 남은 길을 먹이사슬에서 보다 높은 단계로 얼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자연적으로 저장된 높은 칼로리의 초식동물의 육류는 온대지역의 수렵채집자에게 보다 효과적인 식량자원이 될 수 있었다.

 

동아프리카의 케냐 나이로비 인근지역에서 48만년전 지층에서 주먹도끼와 자르개를 비롯한 석기들이 하마처럼 몸집이 큰 포유류의 뼈와 함께 발굴되었다. 중국 자우커우덴 동굴에서도 약 40만년-30만년전의 것으로 추정 되는 엄청난 양의 유골로 유물이 나왔다. 대략 40명 이상의 직립원인의 유골, 수많은 동물의 뼈, 10만여점의 석기, 그리고 두툼한 층의 재 등이 50m깊이의 지층에서 나온 목록이다. 직립원인의 아프리카 탈출과 온대지역 진출은 더 강력한 도구를 비롯해서 여러가지 문화적 적응능력이 수반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인류사의 전환적인 사건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초기 호미니드는 대체로 주어진 생체능력을 바탕으로 환경에 순응하면서 살았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종 집단내 변이는 도태되었고, 그렇지 않은 변이는 생존할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후천적으로 새로운 행동양식을 습득하고, 학습할수 있는 문화적 능력이 유전적 변화로 인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 능력은 저급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 능력은 점차 커지고, 종 집단내 보편적으로 확산되면서 환경이그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을 뚜렷하게 제고시켰다.  인류의 진화에서 문화적 진화가 생체적 진화를 압도하는 시점은 앞으로 살펴보게 될 현생인류의 진화와 그들이 이룩한 문화적 도약, 즉 후기 구석기 문화와 시기적으로 일치하는 듯하다.

 

호미니드는 새로운 환경적 지식과 기술을 축적하고, 문화적으로 계승하면서 환경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하여 종전에는 환경을 순응의 대상으로 여겼던 호미니드는, 이제 환경을 극복의 대상으로 심지어는 정복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호미니드의 환경적응력을 지배하기 시작한 문화적 지식은 문화의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증대했다. 그와 함께 생체적 진화가 인류의 진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급속도로 감소했다그 과정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식량생산의 기술과 의학의 발달일 것이다. 그렇다고 생체적 진화과정이 인류의 삶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인류는 어떻게 하든 유전자의 재결합이나 돌연변이를 통해 새로운 유전적 변이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러한 변이중 어떤 것들은 계속헤서 도태 되거나 선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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