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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진화의 오디세이 (김용환)

농경과 목축의 출현: 비옥한 초승달

새로운 지질시대 즉, 홀로세(충적세)가 시작된 시점을 기원전 약 8000년으로 보는 것은 마지막 빙하가 북으로 물러간 것을 기준으로 한데서 비롯된다. 이런 관점에서 빙하가 물러간 이후의 시기를 후빙기라고 부른다. 대규모 기후 변화는 이미 기원전 1만3000년에 시작 되었으며, 지구상에는 기원전 6000년에야 비로소 지금과 같은 기후대가 안정적으로 확립될 수 있었다.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를 구분한 러벅은 또한 두 시대를 개념적으로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첫째 신석기 시대는 현존하는 동식물과 동시대적이지만 구석기 시대는 부분적으로 멸종한 동식물과 시기적으로 겹친다. 둘째 구석기 시대의 인류는 생계를 전적으로 수렵 채집에 의존했지만, 신석기 시대의 인류는 적어도 부분적으로 농경 혹은 사육을 시작했다. 셋째 구석기인류는 타제석기를 제작 했을 이지만 신석기 인류는 마제, 즉 연마한 석기와 더불어 토기를 제작했다.

 

신석기 문화로 대표되는 농경의 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때까지 수천년 동안 벌어진 발달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후빙기의 다양한 식량자원 기반에 준해서 중석기 시대의 삶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툰드라 서식처가 줄어들면서, 빙하동물이 북으로 이동함에 따라 인류의 집단이동이 있었을 것이다. 후빙기의 환경변화중 최대 특징은 온대 지역의 확장에 있었다. 온대지역 주민들은 공간적으로 그리고 계절적으로 변화하는 식량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그들의 생계를 적절히 조직해야 했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에서 어떤 종류의 자원이 어느 시기에 가용적인가를 미리 파악하고, 이에 맞추어 생계 스케쥴을 짜면서 적합한 도구를 준비하고, 또 적절한 인력을 할당해야 했다. 인류사를 돌아보건대 농경과 목축이 나타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며, 그때까지 유구한 세월을 인류의 생계를 뒷받침한 것은 수렵채집 방식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수렵채집 경제는 엄청난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았을 만큼 유연한 적응방식이었고, 심지어 새로운 환경에 진출할 때도 인류의 삶을 뒷받침 했던 방식이다. 중석기 시대의 인류도 후빙기에 들어서 다양해진 식량자원을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서, 기존의 수렵채집 방식을 국지 환경에 맞추어 다양화, 전문화, 집중화 했을 뿐이다.

 

농경의 발달과 함께 인류의 주식으로 자리 잡은 식량은 여섯종류에 불과하다. 그것은 밀, 보리, 기장, 쌀, 옥수수, 그리고 감자이다. 인류의 식량자원에서 양, 염소, 소, 돼지 등 가축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인류의 주식으로 자리 잡게된 재배종이 인류의 에너지 공급의 근간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특히 농경 문화가 인류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바는 매우 지대하다. 농경이란 동식물의 환경을 인위적으로 변형시켜 생산성이나 유용성을 높이는 인간의 행위를 뜻한다. 농경이 반드시 재배종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농경은 식량의 공급과 수확량 측면에서 안전성과 신뢰성을 제고했기 때문에, 정착생활은 농경의 결과로 인해 확산되었다고 수 있다. 그렇지만 넓은 의미의 농경이란 개념에 비추어 볼 때, 수렵채집자들이 농경에 종사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다.

 

서남아시아는 야생밀과 보리뿐 아니라 야생양, 염소, 소, 그리고 돼지의 원산지였다. 이 지역은 수백만년전 지각운동으로 인해 아라비아 반도가 북으로 이동함에 따라, 반도 북쪽이 융기되어 마치 아코디언 향태로 고산지대가 형성 되었던 곳이다. 고산지대는 산림으로 우거졌지만, 플라이토세 말기 빙하의 영향으로 부분적으로 건조한 스텝이 조성 되었다. 더욱이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고산지대에는 겨울철 강수량이 풍부해서 야생 초본과 곡류가 번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지대에는 강이나 호수가 형성되어 물새나 어족이 풍부했다. 더욱이 후빙기에 들어 온도와 습도가 올라가면서 고산지대에 국한되었던 곡류의 분포가 보다 낮은 지대로 확산 되었다. 바로 이 지역에서 나중에 재배종이 출현하고, 또 최초로 신석기 농경촌락이 형성되기 때문에 로버트 브레이우드는 이 지역의 지리적 향상을 빗대어 비옥한 초승달이라고 불렀다. 당시 주민들은 생계경제의 패턴을 점차 곡류의 집중 채집으로 변환했고, 이미 식량자원의 습성이나 생활사를 익히 알고 있던 그들은 농경과 재배종화의 길로 쉽게 들어섰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