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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진화의 오디세이 (김용환)

맺음말: 고인류학과 인류의 미래

인류의 기원을 탐구하는 작업은 인간과 그 존재에 대한 의문에 부분적이나마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런 희망을 갖고 우리는 지금까지 500만 년 넘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인류의 뿌리를 찾아 나섰다. 인류가 출현하기까지 지구상에서 펼쳐진 진화의 오디세이는 실로 파란만장 했다. 우리는 생물체의 진화과정에서 인류가 왜 출현하게 되었는지, 혹은 왜 출현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내기 어려웠다.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체의 진화 기제를 어느 정도 밝혀주었지만, 인류가 구체적으로 어떤 요인들에 의해 진화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밝혀내는 작업은 지금까지 살펴본 고인류학의 상과에 비추어 아직도 요원한 일인 것처럼 보인다. 인류의 기원을 입증하는 가장 결정적인 단서는 화석이지만, 아직도 화석의 연대를 측정하는 방식에는 상당한 오차가 있는 실정이다.  또한 발견된 화석의 상태도 신체 골격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아가 발견된 화석의 수량도 매우 미흡해서 화석 종의 집단내 변이를 파악하기란 용이 하지 않다. 장애인이 코끼리를 만지고, 그 모습을 다양하게 그려내는 우화를 상기 시킨다.

 

마틴에 따르면 현존하는 영장류는 대략 200종인 반면, 멸종한 영장류는 6500종에 달한다고 한다. 이중 우리가 발견한 영장류의 화석종은 250종에 불과하고, 그나마 186종만이 55mB.P이후에 나타난 것들이다. 인류의 진화는 기존의 진화기제, 즉 유전자 풀의 구성에 변화를 야기하는 돌연변이, 유전자 재결합을 유도하는 성적 도태, 그리고 이러한 결과, 생겨난 유전적 변이에 작용하는 자연도태와 같은 이질적인 기제들이 상호작용 하면서 여전히 지속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생물체의 진화에 방향성이 없는 만큼 미래에 전개될 인류의 진화를 예측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인류가 진화하고 또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출현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게 생겨난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유전자변이는 기본적으로 미래의 변화한 환경에 인류가 적응하는데 중요한 자산이 된다.

 

인류의 출현과정에서 생체적 진화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었고, 일단 인류가 출현한 이후에는 오히려 문화적 진화의 비중이 급격히 증대 되어왔다.  그 결과 어떤 인종이나 민족집단이든 자연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존해 나가는 문제에 관한 한, 문화적 적응에 보다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인류의 환경적응에서 보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문화적 지식의 비중에 비추어 인종이나 민족이 보유한 유전적 변이의 의미는 그다지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같은 문화적 진화의 결과, 인류에 속하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은 교통과 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단일한 지구촌 공동체를 형성해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호모사피엔스의 종 분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지고 있다. 모든 생물체의 유전적 변이란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생존을 구가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런데 분자생물학의 기술은 이런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고, 심지어 생물 개체의 자연적 운명을 인위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의학의 발달은 환경에 적응할 수 없는 개체 조차 생존가능케 함으로써 다음 세대에 유전자를 퍼뜨릴 수 있게 했다.

 

이는 생물체의 진화를 주도하는 자연도태의 기제가 인공도태에 의해 대체되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경우 현재 인류가 보유한 유전적 변이의 다양성은 급격히 줄어들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유전적 변이의 다양성이 줄어든다는 것은 자연적 진화법칙에 비추어 생물종, 즉 인류의 멸종으로 이어질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모든 생물종 집단은 환경변화에 부단히 적응해감으로써 생존을 지속하고 있는 반면, 인류의 문화적 창조 능력은 이미 환경을 정복하고, 심지어 인공적으로 변형시키는 방향으로 나아 가고 있다. 그러한 인공적 환경도 궁극적으로는 자연환경에 의존하지 않을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인간의 문화적 적응능력에서 비롯된 환경변화는 생물체가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오히려 멸종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