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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두렵지만 꼭 나눠야 할 이야기들

나도 이제 우리도 어려운 대화를 나눌 때가 되었다는걸 깨달았다. 사지마비가 진행되면서 머지 않아 아버지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앗아가려 하고 있었다. 사지마비가 오면 24시간간호, 산소흡입기, 영양공급관이 필요해질 것이다. 아버지는 그걸 원하지 않는 것 같다고 내가 말했다. '절대 안되지, 그냥 죽는게 낫지'.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그날 나는 내 평생 가장 어려운 질문들을 아버지에게 던졌다. 커다란 두려움을 안고 하나하나 물었다. 무엇을 두려워 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분노, 혹은 우울, 아니면 그런 질문을 함으로써 뭔가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눈후 우리는 안도감이 들었고, 뭔가 명확해졌다는걸 느꼈다.

 

오늘날 소득이 증가하면서 개인의 의료서비스 분야가 급격히 성장했으며, 이런 서비스는 보통 현금으로 결제 된다. 어디를 가나 의사들이 너무 쉽게 근거없는 희망을 펼쳐보이며, 환자 가족들로 하여금 은행 잔고를 털고, 씨앗용 작물을 팔고, 아이들 교육비를 털어서 헛된 치료에 쏟아붓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호스피스 프로그램도 세계곳곳에서 점점 나타나고 있다.  한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면 그와 더불어 의학도 세단계를 걸쳐 발전한다. 첫번째 단계는 나라 전체가 극빈한 상태에서 사람들이 집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전문가적인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두번째 단계에서 나라가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국민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재원이 풍부해져 의료서비스가 더 널리 퍼진다.  이제 사람들이 아플 경우 병원을 찾는다. 집보다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경우가 더 많다.  세번째 단계는 나라의 소득 수준이 아주 높은 경우 사람들은 삶의 질을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삶의 질에 대한 고려는 몸이 아플때도 계속 이어진다. 이로 인해 집에서 임종하는 경우가 다시 늘어난다.

 

현재 역사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을 포함해서 전세계적으로 요양원 혹은 양로원에서 시들어가다가 병원에서 죽어가는 길을 대체할 방법이 늘어나고 있고, 그 기회를 붙잡으려는 사람들이 수백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아직은 혼란기다. 우리는 지금 경험하면서 사회적 학습을 하고 있다. 나 역시 의사이자 하나의 인간으로서 그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아버지가 70대 초반까지는 일주일에 테니스를 세번씩 했고, 비뇨기과를 운영했으며, 지역 로타리클럽 회장으로 일했다. 아버지목에서 시작된 통증이 왼팔 아래로 내려갔고 왼손가락까지 저리다는 이야기를 했을때, 우리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후 1-2년 동안 아버지의 몸통증은 점점 더 심해져서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렸다. 2006년 봄 담당의사가 아버지의 목을 MR I촬영을 했고, 그 결과 아버지의 척수안에 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죽음이라는 현실과 대결하는 여정에 접어든 것이다. 부모와 자식으로서 우리가 아버지를 위해 어떤 다른 선택을 하게 될지, 다시 말해 의사로서 내가 환자들을 이끌었던 것과 다른 길을 가게 될지, 같은 길을 가게 될지, 시험대 위에 오른 셈이다.

 

전문의는 모두 수술을 제안했다. 척추를 열고 종양을 가능한 한 많이 제거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병이 상당히 진행 되어서 아버지가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고 느낄때가 적당한 시기라는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스스로 분명하게 한계를 정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 수술을 원할만큼 증상이 심한가? 손의 마비가 더 심해질 때까지 기다리길 원하는가? 아버지로서는 이 모든 정보가 소화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이론적으로는 자신의 생명을 좌우하는 결정을 할 때 사실에 근거한 분석적인 사고를 통해 결론을 도촐해내야 한다. 그러나 그 사실은 불확실성으로 가득차 있었다. 아버지는 이 사람에게 수술을 맡기지 않을 거라는 결정을 내렸다. 클리브랜드 클리닉신경외과 전문의 에즈워드 벤젤 박사도 자신감이 넘쳐보이기는 만찬가지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여러가지 질문을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이해했다. 짜증날 만한 질문들도 성의있게 답변해 주었다. 벤젤박사는 아버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 했고 아버지에게는 그 점이 중요했다. MRI판독 결과는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 MRI사진보다 아버지의 느낌을 척도로 삼기로 결정했다. 향후 몇개월 동안 아버지가 사는데 영향을 줄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와 벤젤 박사는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모두 아버지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때를 기다렸다.

 

의과대학 다닐 때 의학윤리학자 에제키엘 엠마뉴엘과 린다 엠마뉴엘이 쓴 임상의가 되려는 사람들이 환자들과 맺을 수 있는 여러가지 관계에 대한 논문을 읽었다. 그중 가장 오래되고 전통적인 관계는 가부장적 관계이다. 의사는 필요한 지시과 경험을 갖고있는 사람으로서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빨간약과 파란약이 있을때 의사는 환자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빨간약을 드세요. 그게 당신에게 적합합니다’. 파란약에 대해서 말해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환자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정보만 말해주면 된다. 의사는 마치 사제처럼 최선의 방법을 알고 있다고 믿는 모델이다. 두 번째는 정보를 주는 관계이다. 가부장적 관계와 정반대 개념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사실과 수치를 제공한다. 나머지는 모두 환자에게 달렸다. ‘빨간약은 이런 효과가 있고, 파란약은 저런 효과가 있습니다.’  의사는 이렇게 설명한 뒤 환자에게 묻는다. 어떤 약을 원하십니까? 소매상 같은 관계이다. 의사는 기술지식을 가진 전문가이고, 환자는 소비자다.

 

최신기술과 지식을 제공하는 것은 의사가 하는 일이고,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환자의 몫이다. 점점 더  많은 의사가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고, 이 때문에 의사가 더욱 전문화가 되어간다. 환자들에 대한 지식은 점점 더 줄어들고 의학지식은 점점 늘어가는 추세이다. 사람들의 선호도가 명확하면 좋은 모델이다. 원하는 검사, 약, 수술 등을 선택하고 그에 따른 위험은 감수하겠다고 결심하면 된다. 사실 이 두가지 모델은 사람들이 원하는 관계가 아니다. 우리는 정보와 상황을 제어할 권한을 원하기도 하지만 누군가 우리를 안내해 주기를 원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번째 관계유형은 해석관계라 한다. 이 관계에서 의사의 역할은 환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해석적인 의사들은 우선 이런 질문을  던진다. ‘환자분에게 가장 중요한게 무엇인지요?, ’걱정되는게 무엇인가요?‘  대답을 듣고 난 후에는 빨간약과 파란약에 대해 설명하고는 환자의 우선순위에 맞는 약이 어떤 것이라고 이야기해준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의사결정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임마류엘 부부는 환자들이 원하는걸 이루도록 제대로 돕기 위해서는 그들의 욕구를 해석하는 이상을 해야 할수 있다고 경고한다. 원하는 것은 변할 수 있다. 덜 충동적이고, 더 건강하고, 두려움이나 배고픔 같은 1차적 욕구에 지배를 덜 받고, 더 큰 목표에 충실해지고 싶은 욕구를 가질수 있다. 어느 시점에는 의사가 환자와 함께 더 큰 목표를 신중하게 생각해보도록 돕는게 옳을 아니라, 필요해지게 된다. 거기에는 잘못된 우선 순위나 믿음을 다시 생각해 보게끔 이의를 제기하는 것까지도 포함된다.

 

완화치료 전문가 밥 아널드 박사는 숨은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하는 방법은, 그 정보가 자신한테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널드 박사는 사람들에게 나쁜 소식을 전해야 할 때, 완화치료 전문의들이 사용하는 전략을 추천했다. '묻고 말하고 묻는' 방식이다. 완화치료전문가들은 환자가 무엇을 알고 싶은지 묻고, 설명한 다음에 그 설명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다시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