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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순간(3)

아버지는 전화통화를 할 때에도 말이 점점 느려졌고, 한마디 끝낼 때마다 긴 침묵이 흘렀다. 아버지의 세상은 점점 닫혀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엑스레이를 촬용한 결과 오른쪽 폐에 폐렴증세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의료진은 아버지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웠고 항생제와 포도당을 투여했다. 사람의 종말이 가까워 오면,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책임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시점이 온다. 우리는 그 순간에 대해서 거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기를 원하는지 상세히 밝혀두었다. 아버지는 인공호흡기도, 고통도 원하지 않았다.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기를 원했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몇주 아니 몇달 정도는 더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몇시간을 바라는 것도 욕심이 되었다. 마지막 순간은 너무나 중요하다. 단지 자기자신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서도 말이다. 

 

이런 상황을 모두가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가족은 없다. 아버지에게 가장 마지막 순간이 오고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은 나였다. 내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아버지의 고통을 너무 오래 지속 시키는 실수를 범하는 일이었다. 나는 지금 평화로운 임종을 받아들일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생은 아버지가 끝에 다다랐다는 것을 전혀 믿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더 했다. 그들은 아버지의 생명을 더 길게 연장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할까 봐 걱정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의료진이 아버지를 소생시키기 위해 더 이상 어떤 조치도 하지 못하게 하는데에 동의했고, 우리 남매가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벼텨줬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보았다. 아버지가 깨어났다. 통증이 심해 진통제를 요구했고, 정맥주사를 요구했다. 마약성분 진통제를 주입했다. 병원에서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다. 그 목표 말고 다른 대책은 없다.  우리는 의료진에게 산소마스크를 떼고 항생제 투여를 중단을 요청했다. 아버지는 다시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고통받고 싶지 않구나'.  아버지는 나와 단 둘이 있을 때 그 말을 되풀이 했다.

 

아버지는 마비가 와서 방광이 차서 소변을 봐야 한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지만, 나오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카테터를 삽입했다. 소변이 파도처럼 쏟아져 나오면서 바다같은 안도감이 밀려왔다. 아버지는 육체의 한계를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소소한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했다. 손주들과 통화를 하고, 사진을 정리했다. 아버지는 그야말로 실낱같은 생명의 끈에 매달려 있었고, 우리는그 모습을 지켜보며 괴로워 했다. 마지막 순간이 오기 바로 전날 오후, 아버지는 온몸에 진땀을 흘렸다. 여동생이 아버지의 셔츠를 갈아입히고 몸을 씻겨 드리자고 했다. 아버지는 일어나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를 휠체어에 앉혀 뒷마당이 보이는 창문으로 밀고 나갔다. 꽃과 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여름날이었다. 아버지는 저녁 식사로 망고, 파파야, 요구르트, 그리고 약을 먹었다. 아버지는 생각에 잠겨 침묵을 지켰다. 

 

마지막 날 아버지가 겪은 고통은 딱히 육체적인 것은 아니었다. 약으로 상당히 통증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이따금 의식이 표면으로 떠오를 때면, 우리 목소리를 듣고 미소지었다. 아버지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건 오히려 마음의 문제였다. 정신적인 혼돈, 끝내지 못한 일들과 어머니에 대한 걱정,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기억될까에 대한 우려 같은 것들이었다. 이제 아버지가 깨어있을 때보다 잠들어 있을 때 평화를 느꼈다. 자연의 한계에 도달한 지금, 아버지가 자신의 이야기에서 마지막으로 원한 것은 평화로움이었다. 마지막으로 의식이 돌아왔을때 아버지는 손주들이 보고싶다고 했다. 나는 아이패드에 있는 사진을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눈을 뜨고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는 다시 무의식으로 빠져들었다. 호흡이 한번에 20-30초씩 멈추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제 끝인가 하면 호흡이 다시 시작되곤 했다. 그렇게 몇시간이 흘렀다. 아버지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죽어간다는 건 생물학적 제약에 대처하게 위해 분투하는 과정이다. 유전자와 살과 뼈와 세포가 가진 한계 말이다. 의학은 이 한계를 뒤로 밀어붙일 놀라운 힘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나는 의학의 이라는게 무척 제한되어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사실은 변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인정하지 못할 때, 생기는 피해를 너무도 많이 목격해 왔다. 우리는 사람들의 건강과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 주된 임무라고 하지만, 실은 그 이상의 일을 해내야 한다. 환자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행복은 한 사람이 살아가기를 바라는 이유와 깊은 관련이 있다. 살아가면서 심각한 질병이나 부상을 당할 때마다, 그리고 심신에 큰 타격을 입을 때마다 우리는 매우 중요하면서 동일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죽어가는 환자를 돌보는 문제에 이런 사고방식을 도입한 것이 바로, 최근 수십년 사이에 떠오른 완화치료 분야이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한계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라면, 그런 인간을 돌보는 역할을 하는 직업이나 기관 - 의사에서 요양원까지- 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그 한계를 직면하고 분투하는 과정을 도와야 한다. 어떤 때는 병을 고쳐줄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연고를 처방해 주는데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의료진이 개입해 환자로 하여금 희생과 위험을 감수하도록 하는 일은 더 큰 삶의 목적을 위한 것일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

 

한계에 도전하기를 멈추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시점이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한계에 도전함으로써 치러야 할 대가가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넘어서는 순간이 온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버지는 인생은 짧고, 한 사람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아주 작다는 걸 이해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또 자기 자신을 역사의 한 고리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