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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인간다운 마무리를 위한 준비(3)

2010년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의 획기적인 연구에서는 이보다 더 놀라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연구자들은 폐암4기환자 151명을 무작위로 나눠 서로 다른 두가지 치료법을 적용받게 하였다. 한 그룹은 통상적인 암치료를 받았고, 다른 그룹은 기존치료와 더불어 완화치료 전문가들의 방문을 받았다. 2010년 연구에 참여한 완화치료팀은 환자들을 만나 만약 상황이 악화된다면, 그때 우선 순위와 목표를 어디에 둘 것인지 이야기 나눴다. 그 결과 완화치료 전문가들과 상담한 환자들은 화학요법 치료를 더 일찍 중단했고, 호스피스 케어를 일찍 선택했으며, 삶의 마지막 순간에 고통을 덜 경험했다. 게다가 생존 기간도 25%나 늘어났다. 의학적인 의사결정은 크게 실패했고, 죽음이라는 주제를 피하느라 환자들에게 오히려 해를 주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뜻이다. 삶의 마지막 시점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현재의 시점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물어야 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 심장이 멈추면 심폐소생술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 기계적인 인공호흡기 같은 공격적인 치료를 원하십니까?

* 항생제 투약을 원하십니까?

*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경우 관이나 정맥주사로 영양공급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완화치료 전문가 수전 블록은 말한다.  ‘ 이 점을 이해해야 해요. 가족면담에도 절차와 방법이 있다는 것, 그리고 수술에 버금가는 기술과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말이예요'  의사들은 사실과 선택지를 나열하는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수전은 그것이 실수라고 말한다. ‘가장 중요 과제는 사람들이 그들을 압도하는 불안감에서 잘 대처하도록 돕는거예요. 죽음에 관한 불안감, 고통에 대한 불안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불안감, 돈에 대한 불안감 말예요.  걱정거리도 많고 무서운 것도 너무 많아요’.  한번의 대화만으로 이런 문제들을 모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의학적으로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을 분명히 이해하는 과정은 서서히 진행 된다. 갑작스런 직관과 통찰을 통해 일어나는 일이 아니란 얘기다. 말기질환자가 이 과정을 거치도록 돕는 방법은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전은 몇가지 규칙이 있다고 말한다. 우선 같이 앉아서 시간을 들여야한다. 상담자는 환자와 그 가족들이 어떤 치료법을 알기 위해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서 있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잘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상담의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서 말하는 것만큼 듣는 것도 중요하다. 사용하는 말도 중요하다.

 

완화치료 전문가에 따르면 ‘일이 이렇게 돼서 정말 유감입니다’라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된다. 거리를 두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상황이 이렇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해야 한다.  또한 이렇게 물어서도 안됩니다. ‘임종이 가까워지면 어떻게 하길 원하세요’  그보다는 이게 낫다.  ‘만약에 시간이 촉박해지면, 선생님에게 가장 중요한게 뭘까요?’ 수전은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 되기전에 환자를 보호해야 할 목록을 가지고 있다. 병의 예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앞으로 일어날 일중 무엇이 염려스런운지, 기꺼이 희생할 용의가 있는 것은 무엇인지, 건강이 더 악화되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스스로 결정내리지 못할 상황이 되면 누구에게 그걸 대신하게 될건지 등 말이다. 10년전 수전의 아버지 잭블록 교수는 일흔네살이었고, 목부분 척수에 커다란 종양이 자라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수술전 날 아버지와 딸은 가족들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앞으로 닥칠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였다. 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맙소사 난 아버지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전혀 모르잖아?’ 그녀는 삶의 마지막 시점에서 나눠야 할 전문가였지만, 그 사실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와 그런 이야기를 하는게 싫었지만, 자신의 목록에 있는 이야기들을 모두 꺼내 놓았다.

 

‘ 아버지 제가 알아야 할게 있어요. 아버지가 생명유지를 위해 얼만큼 견뎌낼 용의가 있는지, 어느 정도 상태면 사는게 괴롭지 않을지 알아야만 해요’  그런데 아버지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 글쎄 쵸콜렛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미식 축구중계를 볼 수만 있다면, 기꺼이 살고 싶구나. 그럴수만 있다면, 통증이 심하더라도 이겨낼 자신이 있어’  그녀의 아버지는 수술을 했고, 2년의 재활 치료를 거쳐 책 두권을 집필하고 10여건의 과학논문도 발표했다. 그는 수술후 10년을 더 살았다. 죽기 몇달전에 집으로 돌아와 호스피스 케어를 받았고, 아버지는 먹고 마시는 걸 중단했다. 그리고 한 닷새후 죽었다. 수전과 그의 아버지가 나눈 대화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화학요법이 더 이상 효과가 없을 때 집에서도 산소호흡기가 필요해질 때 , 위험부담이 큰 수술을 할 때, 더 이상 혼자 힘으로 옷을 입을 없을 때, 반드시 나와야 하는 대화이다. 스웨덴 의사들은 이를 '브레이크포인트 대화'라고 부른다.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싸우는 방식에서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다른 것들, 이를테면 가족, 여행, 초코릿 아이스크림 같은 것들을 위해, 싸우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을 때 나누는 일련의 대화를 말한다.

 

이런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거의 없고 또 모두가 이를 꺼려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직면하기 어려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사람도 있고 압도당해 버리는 사람도 있다. 대화를 잘못 하면 당사자의 신뢰를 잃을 수 있고, 잘풀린다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대화가 때로 얼마나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를 감안한다면, 결국 금전적인 동기가 주요 문제가 된다고 주장한다. 화학요법치료나 수술을 하면 돈을 받지만, 그렇게 하는게 그다지 현명하지 않은 시점이 언제인지를 판단하고, 조언하는데 들이는 시간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기 때문 이라고 주장한다. 쟁점이 단지 돈 문제만은 아니다. 문제는 의학의 기능이 실제로 무엇인가 하는 아직 풀리지 않은 논쟁이 남아있다는 데 있다. 이는 의학이 어떤 일을 할 때 우리가 돈을 지불해야 하고 또 지불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의학은 죽음과 질병에 맞서 싸우기 위해 존재한다는 단순한 시각도 있다. 물론 그것이 의학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다. 그러나 죽음이 적이라고 한다면, 그 적은 우리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결국은 죽음이 이기게 되어 있다. 이길수 없는 전쟁이라면, 우리는 아군이 전멸할 때까지 싸우는 장군을 원치 않는다. 점령할 수 있는 영토를 위해서는 싸우고, 그럴 수 없을 때는 항복할 줄 아는 장군이 필요하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쓰디쓴 최후를 맞을 때까지 싸우는 것일 뿐이라면, 결국 최악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걸 이해하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의사들은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전면적인 치료과정을 두고 언제라도 하차할 수 있는 기차라고 말한다. 언제든 멈추고 싶을 때 말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의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너무 큰 요구사항이다. 그들은 의혹과 두려움과 절박함에 휩싸인 상태이고, 일부는 의학이 해낼 수 있는 일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의료인들의 책임은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다마지막에 이른 사람들은 차마 꺼내기 어려운 대화를 기꺼이 나눠줄 의사와 간호사를 필요로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 해주고 앞으로 닥칠 일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아무도 원치 않는 죽음을 기다리는 창고 같은 시설에서 잊혀갈 운명을 피할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