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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인간다운 마무리를 위한 준비(2)

사람들은 의사라면 이 수많은 환자들을 이끌 준비가 잘되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방해가 되는 요인이 적어도 두가지는 있다. 첫째 의사들의 견해 자체가 비현실적일 수 있다. 63%의 의사들이 환자의 생존기간을 과대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의사들은 이 정도의 의견조차도 환자들에게 전달하기를 꺼린다. 의사들은 보통 암을 완치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 이를 환자들에게 알리기는 하지만, 정확한 예후는 환자가 정보를 요구할 때 조차도 밝히기를 꺼린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우리는 과도하게 낙관적인 것보다 과도하게 비관적인 것에 대해 더 많이 걱정한다. 그리고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엄청나게 불편하고, 곤란하게 여긴다.

 

새라는 폐암으로 세가지 화학요법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있더라도 아주 미미할 뿐이었다. 새라는 폐암뿐만 아니라, 목의 림프절까지 퍼진 갑상선암에도 걸렸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갑상선암이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퍼지려면 몇년이 걸린다. 갑상선 암이 문제를 일으키기 훨씬 전에 새라는 이미 폐암으로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필요한 수술의 범위와 합병증 유발 가능성을 고려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내 논리를 새라에게 설명하려면, 그녀로 하여금 폐암으로 결국 죽을수 밖에 없다는 현실을 직면하게 만들어야 했다. 나는 새라에게 갑상선암은 확산 속도가 느리고, 치료가능하다는 비교적 좋은 소식을 전했다.그러나 폐암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또한 폐암을 치료하는데 방해가 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며, 갑상선암의 경우 지금 당장은 관찰만 하다가 몇달 후에 수술 계획을 잡아도 늦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보다 환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쉬웠다. 그것이 감정적이 되거나 격해지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덜했다. 6개월 후 CT스캔 결과 암세포가 척추, 간, 다른쪽 폐까지 퍼져 있었다. 뇌까지도 전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새라와 그녀의 가족, 그리고 의료진은 전투태세를 버리지 않았다. 새라는 검사결과가 나온지 24시간도 되지 않아 방사선 전문의를 만나러 갔다. 뇌 전체를 방사선 치료를 받아 전이성 종양을 줄이기 위해서 였다. 그녀는 5일간에 걸친 방사선 치료를 마쳤다. 치료부작용으로 온 극도의 피로감으로 침대에서 일어날수 조차 없었으며,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의료진은 새라에게 방사선치료에서 회복할 시간을 2주 주었다. 그런 다음 작은 바이오테크 회사에서 개발한 또 다른 실험약품을 사용해볼 예정이었다. 수술과 실험적 화학요법 치료를 받은 그는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내 삶의 실타레가 다하면 조용히 나만의 방식으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를 나는 희망한다그러나 대부분의 상황에서 죽음을 궁극의 적으로 여기는 용감한 관점을 더 선호한다. 빛이 꺼져가는 상황에 맞서 맹렬히 싸우는 사람들을 나무랄만한 점은 아무것도 없다.

 

말기환자를 만날때마다 아무리 희박하더라도 항상 긴꼬리를 그리며 살아남을 가능성은 있는 법이다. 그 가능성을 찾으려는 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다만 동시에 그보다 훨씬 확률이 높은 결과에 대해서도 준비해야만 한다. 우리는 의학적으로 마치 복권과 같은 것을 제공하기 위해 몇조달러에 달하는 체제를 만들면서도,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거의 없는 환자들에게는 아주 기본적인 서비스만 시행하고 있을 뿐이다. 세라에게 기적적인 회복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이 다가왔지만, 본인도 가족도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한 세라는 폐렴 진단을 받았다.  새라의 면역력과 폐분비물 제거 능력은 지속적으로 약화된 상태였다. 암뿐만 아니라, 여러번의 방사능치료와 화학치료 때문이다. 의료진은 정맥주사로 항생제를 투여하고, 마스크를 통해 고단위 산소를 공급했다. 새라의 의식은 오락가락 했고, 의료진에게는 한가지의 선택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인공호흡기를 연결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수백만번 번복되는 현대의 비극이다. 우리가 풀수 있는 생명의 실타래가 정확히 얼마 남았는지 알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실제보다 더 많이 남아있다고 상상한다면, 우리는 싸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혈관에 화학약품을 투여하고, 목구멍에 관을 삽입하고, 죽어가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더 단축시키고, 삶의 질을 악화 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는 의사들이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고 말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사에게 더 이상 할수 있는 일이 남아있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효과가 밝혀지지 않은 독성약품을 줄 수도 있고, 종양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할 수도 있고, 영양공급관을 삽입할 수도 있다. 언제나 무언가 할 일은 있다. 우리는 선택 가능성이 주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이 스스로 선택하고 싶어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우리는 대부분 아무 선택도 하지 않는다. 자동모드를 켜고, 그 뒤에 숨어버리는 것이다. 자동모드는 이렇게 설정되어 있다. '뭔가를 하라'  '뭔가를 고쳐라'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라'. 우리는 지금 처한 상황에 대해서 대체로 불편해 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토론을 하는 것을 두려워 한다.

 

넬린 폭스는 1991년 전이성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과 화학요법치료가 실패로 돌아갔고, 암은 골수까지 퍼져 있었다.  의료진은 골수이식과 고단위 화학요법을 병행한 것이었다.  하지만 폭스의 보험회사 헬스넷은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실험적 치료이므로, 그녀가 든 보험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용지불을 거절했다. 폭스는 자선단체를 통해 직접 21만2000달러를 모아 치료비용을 지불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 되었고, 그녀는 결국 치료를 받은후 8개월만에 사망했다. 그녀의 남편은 헬스넷을 상대로 배임, 계약위반, 고의에 의한 정신적 피해, 징벌적 손해배상 등의 소송을 걸어 승소했다.  배심원은 폭스 가족에게 89000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폭스에게 적용한 치료법은 유방암 환자에게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환자의 삶을 악화시킬 뿐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헬스넷이 옳았다는 사실은 상관이 없었다. 의사와 환자가 말기 질환에 대해 결정한 치료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라는 판결이 난 것이었다. 2004년 다른 보험회사인 애트나의 경영진은 이와 다른 접근법을 시도했다. 보험 고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공격적인 치료법의 범위를 줄이는 대신 호스피스 케어에 대한 선택범위를 넓히기로 한 것이다.

 

남은 시간이 1년 미만인 보험계약자들은 다른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도 호스피스 케어를 받을수 있도록 것이다. 이렇게 ‘동반케어’ 프로그램을 2년간 시행한 결과, 보험가입자들의 호스피스 이용률이 훨씬 높아졌다. 수치가 26%에서 70%로 폭등한 것이었다. 병원과 중환자실 이용률은 3분의2이상 줄었고, 전반적인 비용도 거의 4분의1이 줄었다. 애트나는 적당한 가격대에서 더 넓은 범위의 가정에서 동반케어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호스피스 케어를 받기 위해서는 병을 고치는데 목적을 둔 치료를 포기해야 한다는 규칙을 적용했다. 이 프로그램을 선택해도 환자의 상태를 정기적으로 체크해 주는 완화치료 전문간호사들의 전화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고, 이들에게 통증완화에서부터 살아날 가망이 없을 때, 그대로 죽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힌 리빙윌living will작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대부분 호스피스 케어를 신청했다. 이들은 고통을 덜 받았고, 신체적인 기능을 더 많이 유지했으며, 시간동안 주변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어떤 케어를 받길 원하는지에 대해 의사들과 실질적인 대화를 나눈 환자들이 상황을 스스로 관리하면서 더 평화롭게 임종을 맞이 했고, 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준 경우가 훨씬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