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물정의 사회학( 노명우 지음)

죽음에 대한 성찰

뉴스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죽음을 보도 한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부터 폭탄테러 희생자,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뉴스를 통해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죽음을 접한다.  하지만 죽음 소식을 듣고도 우리 마음속에선 동요가 일지 않는다. 알지 못하는 사람의 죽음에서 슬픔을 느낄 사람은 없다. 뉴스가 보도하는 죽음은 되풀이 되는 일기예보만큼 일상이 되어버렸다. 어떤 일이 구경꾼이 되는 것과 당사자가 되는 것은 다르다. 당사자와 구경꾼사이에는 천국과 지옥처럼 넘을 수 없는 분리의 선이다. 타인의 죽음을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으로 구경하는 일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평범한 죽음은 시청자의 눈을 끌지 못한다. 죽음의 거대한 축적인 전쟁이 미디오로 통해 보도 되면, 그 보도속에는 애국심 선동은 있어도 슬픈 스토리는 없다. 오늘날 우리는 거실에서도 전쟁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곳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다는 정보, 이른바 뉴스는 비참한 모습을 시청자 눈앞에 내던져 동정심, 격분, 그도 아니면 찬성 같은 반응을 자아낼 수밖에 없도록하는 분쟁과 폭력을 대서특필 하기 마련이다.

 

죽음이 매일매일 재생산 되어 과잉축적이 빚어내는 전쟁 조차도 미디어를 통해 중계되면 스펙터클이 된다. 죽음의 축적을 보고도 무덤덤하다.  그게 관음증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죽음을 보고 있는 사람의 무의식 속에 울리는 내면의 소리는 이렇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거다. 우리는 안전한 곳에 있다.  정서적인 연결고리가 았는 사람의 소식을 접하는 그 순간,  죽음은 더 이상 스펙터클이 아니라 누군가를 철학자로 만드는 사건으로 바뀐다. 유족은 죽음의 처리 과정에서 배제된다.  현대 사회의 모든 일들처럼 삶을 마무리하는 죽음의 순간 조차 죽음은 고인의 관계자가 아니라,  그 기능을 위해 특별히 전문화된 사람들의 손에 맡겨진다. 대부분  가족, 친지, 친구들이 손을 떠나 돈을 받고 일하는 전문인의 손에 맡겨져 있다. 지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장례식은 장의사가 각본을 쓰고, 유족들은 각본의 지문대로 따라 움직이는 연극과 다를 바 없다.

 

모든 것이 상품화된 사회에선 죽음마저 상품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산부인과에서 태어나자마자 마케팅 대상이 되어 의지와 상관없이 수완 좋은 분유회사 판매원의 뜻에 따라  분유를 먹기 시작했던 인생은 웨딩시장과 관광시장의 논리에 따라 또 다른 가족을 결성한다. 그런 삶이 마감될 때도 태어날 처럼 시장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그다지 이상할 것 없다분유로 시작한 인생은 그래서 상조회사 고객으로 끝맺는다. 시작하는 순간부터 마무리 되는 순간까지 시장의 법칙에서 자유로울수 없는게 우리의 평범한 인생이라는 통찰이 헛헛함을 남긴다면 삶의 그 쓸쓸함을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 젊음을 잃고 원숙함도 얻지 못한 사람은 삶의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권위와 돈의 힘에 의존하려 한다.  마침내 이 길을 걸었던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면 장례식장에는 끝없는 근조화환이 전시된다. VIP장례식장에 잠시 머물다가 최고급 수의를 입고 떠나는 마지막 사치를 누리지만,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항상 젊을 수는 없다. 영원히 살 수도 없다. 나이듦과 죽음은 피할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다.  우리는 살면서 매우 짧은 시간만 젊음을 누릴수 있도록 허락 받았다. 젊음의 사멸을 유예하려는 애달픈 시도보다는 원숙한 노년에 대한 준비가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인생의 추분점에 도달했지만 인생의 하지夏至만을 그리워하며 지난 세월을 되돌리려는 노스탤지어의 가련한 몸짓은 허무만을 남긴다.  허무함을 달래기 위해 돈과 지위 자랑질에 몸을 내맡긴 노인은 추하다. 하지만 어떤 노인은 아름답다. 얼굴의 주름이 아니라 지혜가 먼저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삶의 리얼리티와 용감하게 대면하면, 좋은 삶을 위한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익혔기 때문일 것이다. 원숙한 노인의 얼굴은 인생의 동지冬至 달빛 아래에서도 오히려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세상물정의 사회학( 노명우 지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회로부터 고립  (0) 2014.09.23
배운 괴물들의 사회  (0) 2014.09.21
성인, 집  (0) 2014.09.18
게으름, 인정, 국가  (0) 2014.09.18
자살, 노동자  (0) 2014.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