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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의 사회학( 노명우 지음)

섹스, 남자다움

섹스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은 퇴폐적인 행동이기에 품행이 방정한 사람이라면, 자위조차 멀리해야 한다고 배웠다. 선생님의 훈계는 몸에서 느껴지는 욕망에 대한 무조건적인 금지 명령이었다.  우리는 결혼이 허락되는 나이가 되었을 때,  결혼이라는 절차를 통해 남자와 여자 사이의 섹스가 더 이상 금기시 되지 않는 부부의 연을 맺는다. 그 남자와 여자는 생식을 위한 부부관계라는 거룩한 행위를 통해 자식을 얻었고,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지위를 획득했다. 부부는 섹스가 유일하게 허용되는 친밀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녀의 삼각형이 구성되면서 가족은 무성無性적 문화로 편입해 갔다. 권위주의 국가는 섹스를 쾌락이라는 욕망과 분리시켜 국가의 민족을 위한 재생산이라는 틀속에 가둔다.

 

권위적인 사회에서는 성욕이라는 단어와 어머니라는 가족 지위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어머니는 무성적 이미지다.  국가의 유지관리를 위한 신성한 생식과 출산을 담당하고,  미래의 국가 구성원이 될 자녀들을 자애로운 태도로 돌봐야 하는 어머니와 성욕은 양립될 수 없다. 쾌락을 위한 성행위는 여성과 어머니를 타락시키는 것이고, 창녀는 그 쾌락을 긍정적으로 추구하며 사는 여성이다. 권위주의적 사회는 가장 도덕화된 여성인 어머니는 섹스를 탐하는 여자일 수 없다.  그런 사회에서 섹스는 어머니가 아니라 화냥년이나 탐하는 것이다. 여자가 섹스를 탐한다면, 가족밖의 여성인 호스티스로 취급받는 사회에서 여자는 불가피하게 무성적인 어머니가 되는 방법을 선택해야 했다. 생계부양자로 자리 매김된 남성은 규율과 노동 그리고 근면과 대립을 이루는 성적쾌락의 틈바구니에서 공식적으로는 자신을 무성적 존재화 한다.  어머니라고 신성화된 여자의 남편인 아버지는 가족내에서 성적욕망을 지닌 남성이 아니라, 가정관리의 책임감을 지닌 가부장이 된다. 그는 윗사람에게 최대한 정중하게 행동하고, 지배적인 세계관을 쉬지 않고 흡수하며 아랫사람을 지배한다. 

 

남성과 여성이 도덕적으로 섹스가 허용된 부부를 구성 하였음에도 남성이 아버지로, 여성이 어머니로 소환 되는 한, 가족은 역설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무성적인 공간이 된다. 밤의 세계에서 섹스는 애정의 표현도 생식의 수단도 아닌 거래의 대상이다. 밤의 세계에서는 한낮에 권위적 명령을 내리며, 권력을 만끽하던 권력자들이 섹스에 대한 명령을 내리는 주색잡기의 화신으로 변신하다. 사랑과 결합하지 못한 섹스가 거래의 수단이 되고, 권력의 도구가 되는 밤의 세계에서 가족 호칭을 벗었던 사람은 새벽녘에 다시 기족 호칭을 걸친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된다.섹스가 더 이상 음란이나 타락이라는 범주에 묶이지 않는 세계속으로 이동한 그들에게는 서로에 대한 호감만 있다면, 섹스란 불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그들에게 섹스란 손을 잡는 것처럼, 개인과 개인이 서로 애정이라 말하는 호감을 표현하는 여러 방법중의 하나이다. 성욕은 기본적으로 휘발적이다. 연애감정 역시 한시적이기는 마찬가지다.  프롬이 말하는 것처럼,  친밀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희박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 새로운 타인과의 사랑을 추구하게 된다. 섹스를 하기위해 결혼이라는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는 세대,  섹스가 곧 결혼 약속이 아닌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섹스는 일상적인 요소가 된 것 만큼이나 관계의 지속성 불안을 유발하는 근심 거리이다.

 

여성은 자신이기 이전에 여성임을 깨닫게 만드는 수많은 말을 들으며 성장한다. '치마 입고 다리 벌리지마라' 부터 시작하여 '밤길 조심해라'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성염색체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여성에게만 통용되는 금기와 권유사항에 둘러싸인채 성장한다. 하지만 남자는 다르다. 남자가 남자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건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부재하다는 뜻에 가깝다.  남자는 자신을 남자라는 존재로 이해하는 사회적 거울을 들여다본 경험이 없다. ‘여성은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진다’는 시몬드 보부아르의 너무나 유명한 주장은, 남자도 인간인 한 그리고 사회적 존재인 한 적용의 예외일 수는 없다. 만들어짐을 생각하지 않고 성장해 버린 남자의 종착지가 ‘문제적 인간’ 아저씨이다. 아저씨가 알고 있는 남자의 자격은 지위와 돈 뿐이다아저씨는 지위를 얻었을 때는 마치 약효가 영원한 비아그라 먹은 듯 자기 자랑질로 분기탱천 하고, 지위를 얻지 못했을 땐 사회적 발기부전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저씨는 자기가 남자다움의 옷을 걸치고 있다고 상상하지만, 그가 진짜로 걸치고 있는 옷은 남자스러움이다. 승리한 남자는 승리했기에 남자다움이라는 판타지에만 관심이 있고,  패배한 남자는 자신이 패배자라는 불편한 자신을 숨기려고 남자의 리얼리티에 무관심하다. 남자의 리얼리티에 관한 침묵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최선으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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