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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의 사회학( 노명우 지음)

자살, 노동자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은 한 세기 이전에 출간된 책이다. 뒤르켐은 자살에서 관계를 파악하고 다시 관계에서 특정한 경향을 해석해 내고, 그 특정한 경향을 개인 외부에 있는 사회적 힘과 연결시켰다.  ‘현상의 생성 원인은 개별적인 사례만 관찰하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원인은 개인의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심약한 기질이나 염세적인 삶의 태도와 같은 개인의 특이 성향만이 자살의 원인이라면 자살율은 기복없이 평균율의 법칙을 따를 것이다.  자살은 개인적 현상이지만, 자살들의 관계인 자살율 앞에는 '사회적'이라는 형용사가 생략되어 있다1997년과 1998년 우리는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라는 경제위기와 만난다.  IMF라는 기호는 저승사자와 같았다. 가족은 해체되었고, 노숙자는 늘어났고,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급증했다. IMF관리체제는 공식적으로 끝이 났지만, 1990년대에 학습하고 IMF 관리체제를 통해 복습한 부자되기에 대한 물신적 집착이 유령처럼 한국을 지배하는 한, IMF관 리체제는 영원한 현재형이다.

 

부자에 대한 욕망이 강해질수록 달성하지 못했을 때의 좌절의 강도 또한 커지는 법이다.  커진 욕망과 좌절 된 욕망 사이에서 뒤르켐이 한계를 모르는 열망이 목표를 잃은 경우에 발생한다고 하는 사회적 혼란상태가 자란다.  사회가 혼란 상태에 빠지면, 사회속의 개인 또한 감염된다.  사회가 병이 들면 개인도 병이 들기 마련이다. 사회과학자는 팔자타령을 하는 사람을 야단치는 냉혹한 분석가여서도 안되지만, 위로의 말을 늘어놓는 마취전문의가 되어서도 안된다.  알코올 중독의 원인은 중독자의 팔자가 아니라, 술 권하는 사회이며 자살은 개인 불행이 아니라 사회적 불행의 다른 모습이다. 경제성장률의 상승이 삶의 만족감과 만나지 못한다면,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혼란의 조건이 된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누구처럼 살아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개미와 같은 삶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적어도 도덕적으로는 개미가 바람직한 삶의 모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개미가 땀 흘리며 몰두했던 노동을 삶의 중요한 본보기라고 여긴다.  고대 그리스어로 노동을 의미하는 포노스 ponos는 슬픔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히브리어에서 을 나타내는 단어와 노예를 나타내는 단어는 동일하다.  라틴어로 일을 의미하는 단어 라보르 labor는 고통이 수반되는 극도의 노력이라는 뜻이다. 중세 독일어로 노동이라는 뜻인 아르바이트 arbeit는 시련, 박해로 해석된다.  노동은 고통스런 노고이지만 힘든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 맛볼 수 있는 성취감은 대단하다. 하지만 노동이라 부를 수 있는 모든 인간활동이 종국에 개미의 성취감을 맛보도록 해주는 것은 아니다. 에베레스트 정상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는 등반가는 개미를 닮았지만, 등반가의 짊을 지고 나르는 세르파에게 노동은 도덕적인 범주가 아니라 현실적인 활동이다. 마르크스는 묻는다. 노동력은 그 소유자, 즉 임금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파는 하나의 상품이다.그는 왜 그것을 파는가?

 

태어난지 1년 밖에 안돼서 주식을 증여받아 9억원대 주식부자가 된 어린 아이도 있다.  당신이 이런 복받은 인생이 아니라면, 먹고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한가지 임금노동이다.  자본주의가 발생하기 이전에도 인간은 노동을 했지만, 자본주의 종속법칙에 종속된 임금노동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임금노동의 강제에 시달리지 않을때 그들은 과다하게 노동할 필요가 없었고, 그들이 내킬때 이외에는 더 이상 일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일해서 조달하였으며, 자신의 정원이나 뜰에서 건강한 노동을 위한 여가를 가졌다. 월급은 고용된 사람에게만 지급된다. 고용되지 않으면 먹고사는 일이 막막해지는 사람들이 해야만 하는 노동, 그 노동이 임금노동이다. 고용되지 않으면 먹고사는 일이 막막해지는 처지, 한 달이라도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삶의 전체가 동맥경화증에 걸리는 신세, 그게 월급쟁이의 운명이다.  그는 필요한  생활수단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 생명 활동을 제3자에게 판매한다. 따라서 그의 생명활동은 그에게는 생존할 수 있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임금노동의 범위는 무한히 확대되어 임금노동자는, 육체노동 뿐만 아니라 정신노동까지 포함하고 심지어 감정노동의 세계에 살고 있는 노동자도 등장한다. 임금노동이 시작되는 순간 그의 삶은 정지된다.  그는 자신의 삶을 퇴근할 때야 되찾을 수 있다.  퇴근한다임금노동자가 자신의 삶을 그 다음 날 출근시간까지 온전히 되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면,  그건 당신이 이제 막 임금노동을 시작한 세상물정 모르는 신출내기란 뜻이다.  

 

세상에 늘린 존재가 임금 노동자이고, 노동에 의존해 살수 밖에 없는 절실함은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은 치열해질수 밖에 없다. 경쟁자들이 사방에서 그에게 육박헤 옴을 감지하는 임금노동자는 퇴근시간이 넘어도 퇴근할 생각을 못하고, 퇴근을 하고서도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기계발이라는 명목으로 졸더라도 영어학원을 다녀야 한다. 먹고 살기 위해 취직을 한 임금노동을 사표를 내던지고 그만둘 수만 있다면, 그보다 짜릿한 순간이 어디 있어랴. 탈출을 기도하는 임금 노동자는 매일매일 마음속으로 사표를 쓰지만, 의지할 곳은 복권 뿐이다. 복권의 유일한 효용가치는 이런 백일몽을 꿀 수 있는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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