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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감을 느끼는 아이로 키우기 (카

침묵

신경과학에 따르면, 한 번에 많은 일을 할 때 우리는 하나씩 차례대로 모든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일과 저 일 사이에서 재빨리 왔다갔다 하는 것일 뿐이다. 또한 거실에 텔레비전을 계속 틀어놓으면, 거기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놀이에 방해가 되거나, 부모와 아이들 사이의 교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양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과도한 자극을 받게 되면, 우리는 그걸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주의를 모든 것에 분산하게 된다. 휴대폰, 컴퓨터, 이메일 소셜네트워크를 하게 되면 모든 활동들 하나하나에 신경쓰느라 집중력이 분산되고, 줄어들게 된다. 제대로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외부의 소음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급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는 셈이다. 집중이 분산될 뿐 아니라, 현재 이순간을 즐기거나 다른 사람의 필요를 알아채고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면, 아름다운 일몰, 새들의 재잘거림, 침묵에는 별로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된다.

 

주변에 있는 것들 차분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일뿐,  그것을 기대하거나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지속적인 소음은 본연의 내면성을 갖지 못하게된다. 왜냐하면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계속해서 뭔가가 빈 듯한 느낌을 메우기 위해 떠들썩한 소리와 새로운 감각을 찾아 나서기 때문이다. 수많은 자극과 외부소음은 아이의 경이감을 질식시킨다. 경이감은 아이들이 아동기와 이후 청소년기에 학습과정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지식을 깊이 연구하며, 듣고 선택하며, 다른 사람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갖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경이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아이나 청소년들이 침묵의 시간을 꼭 되찾아야 한다. 하지만 과잉 자극에 노출된 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오락과 과도한 음악 등으로 본연의 속도를 존중하지 않는 곤혹스러운 환경에 처하지 않도록 부모들은 아이 주변에 침묵의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아이에게 침묵과 말, 상상, 소리의 균형을 잡을수 있게 해주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오늘날에는 새로운 과학기술이 도입되기전 5000년동안 인간이 만들어 낸 정보와 같은 양의 정보가 하루 걸러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용할 수 있는 정보가 이렇게 많은 데도 우리는 아이들이 예상하는 속도만큼 빨리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로마노 과르디니는 ‘알고 소유하는 지적영역들은 셀없을 지경으로 물밀듯이 사람들에게 쏟아지고 있는 반면에 .... 내면의 통찰과 시선과 경험, 본질에 대한 이해, 전체적인 사고, 경험, 감정의 깊이는 얕아졌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몰입과 정신집중의 내적인 도전을 통해서만 얻을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경고했다. 그 후로 침묵은 학습과정에서 잊힌 변수가 되었다. 다시 아인슈타인의 공식으로 돌아가보자. A성공= X일 + Y놀이 + Z침묵.

 

침묵은 배움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깊이 생각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로 인간을 구분짓는 특징이기도 하다. 소음은 아이들을 귀머거리로 만들뿐 아니라, 경이감을 느끼게 하는 것들에 의문을 품지 못하게 한다. 뭔가를 배우기위해서는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그치지 않고, 강화하고 내면화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입을 닫는 것은, 오늘날 21세기로 치면 전자장치와 화면을 끄는 것과 같다. 한편 침묵과 자녀들의 순종능력 사이에도 연관성이 있다. 여기에서 순종은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정당한 이유없이 하라고 복종시킬 수 있는 것을 말하는게 아니다. 하지만 아이가 순종할 마음이 저절로 들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관점에서 두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 아이에게 뭔가를 부탁하는 사람은 둘 사이에 이전부터 쌓아온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한 권위를 갖고 있어야 한다.  둘째 아이가 내면의 침묵을 통해, 그 요청을 잘 듣는 법을 알아야 한다.

 

만일 아이가 소음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얼이 빠져있다면, 그것을 수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외부의 많은 요구를 소화하고,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이 두가지 조건이 충족되어 있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는 아이에게 가해지는 모든 처벌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아이는 그것을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충동적인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들에게 베이비 아인슈타인에 대한 희망과 최대한 일찍, 많이, 최고라는 잘못된 신념을 심어준다그래서 부모들은 아이들이 겨우 두서너살에 불과한 데도 손에 컴퓨터 마우스를 쥐어주지 않으면 뒤처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은 디지털 원주민이지, 우리처럼 이주민이 아니다. 그들은 절대 우리처럼 뒤처지지 않는다.  새로운 과학기술이라는 기차들은 500미터만 지나면 바로 쓸모없게 되어버린다. 아이가 세살 쯤에 접하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대부분은 그들이 중고등학교, 대학교 혹은 직장생활을 할 때쯤이면, 존재하지도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세살배기 아이들이 새로운 기술들을 일찍 익히도록 애쓰는 것은 시간낭비처럼 보인다. 현실세계에서 실제로 사람들과 만나면서 얻는 세상을 깨닫는 나름의 기준을 바탕으로 그 정보들을 조직화 할 수 있을만한 나이가 되어야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은 연필과 종이로 글씨를 쓰고, 학교 선생님들은 전통적인 칠판을 사용한다. 컴퓨터가 비판적인 사고를 방해하고 인간성을 제거하며, 인간적인 교류를 없애고 학생들의 집중시간을 줄인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구글에서 일하는 임원 이글 씨는 학부모로써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과학기술은 배워야할 알맞은 시간과 장소가 있습니다. .. 그것들을 배우는 것은 아주 쉽다. 구글을 포함한 모든 사이트는 과학기술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아주 쉽게 만들어져 있다. 어른이 돼서 배운다고 해서 못배울 이유가 하등 없다 ’  우리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새로운 과학기술의 좋은면만을 보려고 하면서, 아이 스스로 의문을 품고 흥미를 느끼며, 상상하면서 뭔가를 찾아가고, 발명하게 하는 한마디로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특징인 '생각하는 능력'을 갖게 하는 경이감을 질식시키는 이 모든 것을 말이다. 니콜라스 카가 그의 유명한 글 ‘구글은 우리를 바보로 만드는가? ’ 에서 인터넷이 우리 뇌에 미치는 영향에서 잘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외적 침묵부터 내면의 침묵까지 이어지는 활동이 바로 독서다.

 

방해받지 않고 지속적인 독서를 할 수 있거나, 깊이 사색하는 등의 활동을 할만한 조용한 공간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체계를 확립하고, 추론과 유추를 하게 되며, 자신만의 생각을 키우게 된다. 독서를 통해 아이들은 읽은 것을 내면화하고, 그 안에서 비평과 사유, 몰입, 경이감을 키운다. 책을 읽는 행위는 기차에 올라타는 것과 같다. 우리는 아이들이 이 가차에서 떨어지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 자주 오가지는 않지만 일단 올라타기만 하면, 이 기차는 아이들을 아주 멀리까지 데려다 주기 때문이다.